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幻想속에 빠져드는 개혁........ 김광웅 (2003.06.16)

정부는 개혁을 이끄는 주체세력을 만들겠다며 또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대등하면서 고른 참여를 표방하는 새 정부의 개혁이념을 역행하는 것이고, 산업화 시대에서나 타당한 리딩 섹터 전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새 행정부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처럼 개혁지상주의자가 흔히 범하는 개혁의 주체는 옳고 개혁의 객체는 그르다는 ‘공동환상의 허구’에 점차 빠져들고 있다.

역대 정부 치고 개혁 프로그램을 내 놓지 않은 정부가 없었다. 시간과 예산을 쓰고 지혜를 모았던 기존 혁신위원회들의 두꺼운 개혁 보고서는 별로 참고하지 않은 채 정부가 새로 출범하면 모두가 새로운 것인 양 개혁 아이디어를 쏟아 놓는데 대개는 이미 다 다루었던 내용들이고, 또 방식도 각 부처가 정책현안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문가에게 자문하며 자체 내에 자발적으로 과제 연구팀을 만들었기에 새롭지가 않다.

<정부엔 청와대와 감사원 밖에 남지 않는다>

이 정부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율과 분권’이라고 말하면서 청와대 중심으로 설익은 개혁안을 남발하고 있다. “각 부처에 공식·비공식 개혁 주체조직을 만들겠다” “저(대통령)와 직접 대화하거나 이메일로 하거나,.....대한민국을 개조하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기존 공무원의 계급제를 뛰어 넘겠다는 발상으로 어쩌면 현대조직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는 듯 싶다.

즉, 축구에서 포지션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이 오가는 것이 아니어서 이는 역동적인 네트워크 조직을 말하는 것으로 매우 진취적인 발상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되려면 히딩크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말처럼 선후배가 없어야 하고 성이나 직책 명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야 하고, 그래서 모든 계급이 없어지는 수평조직에서나 가능하고 또 그래야 성과가 난다. 만일 대통령이 실장, 수석, 비서관 등을 제치고 행정관이나 각 부처의 사무관을 불러 사안을 의논하며 허브 역할을 한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시간도 절약하고 정보도 왜곡되지 않아 매우 효과적인 정부운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에서는 대통령 혼자서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고 조정하는 것은 역부족이다. 계급은 분업으로서 한 곳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며 전체를 조감하고 일을 나누어 해 내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공무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감사원 감사인데, 회계감사까지는 좋으나 정책감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하루종일 정책을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평가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여기에 성과감사까지 맡겨 인사로 연결시키면 이제 정부에는 청와대와 감사원만 있게 된다.

<관료주의 축 마구 건드리면 안 돼>

21세기를 맡은 정부인데도 사회변화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없어지는 세상(패러다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 싶다. 전체와 부분,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 등을 따로 보던 물리학적 기계론의 패러다임 시대가 아니라 이들을 하나로 생각하는 일원론인 생물학적 지각론의 패러다임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고 매끈한 도로를 달리는 개혁의 주체(유럽)가 있고, 광란하고 척박한 자연에서 신음하는 객체(아프리카)가 따로 있어 그 주체가 객체를 고치려고 들면 아름다운 석양의 노을을 영영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어디에도 개혁의 논리는 있는 법, 이제 더 이상 행동대원을 앞세우듯 일방적인 개혁의 논리를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발표와 토론을 일삼아 청와대가 세미나 장소냐고 힐문하는 출입기자들의 말대로 청와대의 기능을 하루 속히 행정부로 옮겨 관료주의를 선양하도록 하는 것만이 뜻 있는 개혁을 제 궤도에 올려놓는 지름길이다. 국가를 지탱하는 세 개의 축인 민주주의, 자본주의, 관료주의 중에서 관료주의 축이라도 빨리 규정과 절차를 중시하며 중심을 잡는 것만이 복잡성의 시대(era of complexity)에서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