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 웅
중 앙 인사위원회 위원장

OECD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으로 이주하는 이민인구가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99년의 1만 2천 655명보다 20.9%나 증가한 1만 5천 307명이 2000년 한 해 동안 해외로 이주했다고 한다. 해외이주자 급증은 국내 고용시장이 불안해지면서 30-40대 전문직의 이주가 늘어난 것과 더불어 조기 유학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해 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취학 자녀를 둔 학부모 2명 중 1명은 여건만 허락된다면 자녀를 외국의 학교로 보내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초 새 천 년의 시작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희망과 새로운 계획으로 한 해를 시작하던 것과는 달리 올해는 현재의 상황 또는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이는 공직사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근래 들어 무력증이 심각해진 공무원들의 절반 가량이 공직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그 동안 공직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 신분의 안정 및 공직에 부여되는 공적 권력 등으로 인해 공무원을 희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특권이 줄어들고, 근무여건도 열악하며, 향후 정부의 역할에 대한 회의가 생겨 공직에 대한 매력이 반감됨에 따라 공직사회를 떠나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공직사회를 떠나고, 학교를 떠나고, 한국을 떠난다는 것이 꼭 절망적이거나 비관적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닐 것이다. 장소의 공간(space of place)에서 흐름의 공간(space of flow)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중요하고, 그 과정을 훌륭히 수행해낼 때 개인이, 단체가, 나라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어 경계라는 의미가 무색한 '열린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개인과 조직 그리고 국가가 세계화라는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창의적으로, 보다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하는 때가 왔기 때문이다.

중앙인사위원회는 1999년 5월 출범한 이후 개방형직위제도의 시행, 직무분석 실시, 공무원 보수현실화 5개년 계획, 고시제도 개편,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등의 각종 인사개혁조치를 통해 공직사회의 인사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무원들이 일에 대한 열정과 삶의 만족을 제고하기 위해 공직사회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이면서 전략적인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방형직위제도는 지난 해 2월 28일 대통령령을 제정해 시행 1년에 접어들고 있다. 민간인 채용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이유로 비관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직사회의 개방이란 그렇게 쉽게 빨리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민간과 공직사회의 지금까지의 벽을 허물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며 지금은 그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꾸준한 개방형직위 운영실태 점검을 거쳐 평가한 후 제도 개선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보다 능력있는 인력의 확보를 위해 활발한 홍보도 이어갈 것이다.

국가고시라는 어려운 관문을 거쳐 공직사회에 진출한 우수한 인력들이 민간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시제도 역시 개편을 추진 중이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적합한 기본 소양과 전문능력을 지닌 우수인력을 공직에 유치해서 정부부문의 경쟁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장기간 고시 준비로 인한 고학력 우수 인재의 사장을 방지하고 국가 인력의 효율적인 활용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 기본 목적이다. 현재의 지식평가 방식인 1차 시험을 영역별 평가방식인 공직 적격성 시험(PSAT, Public Service Aptitude Test)으로 대체하여 초급관리자로서 지녀야 할 기본적 소양과 공직 적격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현행 2차 시험과목을 전문지식 측정에 필요한 과목으로 조정하여 수험생의 부담을 완화시키고 3차 시험 역시 무자료 면접(Blind interview)으로 인성과 자질을 평가하고자 한다.

공무원 보수현실화 5개년 계획은 공무원의 사기를 높여 각종 개혁에 최선을 다하고 행정서비스를 향상시키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2004년이 되면 공무원의 보수가 민간과 동일한 수준이 되도록 보수현실화 계획을 지속적으로 진행해나가면 공무원의 삶의 질이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연구원에 의뢰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현재 우리 공무원의 보수는 100인 이상 민간 중견기업의 88.4%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과의 차이는 더 심해서 30대 그룹과 비교하면 77.8%에 불과한 수준이다. 더구나 상위직급으로 갈수록 그 격차는 더욱 확대되어 2-3급의 경우 민간기업의 72.6% 수준에 불과하다. 공직사회에 전체 대학 졸업 이상자가 65.4%로 민간부문의 53.6%보다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공무원의 보수가 상대적으로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공직사회를 민간에 개방하고 민간과의 벽을 허문다는 차원에서도 공무원 보수의 현실화는 꼭 실행되어야 하는 과제 중 하나이다.

계급제도를 새로운 행정환경에 맞추어 행정의 책임성과 전문성을 높여 성과주의 인사관리를 실현하는데 적합하도록 개편하는 작업 역시 진행 중이다. 고위직에 대해서는 성과책임을 강화하고 중·하위직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맡고 있는 일에 대해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업무의 중요성과 난이도에 따라 그에 상응한 처우가 이루어지고 행정의 전문성을 높여 나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공무원 인사의 근간이 되어온 계급제도가 국가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 규모와 기능의 팽창, 민간부문의 급속한 발전, 디지털 혁명 등으로 정부 인력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새로운 환경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계급제도는 공무원 개개인의 책임과 역할의 모호한 구분으로 성과주의 인사제도의 도입에 장애가 되고, 1년 내외로 자리를 이동하는 순환보직 때문에 전문 행정인을 양성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계급단계를 거쳐 이루어지는 다단계 의사결정과정이 정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나노기술의 발달로 이제 노동은 로봇이 하고 인간은 보다 창의적인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관료조직의 계서제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외교통상부와 기상청을 대상으로 시작한 직무분석은 계급구조 개편을 위한 시작단계가 될 것이다.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 모두 조직의 인적자원은 조직이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관리되어야 하며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찾아 활용해야 한다. 직무분석은 해당 직위에 대한 직무값을 매겨 그 자리에 적절한 인력을 충원하여 활용하는 등의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공직사회의 특수성을 이유로 직무분석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경쟁사회에서 성과 위주의 인력관리를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이다.

뉴욕 맨해튼에는 근래 들어 중저가의 스시 바가 날로 번창하고 있으며 샌드위치만큼이나 뉴욕의 샐러리맨들이 즐겨 찾는 메뉴가 되었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날 생선을 어떻게 먹느냐며 초밥을 꺼리던 미국인들에게 초밥이 인기메뉴로 자리잡기까지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스스로의 경쟁력을 닦아나가는 것 못지않게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응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세상이 변해서 디지털 시대, 정보화 시대, 지식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분야의 경쟁력을 닦아간다면 경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맨해튼으로 이주한 일본인들이 모두 샌드위치 가게를 열고 미국인 가게보다 더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들려고만 노력했다면 오늘날의 스시 바로 성공한 일본인들은 없었을 것이다.

이민과 이직은 현대사회를 사는 삶이 한 양식일지 모른다. 그러나 공직사회의 일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돈이나 명예에 앞서 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책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은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을 공무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19세기는 자유의 세기이며 20세기는 평등의 세기, 21세기는 박애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프랑스 대표 지성 자크 아탈리의 말처럼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주변과 이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더 이상 공직사회를 '철 둥지(iron cage)'라며 비판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을 일반인과 마찬가지의 생활인으로 인식하고 서로 이해하고 협력할 때 국민 역시 양질의 행정 서비스를 누릴 수 있으며, 민간과 공직사회가 더불어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전달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