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세기의 흐름 제대로 알아야 지구촌 중심국가 향해 노를 저을 수 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후보 간 공방이 열기를 더해 간다. 나만 적임자라는 자기 우월적 주장들이 도를 넘는다. 개중에는 여성비하 발언도 있다. 여성 리더십으로는 안보와 국방을 비롯해 분단 문제를 풀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이 나라의 지정학적 특수 사정을 고려한 발언이겠지만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은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국방장관이 여성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오늘의 세계도, 세기의 흐름도 모르면서 한 나라를 맡겠다고 나선다.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2018년까지 5년 동안 세계의 역학관계 변화, 우리에게 줄 영향,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부터 알아야 한다. 내가 민주투사였고 내가 밑바닥부터 큰 인물이니까 적임자라는 주장과 같은 것은 자신만 알리려는 자기정당화의 발언일 뿐이다. 정당성에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있어서 내적 정당성만으로는 안 되고 남도 인정하는 외적·맥락적 정당성이 강해야 한다. 누구도 했으니 나도 된다, 누구도 나왔으니 나도 된다는 단순 발상 말고 ‘20-50국가’를 넘어 열강의 반열에 우뚝 서려면 무엇보다도 세계를 알고 내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중심지는 세기마다 변했다. 서기 1000년에는 이슬람 제국의 중심인 바그다드였다. 1300년에는 위대한 칸의 후예들이 모인 다두(Dadu)였고, 1500년에는 유럽이 바다를 제패하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1588년 영국 함대에게 크게 패하긴 했어도 1600년부터는 ‘무적함대’를 이끈 바르셀로나였다. 1700년에는 무역상들과 무역전쟁을 이끈 부르봉 왕조의 베르사유이고, 다음 1800년에는 무역의 중심이 옮겨지고 금융인들이 모이기 시작한 암스테르담이 된다. 팍스 브리태니카로 런던이,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로 뉴욕이 중심이 되기 시작한 것은 1900년과 2000년의 일이다.

다음 2100년에는 어디가 될까. 일단은 뉴델리나 상하이를 꼽는다. 그것은 20세기 중반부터 이미 환태평양 중심권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팍스 브리태니카나 팍스 아메리카나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르기도 하고 궁금한 가운데 늦어도 22세기가 되면 아시아가 중심이 될 것이고 그중에서 대국인 인도와 중국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도시는 뉴델리나 상하이만이 아니라 서울이나 부산도 중심이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한두 도시가 아니라 멀티 도시가 될 것이다.

2100년이면 먼 미래 이야기 같지만 지금부터 중심도시, 중심국가를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가 중심에 서기 어렵다. 이날을 위해 필요한 지도자, 대통령은 과연 어떤 인물이어야 할 것인가는 답이 자명하다. 말할 것도 없이 세기적·세계적 감각을 지닌 리더여야 한다. 세기적 감각이란 역사의식이 바탕이 되고 시관(時觀)이 남달라야 한다. 세계적 감각이란 다언어, 다종교, 다민족 등 다문화에 익숙해야 한다. 이승만, 윤보선, 장면, 최규하 같은 지도자들은 당시 세계적 감각을 가진 인물이었다. 불행하게도 그 후의 인물들은 집안 마당놀이에 급급했다. 언어만 해도 외국 정상들과 인사말 정도만 할 것이 아니라 토론도 하고 상황에 맞는 농담도 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외국의 훌륭한 지도자들이 어릴 적부터 부모와 떨어져 해외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지난번 칼럼에서 지적한 것도 함의가 따로 있다.

언어나 비언어 등으로 표현하는 것도 유창하고 세련되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어느 후보 가운데 장관 했던 사람을 평하는 당해 부처 공무원들의 첫 마디가 그는 콘텐츠가 없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아무리 잘났고 국민의 희망과 소원을 이룩하겠다고 자신하겠지만 내용도 철학도 감각도 없다면 세계 지도자의 반열에 서서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번 후보자들 중에는 이 대열에 설 수 있는 인물이 두세 명밖에 되지 않는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