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주소> http://news.joins.com/article/aid/2007/03/06/2893180.html


[시론] 대학 살리는 5가지 방법 [중앙일보]  


대학의 요체는 교육과 학문 연구다. 그 기초인 자유와 지성은 중세 이후 세속적 실용성과 초월성을 각각 앞세운 국가 및 교회와 늘 부딪쳐 왔다. 현대로 올수록 대학은 정부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법.규정.행정가이드라인.예산이라는 관료적 세속성의 틀 속에서 합리적 지성과 자유의 날개는 꺾일 대로 꺾였다.

교육인적자원부라는 거대 정부 조직의 실체를 보면 숨부터 막힌다. 부총리로 승격된 교육부는 인적 자원에 대한 조정 능력도 인정받지 못한 채 36개 담당관과 11개 팀을 중심으로 540명의 본부직원이 교육예산만 30조4000억원(정부예산의 19.7%)을 관리한다. 여기에 기금과 민간자본유치사업(BTL)을 합치면 36조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산하에 일반대학.산업대학.전문대학 등 모두 42개 기관을 거느린다. 이들은 대학 옥죄기를 다반사로 한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는 헌법(31조 4항)의 기본 정신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대학의 설립과 운영 규정 등을 앞세워 학사운영과 교육 과정을 시시콜콜 간섭하고 규제한다. 학사조직.인사.학생정원.등록금.학과신설.학칙 등 규제사항은 한이 없다. 심지어 대학입시 논술 문제까지 간섭한다. "커닝을 막아라" "FTA 홍보자료는 도서관 입구에 놓아라"는 공문에 이르면 대학은 유치원 수준으로 전락한다. 정부가 이렇게 하니 대학이 관료화되는 것은 잠깐이다. 일례로 학생만큼 엄격히 뽑아야 할 교수 뽑기가 지극히 관료적인 형식요건만 충족하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정부가 대학을 요리하는 식재료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예산이다. 정부는 국공립과 사립대학지원금으로 3조3000억원, 그리고 BK21 연구사업비로 1조8000억원을 갖고 대학을 '사막의 오아시스'로 만들려 한다. 마른 목을 적실 때는 좋겠지만 몸뚱이와 정신이 관료적이 돼버리면 자유를 표방하는 유트라 패리아(다재다능인)를 길러낼 수 있을까? 정부의 정책은 어떻게 비판할 수 있을까? 게다가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정치 로비스트 뺨칠 정도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학교수를 정부가 어떻게 볼까?

정부의 생리란 이렇다. 어떻게 해서든지 조직과 인원을 늘리고 간섭의 빨간 끈, 파란 끈, 검정 끈을 굵게 가늘게,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약하게 조절한다. 정부는 대학의 학문과 교육의 본질을 인정하지 않고 여느 기관조직 이상으로 생각지 않는다. 미래를 준비하고 이끌 첨병인 대학을 그렇게 인식하고 관리하면 미래를 대비해야 할 정부가 가는 길은 편하고 밝을까?

늦지 않았으니 교육부가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다. '대학자율화 추진위원회'는 백번 열어도 정부가 만든 의제대로 가는 한 효과가 없을 것이다. 대신 대학을 창조적 상상력의 화신답게 만들기 위해 ①미국의 교육부처럼 연방정부는 대학학사 행정에 간여하지 말고 주가 중심이 돼 주지사, 주 입법부, 주립 대학 교수와 직원 등으로 구성되는 '교육위원회'가 중심 역할을 하게 하든지 ②영국의 교육고용성처럼 재정지원금의 배분에만 관여하고 학사운영의 대부분을 대학에 일임하든지 ③프랑스의 고등교육평의회처럼 교육의 장기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배분하고 정책 자문을 하게 하든지 ④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제안처럼 교육부의 기능을 재정과 회계로 제한하든지 ⑤고등교육은 태국처럼 총리실 산하 대학위원회로, 아니면 일본의 문부과학성(문화청도 이 안에 있다)처럼 과기부와 합쳐 '교육과학부'로 통합하는 길이 있다.

정부는 체중 감량부터 하고 간섭의 끈을 놓아야 대학이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햇볕을 쬐고 건강해져 세계무대에서 맘껏 뛰놀 수 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7개 창조력의 원리 중 스푸마토(일도양단의 논리가 아닌)를 교육부부터 배웠으면 한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