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間의 행복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나온다

「사람과 공간」

지난 봄 시청 앞길을 오가며 본 간판 중에는 광주 비엔날레에 관한 선전이 있었다. 주제는 인간으로 한자로 人間이라고 써 있었는데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써 놓은 영어 주제어가 눈길을 끌었다. 보통 휴먼 빙(human being)이라고 썼을 법한 표현이 그렇지 않고 「사람과 공간」(men and space)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人間의 「간(間)」자가 공간을 의미함을 모르는 바 아니나 새삼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간, 사잇길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미처 모르고 지냈던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격도 행복의 일종이다. 그러나 「人」과 「人」사이의 「間」이 채워지면서 느끼는 행복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잘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은 나와 그 사람간의 공간을 풍만하게 해주는, 삶의 윤활유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대학에 입학했을 때, 유학을 떠난다며 잠시의 헤어짐을 고하는 제자에게서,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고 찾아오는 제자에게서, 결혼한다며 인사를 온 졸업생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관계가 다 희소식들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운동권에서 저항과 젊음을 맞바꾼 후 취업도 되지 않아 좌절하는 가운데에도 찾아 온 제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 모두가 아름답다. 사람과 사람의, 그 수많은 사이 공간에 뭔가가 채워지면서 서로를 지탱해주는 힘이 됨을 느끼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나를 매우 행복하게 해준 관계가 하나 있다. 상대는 좋은 대학에서 보람 있는 공부를 할 뻔했던 젊음이 당시의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이념과 신조 때문에 오랫동안 囹圄(영어)의 몸이 되었던 사람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고난의 길을 딛고 새 출발에 부풀던 때였고 사회 재적응을 위해 조금씩 친구가 되어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는 속된 표현이지만 再起에 성공해 다른 나라에 가서 당초에 하려던 공부를 하면서「사람의 권리」에 관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知人들을 떠나보낼 때의 행복

물리적 거리도, 연령의 차이도 상당히 있어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히 모르나 지난 두 해 동안 외국 여행길에 두 번 만나 근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囚人(수인)의 몸으로 익혔던 어학실력이 꽤 도움이 되어 이젠 외국에서 하는 공부가 몸에 익숙해진 듯 싶다.

나는 그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여 젊었을 때 품던 웅지를 펴길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이것은 그와 나 사이에 형성된 공간과 관계가 만들어준 기대이고 희망으로, 이런 데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사이는 매우 중요하다. 「음악이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강하게 부정할 것이다. 그러나 소리가 일차적으로는 음표에서 나오지만 음표와 음표의 사이에 담긴, 침묵하는 메시지까지 소리를 내야 연주가 완성된다는 것은 글에서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紙背(지배)를 철할 수 있는 눈의 힘이 있어야 모든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사람과 사람이든 사람과 자연이든 그 사이에는 뭔가 채워져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이 채워지면 그 관계는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누구나 만족하고 행복을 느낄 것이다. 그 사이에 혹이라도 불신과 증오가 존재한다면 그 조직이나 사회는 더 볼 것이 없다.「人」 의 「 間」 사이에 신뢰가 채워지는 것을 누군가가「사회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했다.

인간자본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한 개인이 유능한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그 사이의 공간이 원만해야 서로 빛을 보는 것이다. 공간의 중요성은 더 이상 강조하면 贅言(췌언:군더더기 말)이 된다.

사람들은 여러 階梯(계제:계단과 사닥다리, 일이 사닥다리 밟듯이 차차 진행되는 순서)에 행복을 느낀다. 일의 성취나 보람 같은 데서 만족하고 때로 행복을 느끼겠지만, 행복은 개개인의 만족에서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 만족할 때, 공간이 메워져 가면서 더 커진다.

그 공간이 「 人」의「間」사이에 신뢰로 채워질 때 그 사회에 진정한 행복이 온다. 그 길의 출발은 제자를 포함한 知人들을 평생 내 곁에 묶어두지 않고 잘 되어 「 떠나는 것」을 내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는 마음가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