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검증 비공개로 … 2단계선 정책에 집중을"

<중앙일보 2014.5.15일자  5면>        

청문회 개선, 여야 대타협 필요
후보 검증 최소 한 달 이상 하고
청와대, 신상자료 국회와 공유
답변시간 늘려 해명 기회도 줘야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2000년 인사청문회가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인신공격과 사생활 폭로 등 인사청문회가 ‘청문회 정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해 2월 “인사청문회가 개인의 인격을 과도하게 상처 내지 않고 실질적인 능력과 소신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국회에 당부했다. 똑같은 우려와 논란이 14년간 되풀이돼 온 셈이다.


2002년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본회의에서 부결된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은 이듬해 펴낸 자서전 『지금도 나는 꿈을 꾼다』에서 “특위 위원들이 나를 피의자로 여긴다는 사실이 상당히 불쾌했다. 나의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며 몰고 가는 청문회 분위기에 충격을 받았고, 무척 당혹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인사청문회가 신상털기식에서 정책능력 검증의 장으로 바뀌려면 여야 간의 대타협을 통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14일 “다소 하자가 있더라도 전문성과 책임감 있는 사람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러려면 청문회가 융통성을 갖고 유연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6년 교육부총리에 지명됐다 논문 표절 의혹(이후 사실무근으로 판명)으로 낙마한 국민대 김병준 교수는 “우리 정당에서는 정책 경쟁을 통해 국민을 설득, 리드해 가는 능력이 없어 상대를 깎아내리는 네거티브만 한다”며 “두 거대 정당은 국가 운영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이끌 건지에 대한 기본 철학을 완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여야가 청문회 개선의 구체적 방향을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선 도덕성 검증에 매몰돼 있는 인사청문 절차부터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2010년 마련한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선방안’ 보고서는 의원들이 과도하게 후보자의 사생활 검증에 집중하고 있는 원인을 “후보자의 능력이나 전문성은 상대적인 것으로 약점을 잡기 어렵지만 도덕성 문제로 후보자를 흠집 내기는 쉽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단계 인사청문회를 대안으로 내놨다. 1단계에서는 후보자의 학력과 병역, 탈세 여부 등 개인사항을 중심으로 도덕성을 검증하고 1단계를 통과한 후보자에 대해 2단계로 업무 수행능력과 전문성을 검증하자는 안이다. 후보자의 정책능력 검증에 치중하기 위해선 도덕성의 기준과 잣대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해 먼저 여야가 토론을 통해 세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윤명희 의원은 인사청문회에 앞서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위한 인사청문 소위원회를 열도록 하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공직을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결정적인 도덕적 하자가 없다면 1단계 검증은 비공개로 해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문가·교수들도 비슷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명지대 임승빈(행정학) 교수는 “후보자 개인에 대한 신상공개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반대 당 입장에서는 사돈의 팔촌까지 검증할 태세”라며 “청문회 취지도 야당의 흠집 내기 목적이 강해 미래 지향적인 정책 검증보다 과거 행정에 대한 신상 검증이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는 “인사청문회 기간을 현행보다 늘리고 윤리적인 문제는 사전 예비심사에서 충분히 검토한 뒤 청문회장에서는 정책적인 이슈에 집중해야 한다”(중앙대 손병권 교수), “의원들이 후보자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고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되 인사청문 대상을 늘려 낮은 직책의 공직자는 야당의 선호를 반영해 정치적 갈등을 완화해야 한다”(인하대 최준영 교수) 등의 견해가 나온다.

총체적 인사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후보자들에 대한 추천 과정 자체가 불투명해 국민과의 눈높이가 안 맞는 후보들이 낙마한다는 관점에서다. 임승빈 교수는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투명하고 공정한 평가를 기반으로 한 인사 추천 시스템 구축이 먼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운영위는 또 ▶촉박한 청문회 기간 ▶부실한 검증자료 제출 ▶후보자의 부족한 답변시간 등을 문제점으로 꼽으며 “청문회 기간을 최소 한 달 정도로 연장하고 청와대에서 후보자 임명 시 참고한 국정원·경찰청·국세청의 자료를 공유하되 후보자에게도 충분한 답변시간을 할애해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인사 실무를 맡았던 김명식 전 인사기획관은 “국회가 ▶병역·납세의무 위반 ▶위장전입·부동산투기 ▶논문표절 등 명확한 임명불가 기준을 법으로 만들고, 청와대가 기준에 맞는 사람을 임명하면 부실 검증 논란을 최소화하고 정책 검증 청문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호·이소아 기자
(gnom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