난 마르크스주의자… 하지만 共産主義 믿지 않는다

  • 어수웅 기자
  • 입력 : 2013.07.31 03:03

    [어수웅 기자의 북앤수다] 슬라보예 지젝 도쿄 인터뷰

    20세기 공산주의는 완벽한 실패… 자본과 결합한 중국과 北 김정은, 누가 더 진정한 공산주의자일까
    유럽 좌파의 공동체운동 안믿어 '강력한 국가'만이 자유를 보장… 전체주의적 국가와는 다른 개념
    라캉 통해 헤겔 읽는 책 출간 "헤겔이야말로 이 시대의 요구"

    글 싣는 순서

    <1>내 아들에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2>자본주의와 결혼하는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이혼하는 민주주의
    <3>나는 정치적 선동가보다 철학자이고 싶다


    
	어수웅 기자
    어수웅 기자
    옛 유고연방공화국이던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좌파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64). 그에게는 '동유럽의 기적'이라는 추종부터 '지적 사기꾼'이란 폄하가 붙는다. 어느 쪽이건, 2013년 현재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하나라는 건 틀림없다. 3년마다 통계를 내는 영국 월간지 '프로스펙트(Prospect)'는 '세계의 사상가' 2013년 조사에서 그를 철학자 중 1위로 꼽았다. 종합 1위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였고, 지젝은 종합 6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5위), '총, 균, 쇠'의 제래드 다이아몬드(12위),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댈(21위) 등이 명단에 있다.

    궁금했다. 그의 사상은 한국에서 좌파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생각은 무엇일까. 마침 지젝은 라캉을 통해 헤겔을 읽는 1200쪽 분량의 역작 'Less Than Nothing'(한국에서는 '헤겔레스토랑' '라캉카페'라는 제목으로 2권으로 나눠 출간)을 펴낸 참이었다. 올해 13세인 아들과 일본을 여행 중인 이 철학자를 도쿄의 호텔에서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를 3회에 걸쳐 싣는다.

    ―단도직입. 당신은 공산주의 혁명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공산주의자인가.

    "공산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열세 살 난 내 아들의 꿈은 은행가다. 그 아이는 공산주의자를 바보, 멍청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나를 공산주의자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녀석 하는 이야기가, 내가 만약 공산주의자가 됐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바보, 멍청이가 됐을 거란다(웃음). 20세기 스타일의 공산주의는 완전히 끝났다."

    ―그렇다면 공산주의자가 아닌가.

    "나는 예전에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았다. 대학에서 가르칠 수 없었고, 책 출간도 금지됐다. 4년 동안은 직업도 빼앗겼다. 당시 좌파는 나를 '숨어 있는 부르주아'라고, 우파는 나를 '공산주의자'라 매도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구나(웃음). 중국을 봐라. 기업과 은행의 훌륭한 매니저는 다 공산주의자다. 어떤 자본주의자보다도 뛰어나다. 반면 북한의 김정은도, 쿠바의 카스트로도 다 공산주의자다. 과연 누가 진정한 코뮤니스트인가."

    
	슬라보예 지젝.
    /사진=도쿄·EGAO Korea
    ―하지만 당신은 한국에서 좌파와 진보진영에 의해 전유(專有)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정직한 보수주의자에 대해서는 항상 큰 존경을 표시해 왔다. 하지만 반동(reactionary)들은 제외다. 일부 무능한 보수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언제까지나 실패 없이 지속될 거라고 믿는 것 같다. 고치지 않고 자본주의가 계속 작동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나를 마르크시스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좌파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다."

    ―좌파에 대한 당신의 비판은.

    "우선 전제할 것은, 20세기 공산주의 실험은 완전히 파국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 교육과 의료의 진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실패했다. 유럽 좌파의 사민주의 복지국가(프랑스·스웨덴·독일) 모델도 실패 중이고, 제3세계 국가(남미·베트남)도 성공적인 모델은 아니다. 어떤 좌파학자들은 유교 사회주의나 불교의 자비 개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그렇다면 당신의 대안은.

    "(나를 공산주의자라 믿는 사람들은) 아마 놀랄 것이다. 나는 지금 유럽에서 유행하는 지역 운동과 공동체 운동을 전혀 믿지 않는다. 지금 당장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훨씬 더 강력한 국가(much stronger state)'다. 마르크스는 국가가 소외를 만들어낸다며 국가가 소멸할 것이고 소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강력한 국가만이 우리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물, 전기, 직업, 그리고 은행과 금융제도까지 통제하는 강력한 국가다. 물론 전체주의적 국가와는 당연히 다른 개념이다."

    
	어수웅 기자(왼쪽)와 슬라보예 지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젝은 이번 저작에서 헤겔(1770~ 1831)을 복권시켰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한 이후, 관심 영역에서 사라진 절대적 관념론자다. 왜 헤겔일까. 그는 자유, 평등, 박애의 명분을 내건 프랑스 혁명이 공포정치와 관료제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마무리됐을 때의 아이러니, 똑같이 선한 명분을 내걸었던 공산주의 혁명이 도달한 허무한 종착역을 예로 들었다. 지젝은 "헤겔은 터무니없는 관념론자가 아니라 프랑스 혁명 이후 우리가 뭘 해야 할지를 알려준 위대한 사상가"라는 것이다. 그는 이 시대가 헤겔을 다시 불러냈다고 했다.

    ―이 시대가 도대체 어떤 시대길래.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9번'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다. 이제는 변혁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21세기는 거꾸로다. 온갖 새로운 것이 시시각각 등장하고 있다. 생명 유전학, 뇌과학, 환경 생태학…. 그런데 이 학문을 통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은 성찰과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독토르(doctor), 독토르, 독토르로 불러달라(웃음).” 슬라보예 지젝은 정신분석학, 철학, 명예박사까지 3개의 박사학위 보유자다. 라캉과 헤겔, 할리우드와 MTV를 가로지르는 분방한 글쓰기로 ‘문화이론의 엘비스 프레슬리’로도 불린다. 미국 프린스턴, 영국 버베크 등 10여개 대학에서 강연했다.
    화려한 화술로 이름났지만 그는 틱(tic) 장애를 갖고 있다. 인터뷰 내내 코를 찡그리며 자주 킁킁거렸다. 만성 틱은 보통 스트레스 때문. 이 마르크스주의자를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일까. 그는 “오늘날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문제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다”면서 “모든 걸 제로에서 시작해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