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지향성 엘리트보다 혹독한 시련 겪은 성숙하고 믿음직한 ‘테루아 리더’ 돼야 ”

대통령쯤 되려면 성취지향성 엘리트(meritocratic elite)로는 곤란하다. 머리만 좋고 그럴싸한 정책을 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농익어 성숙한 테루아(terroir) 리더는 돼야 한다. 포도주는 포도가 어떤 토양에서 자랐느냐가 중요하다. 원래 흙이라는 뜻인 테루아는 토양만이 아니라 강수량, 태양, 바람, 경사, 관개, 배수 등 모든 환경조건을 아우른다. 토양이 80%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것조차 다른 조건 때문에 변한다. 프랑스 포도주를 기준으로 하면 지역이 해변인가 내륙인가로 나뉜다. 일교차는 해변은 섭씨 10도, 내륙은 19도, 일조량은 해변은 8시간, 내륙은 12시간, 강우는 해변이 8일, 내륙이 17일, 그리고 습도는 해변이 58%, 내륙이 71% 등이다. 같은 품종이라도 테루아가 다르면 맛이 다르게 마련이다.

포도 재배는 황태나 과메기를 숙성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황태는 명태를 일교차가 큰 덕장에 걸어 차가운 바람을 맞히며 얼고 녹기를 반복해 말린 북어다. 과메기는 겨울철 청어나 꽁치를 막대기에 꿰어 바닷바람에 같은 방식으로 얼고 녹기를 반복해 건조시킨 것이다. 흙의 조건은 가리지 않더라도 햇볕, 바람 같은 지리적·기후적 환경을 흠뻑 담아 성숙해지는 것으로 포도주나 황태나 과메기는 시련을 포함해 여러 조건이 용해된 산품이다.

리더의 성숙 과정 역시 다르지 않다. 바람(그것도 모질면 더 좋다)과 강한 햇빛을 맞아 자라는 것이 온실에서 자라는 것보다 좋다. 비도 눈도 맞고 얼었다 녹았다 하면 육질이 더 굳어지고 맛도 더한다. 포도가 척박한 사질 땅에서 까다로운 조건 따라 자라긴 해도 기온, 습도, 바람, 햇볕 등 안온한 조건이 필수라면 황태와 과메기는 겨울철 매서운 훈련을 받고 자라는 것이 다르다. 남자로 치면 군대 가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과 같다.

인물은 보통 점수, 노력, 성과 같은 요소로 가리고 이런 등급이 높으면 우수한 성취지향성 엘리트라고 해서 제도의 운영을 맡긴다. 이들은 정책을 펴고 문제를 해결한다고 큰소리친다. 누굴 위해 하느냐고 물으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대중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말일 뿐 오로지 자신들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 한다. 보통 사람들은 오를 수 없는 사다리를 만들어 놓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없이 오르고 또 오른다.

이런 제도나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신만을 돌본 이들이 이르는 곳은 비효율과 불평등뿐이다. 이들이야 말로 배척당한 왕따 인생(ostracized life) 그 이상이 아니다. 손학규 예비 후보가 경쟁 대신 우정이라고 말하는 함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지배의 리비도의 화신인 이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착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성공에만 골몰하는 이들 메리토크라시의 언어가 어떻게든 공덕을 선양할 수 있는 도덕성 언어로 바뀌어야 하기에 에토스(ethos)부터 다른 인물이 등장해야 나라가 고루 펼쳐진다. 앞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불평등하기 짝이 없는 인간사회의 높낮이 배열부터 달리 보면서 무엇이 성공이고 실패인지를 새롭게 가리도록 자신의 자의식(self-consciousness)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세상은 전문성 그득한 이들 메리토크라시 엘리트들이 고치기엔 너무 복잡하고 얽히고설켜 있다. 문제가 복잡하고 크면 세 가지 입자 간의 관계를 푸는 방정식이 없다는 것을 이들은 알아야 한다. 전문성이 일견 필수이긴 하지만 전문성은 소통을 보장하지 못한다. 내 지식과 논리를 앞세우기 때문에 상대방을 이해하기 어렵고 또 양보도 하지 않아 극으로만 치닫는다.

지난 주 남프랑스, 코트 다 쥐르(cote d’ajur)를 여행하며 포도가 재배되는 척박한 환경을 목도하고 새삼 인물의 등장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려보게 되었다. 앞으로 나라가 더 어려워질 텐데 과연 어떤 믿음직한 ‘테루아 리더’가 민주화합의 칸타타를 연주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이번 후보군 중에는 두 사람이 될까 말까 하니 걱정이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