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개혁' 이어질까 중단될까

조선일보 | 안석배 기자 |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2010.06.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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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이사회, 연임 놓고 찬반 '팽팽'
4년 동안 재임하면서 대학교육 시스템 바꿔 다른 대학엔 경쟁 바람
"소통하지 않는 리더십 국내 과학계 무시 문제" 학내외 부정평가도 많아

'대학개혁의 아이콘(상징)'으로 통하는 서남표(74)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의 연임이 불투명해졌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24일 "내달 임기가 끝나는 서 총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 15일 카이스트 이사회가 열렸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내달 2일 다시 이사회가 열리지만 서 총장에게 불리한 여론이 일부 형성되고 있다"고 밝혔다.

당연직인 서 총장을 제외한 18명 이사들 사이엔 찬·반 입장이 맞서고 있으나, 연임 반대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가 있다고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지난 4년간 그는 ▲교수정년 심사강화 ▲성적부진학생 등록금 징수 ▲영어강의 도입 등을 도입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며, 카이스트뿐 아니라 한국 대학들의 개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카이스트 학내와 일부 과학계에서는 서 총장에 대해 "독선적 리더십" "성공가능성 낮은 연구에 예산을 낭비한다"고 비판했다. '개혁 전도사'라는 극찬과 '소통 안하는 독재자'라는 혹평이 동시에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내달 2일 이사회에서도 총장을 뽑지 못하면 서 총장 임기(7월 13일) 전까지 이사회를 한번 더 개최하고, 그래도 결정이 나지 않을 경우 총장 공석(空席) 상태에서 새 총장을 뽑겠다는 계획이다.

기사 이미지 다음 달 임기가 끝나는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의 연임을 놓고 이사회에서 찬성·반대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대학개혁의 아이콘'

서 총장이 2006년 7월 취임 이후 4년간 대학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경쟁하라'는 것이었다. 첫 작업은 교수정년 강화. 지난 4년 사이 정년심사를 받은 카이스트 교수 148명 가운데 24%가 탈락했으며 '철밥통'으로 불렸던 교수사회에 본격적인 경쟁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서 총장은 "4년 전 학교에 왔을 때 교수들 정년은 거의 자동적으로 보장된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연구업적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밝혔다. 엄격한 교수 정년심사는 다른 대학들도 잇따라 도입해 대학가에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에게도 경쟁을 강조했다. 2007년부터 도입된 '성적부진학생 등록금 징수제도'로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등록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부담하게 됐다. 이전까지 카이스트에서는 모든 학생이 무상교육을 받았다. 서 총장은 "우리의 관심은 학생이 공부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뿐"이라고 밝혔다. 영어강의 전면 도입은 "교수에게는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글로벌 대학으로 가려면 당연히 가야 할 방향"이라고 그는 말했다.

서 총장의 강력한 개혁이미지로 카이스트는 지난 4년간 1223억원의 기부금이 모였으며, 기부건수도 2006년 1000여건에서 지난해에 3324건으로 3배 이상 뛰었다.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와 QS가 실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KAIST는 2005년 세계 232위였지만, 2009년에는 69위로 급상승했다. 서 총장은 "우리는 이제 세계 10위권 대학을 목표로 나아간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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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않는 리더"

화려한 실적에도 불구하고 서 총장에 대한 학내의 비판이 적지 않다. 요지는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全) 강의 100% 영어 진행을 서 총장이 밀어붙였지만 교수들은 "전공 과목은 영어 강의를 할 수 있지만 교양 과목까지 영어로 할 필요가 있냐"면서 "수업 시간 질문이 없어지고 효과적인 수업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신소재학과 유진 교수는 교수협의회보에서 "서 총장의 독선적인 학교운영으로 교수들 사기가 저하되고 학과 및 공식기구의 자율성이 손상됐다"며 "일을 하더라도 서로를 믿고 격려해줘야 대학이 발전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서 총장을 반대하는 교수들이 연구비 배분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학내 일부의 주장도 있다. 한 교수는 "서 총장의 반대파에 대한 핍박으로 교수들이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국내 학계를 무시하는 듯한 서 총장의 태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예컨대 서 총장은 "한국 과학계가 지난 30년간 뭘 했느냐"는 취지의 발언으로 과학계 원로들로부터 반감을 샀다고 과학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방인'의 한계?

서 총장의 대학개혁 업적은 화려하다. 그럼에도 '연임 불투명'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이방인'의 개혁 리더십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 총장은 서울사대부고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매사츠추세츠 공대(MIT)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7월 카이스트 총장에 영입됐다. 국내에는 학맥과 인맥이 거의 없으며, 그에 따라 힘이 부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의 전임자인 로버트 러플린(노벨물리학상 수상) 카이스트 총장도 개혁을 지휘하다 교수들의 집단 퇴진 압력을 받고 임기 2년을 남기고 중도 사퇴했었다. 서울의 한 사립대 보직교수는 "러플린 전 총장과 비할 때 서 총장의 개혁 비전과 학교발전 전략은 구체적이고 탄탄하다"며 "그럼에도 그가 중도하차한다면 우리 사회가 이방인 리더를 '왕따'를 시키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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