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3-09-24 03:00:00  기사수정 2013-09-24 03:00:00


 고등교육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고등학교는 문·이과 구분을 없애 학문 간 null경계를 넘으려는데 대학은 분과학문의 칸막이를 허물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7학년부터 수능에서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는 방안을 세 가지로 검토하고 있다. 3안이 채택될 경우 문·이과 구분은 없어지고 국영수를 공통학업능력을 측정하는 쪽으로 범위를 단일화하게 된다. 2안이 채택되어도 수학의 범위는 크게 달라진다. 내가 방문한 적이 있는 민사고나 한가람고 등은 무계열·무학년제를 실시한 지 오래다. 피타고라스와 아인슈타인의 말마따나 ‘음악이 수학’이라는 명제를 실천하고 있다.  

학문의 뿌리는 수학과 철학이다. 수학을 못해서 문과 간다는 것은 인생의 단추를 잘못 끼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학교육은 인간과 사회와 자연현상을 바로 보고 문제풀이를 도우려는 것이다. 분석과학(수학, 통계학, 방법론 등)과 경험과학의 체제가 오래도록 유지되어 왔으나 지금 같은 분과학문 체제로는 문제를 바로 보지 못한다.              

학문의 계열별 기능별 분과는 1975년 서울대 관악캠퍼스 이전이 계기가 된다. 인문·사회·자연 등이 제각기 둥지를 틀어 기존의 문리과(Liberal Arts and Science)가 없어지면서 대학의 여유와 낭만까지 사라졌다. 분과학문들이 자신의 아성을 높이 쌓아 봤자 ‘진리는 오로지 죽음의 눈으로만 발견할 수 있다’(진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의미)는 단테의 말처럼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다.

학문은 지금 인지과학과 뇌과학의 흐름에 따라 체성감각(somatosensory·체감)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현장에서 몸으로 느끼지 못하면 허상인 현실을 학문한답시고 왜곡하는 줄 모르고 있다. 21세기 지식의 나무는 한쪽은 분과학문들이 자리 잡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바이오, 생명과학, 뇌과학, 로보틱스, 우주과학 등이 경계를 넘어 융·복합의 차원으로 가지를 뻗고 있다. 요즘 학문 추세는 ‘신경’ 접두사가 붙는다. 신경법학, 신경경제학, 신경정치학 등 몸으로 학문을 해야 한다. 의학이 사회과학을 파고든 것이다.

선거 후보자 중 선택하는 기준이 정당, 인물, 이슈 등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사실을 미국 뇌 스캔 실험으로 알게 된 것이나, 법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뇌와 감정을 모르는 채 법 논리로 아무리 따져도 정의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쯤은 보편적 지식이 되었다. 대학교수가 기존의 틀 속에서 푹신한 안락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거나, 정부의 정책 따라 어릿광대춤을 춰서야 되겠는가. 연구지원비가 깎인다고 서울대 자연대학의 물리·천문학부가 옛날 물리학과와 천문학과로 지난봄 회귀한 난센스가 상기되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가 선택한 조합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영역에서 빌려온 요소들로 형성된 것’이라는 앙리 푸앵카레(1854∼1912·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과학사상가)의 말을 되뇔 때가 되었다.

대학에서 의·공학은 오래전부터 융합작업을 하고 있다. 기술에 인문과 예술을 입히려고 애쓰고 있다. 소통의 핵심인 소리와 리듬으로 말하면 음악만 아니라 공학에서도 깊은 연구를 하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잇는 학문, 사회과학이 정치와 경제를 가르친다고 사회에 신뢰가 쌓이고 정의가 구현되고 있는가. 대학은 학생더러 금을 그어 놓은 트랙 위의 허들(학과와 전공) 넘기를 더이상 강요하지 말고 방목하듯 초원에서 뛰놀게 해야 한다.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다가오는 고등학생들이 창조와 희망의 내일을 느낄 수 있게 대학은 한시바삐 자유전공학부를 늘리고 융합인지과학대학부터 만들어야 21세기 대학으로 살아남는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명지전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