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는 이'부터 애덤 스미스의 '사회정의'까지… 정의 개념의 변천사

입력 : 2011.06.18 03:10

정의의 역사
데이비드 존스턴 지음|정명진 옮김|부글북스|360쪽|1만5000원

지난해 출간된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100만권이 넘게 팔렸다. 인기라니 샀지만, '완독'을 포기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것이 정의'라고 딱 부러지게 정답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전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정의(正義)'라고 풀이하지만, 정의에 대한 기대치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정의'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이유다.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 교수가 쓴 신간 '정의의 역사'는 '정의란 무엇인가'보다는 좀 더 쉽게 정의라는 개념의 변천사를 훑는다. 교과서 같은 구성이다. 함무라비 법전부터 현대의 존 롤스까지, 정의에 대한 여러 개념이 논쟁과 경쟁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내고 진화하는 과정을 시대순으로 적었다.

'눈에는 눈'에서 사회정의까지

"이 땅에 정의가 도래하고 악과 사악을 타파하여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을 억누르지 못하게 하고…" 함무라비 법전의 유명한 문구다. 그러나 고대의 정의는 '보복'과 '복수'였다. 이른바 '상호성(reciprocity)'이다. 준 만큼 받는다는 원리다. 보복으로서의 정의 혹은 상호성 개념은 중근동지역을 중심으로 고대 사회에 널리 퍼졌으며 이후로도 강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개념이다.

상호성을 배격한 것은 그리스 철학이다. 플라톤은 정의란 세속적 관심사가 아니라 궁극적 관심사라고 봤다.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사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상업과 도시국가, 민주정의 발전이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은 절대로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적용된 것은 고대 로마시대다. 키케로는 "정의는 타고나는 것"이라며 정의는 인간 사이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안내자의 도움을 받으면 미덕을 성취하지 못할 국가도 없고 미덕을 개발하지 못할 사람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정의 개념은 신 앞에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기독교 사상의 전파와 함께 확산됐다. 이런 인식은 '인간들은 사회적 세계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형성해 나갈 수 있다'는 소피스트들의 생각과 함께 이후 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구에서 정의 개념은 17세기 홉스를 거치면서 "모든 인간은 능력에 관계없이 똑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의의 문제에서 평등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칸트의 주장과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의 능력과 성격에 나타나는 차이는 거의 사회적 산물, 교육 기회의 산물, 노동의 구체적 분화의 산물"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으로 갈린다. 특히 "사회 안에서 일궈진 거의 모든 부(富)는 단순히 개인들의 생산물을 하나하나 모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통찰은 정의 개념이 '사회정의'로 이어지는 계기를 제공했다.

대체 뭐가 정의인가

〈부자가 부동산을 남기고 사망했다. 상속인은 부동산이 남은 줄 모르고 있으며 이미 충분히 부유하다. 그러나 부동산을 관리해온 재산관리인은 경제적으로 절박하다. 이 경우 재산관리인은 상속인에 부동산의 존재를 알려야 하나〉 〈난파된 배에서 탈출한 생존자가 널빤지 하나를 겨우 붙잡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생존자가 다가온다. 널빤지는 한 사람 무게밖에 버티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질문에 대한 칸트의 대답은 명쾌하다. 칸트는 앞의 예에 대해선 부동산을 돌려줘야 한다고 답한다. 도덕적·윤리적으로 옳은 일이 선의(善意)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뒤의 예에 대해선 나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상대적 의무', 타인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 것은 '절대적 의무'라며 이 역시 다른 사람이 널빤지를 잡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다음 예는 어떤가. 〈프랑스가 지도급 시민 3만명을 한날한시에 잃어버린다. 왕의 형제와 최고위 귀족들, 고위 관리들, 각료들이 희생자에 포함됐다. 엄청난 손실이지만 국가에 '정치적 해'를 전혀 입히지 않았다. 이번에는 프랑스가 3000명의 시민을 잃는다. 그중엔 과학자와 예술가, 시인과 화가, 음악가, 농민 섬유제조업자 등이 포함됐다. 만약 이들 3000명이 한꺼번에 사라진다면, 프랑스는 즉시 '생명 없는 시신'이 될 것이다.〉 3만명의 특권층은 가치 없는 인간, 3000명의 기술자는 없어서는 안 될 부류로 단정한 이는 프랑스의 공상적사회주의자 생시몽(1760~1825)이었다. '정의(正義)'는 그 어떤 하나의 '정의(定義)'를 허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