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광웅] 내 값어치는?

[2010.11.22 18:02]  


“대학이 엘리트교육의 틀에만 몰두하면 다음 세대가 더 나아지기는 어려울 것”

고등교육을 받기 위한 첫 관문인 수능시험이 지난주 끝났다. 모두들 고생하며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싶어 온갖 노력과 정성을 쏟았다.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도록 만든 제도 때문에 한 생을 살면서 거쳐야 할 관문이 한두 개가 아니다. 대학 입학은 그중 매우 중요한 관문이다. 그럼 좋은 대학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으면 나의 내일은 보장받는 것일까.

5년 전쯤의 일이다. 내가 가르치던 ‘현대사회와 리더십’ 학부 강좌에 초대된 어느 기업 회장은 최신의 현란한 자료를 들고 와서 학생들에게 성공해 세계인이 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라고 했다. 최재천 교수는 서울대학인이라면 큰 사상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원순 변호사는 남을 앞세우는 큰 봉사자가 나와야 세상이 평온해진다고 했다. 그 다음 시간에 학생들에게 어떤 인물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300명 수강생 가운데 12명씩 최 교수와 박 변호사의 말씀에 동의하고 나머지는 손을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은 세속적인 성공도 하고 봉사도 하는 양쪽 삶을 살겠다고 응답했다.

엘리트를 키우겠다는 대학 교육의 맹점을 지적한 외국의 글 하나가 생각난다. 이 글을 우리 식으로 좀 바꾸어 표현하면 한국 대학 졸업생 상당수는 서울의 강남역 근처나 테헤란로, 아니면 여의도나 광화문에 진출하는 게 소원일 것이다. 공사(公私) 부문 어디에서나 수준 이상의 월급을 받고 장래가 보장되는 직업을 얻는 것이 일차 목표일 것이다.

예일대와 클리블랜드 주립대의 교육을 비교하며 쓴 이 글은 일류대 학생일수록 세 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첫째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소통할 줄 모른다는 약점이 있다. 학교에서야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을 익혀야 한다고 배웠지만 집에 온 하수구 배관공과 단 한마디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W 데레시윅즈는 썼다. 둘째, 엘리트 교육을 받은 학생 대부분은 자신의 가치(self worth)를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즉, 수능 성적이며 토플시험 같은 점수에 집착해 정작 내가 누구인지, 자신의 운명이나 정체성과 연관된 세상의 실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이들 대부분은 지능과 학업성취도를 측정한 것이 내 전부이며 여기에 윤리적이며 형이상학적 감각도 포함된다고 착각한다. 셋째, 별다른 경험 없이 오로지 자아가 성공하는 능력에만 집착해 위험을 회피하려 드는 지극히 비지성적이고 반직감적인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대학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지식인이 된다는 것이고 나아가 지성인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이들의 지능이 실재와 동떨어진 개념적이면서 분석적인 틀에 머물고 사회적·감정적·창조적 지능을 외면한다면 의문투성이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이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도 못한다.

머리 좋고 사려 깊고 창의적이더라도 엘리트 교육이 그어 놓은 선 안에서 색깔 고르기에 몰두할 뿐 길고 먼 지적 여정을 외면한 채 희생자 정신과 마음을 다지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산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실패의 두려움을 씻고 위험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하며, 상상력과 용기를 키우면서 ‘내 아이디어 하나로’라며 큰 열정을 갖는다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미래는 내 것이 된다.

당대에 찬연히 빛난 예술가도 역사의 그늘에 묻혀버린 경우가 많다. 그런가하면 귀차르디 백작 가문에 청혼했다가 변변한 직업도 없이 잘난 척만 한다며 딱지 먹은 베토벤은 어떤 인물이 되었던가. 최근 서울대 야구부를 맡은 이광환 감독은 학생들이 지는 것을 배우는 것도 큰 교육이라고 했다.

대학 교육은 나 자신부터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그 다음에 나와 너의 관계를 알게 하는 것이고 점차 세상을 알게 된다. 그러려면 자연학과 인성학(ethology) 훈련은 필수다. 붕어빵 찍어내듯 단순재생산에 급급한 대학 교육의 틀 속에서 시간에 쫓기며 쉴 틈도 없고 혼자 생각할 틈도 없이 돌이킬 수 없는 4년의 시간을 보내고 사회에 내던져지면 무경험자보다도 더 치욕적인 무비전자라는 상표를 지울 길이 없을 것이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