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는 여성적 가치 존중 받는 시대… 공감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승부해야”

‘아웅산 수치의 나라’ 미얀마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50년간 정체된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덧칠을 했지만 사회주의체제 아래 낙후된 흔적은 지울 길 없는 듯 보였다. 옛 수도 양곤에서 4시간여 달려 당도한 신수도 네피도는 왕복 18차로 도로에서 군국주의 냄새를 물씬 풍겼다. 이상하리만치 교교한 느낌의 수도는 한적한 휴양지 같았고 정부청사는 드문드문 숲 속에 숨어 있어 정부가 은둔하며 국민과의 대화를 스스로 차단하려 하는 것인지 의문이 날 정도로 이방인의 눈을 낯설게 했다.

1988년 8월 8일 학생을 중심으로 민주항쟁이 하늘을 찌르듯 하던 그때 그 광장은 일본 승용차와 한국 가전제품 광고로 메워져 있다. 마침 미얀마 민주투쟁의 상징 아웅산 수치는 미국 최고의 의회금메달을 받기 위해 방미 중이었다.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2세로 인도 일본 영국에서 공부하고 해외에서 지내다가 인도 대사를 지낸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귀국한 후 4반세기 군부의 탄압 속에 14년간 가택연금까지 당하며 모진 고생을 했다.

이제 겨우 최대 야당 민족민주동맹(NLD)을 이끌고 지난번 국회의원이 됐다. 수치가 받은 노벨 평화상이 아직은 미얀마의 민주와 인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지만 세계적 인물로 각광받는 수치는 분명 50년간 찌든 군부독재의 때를 벗기고 미얀마의 민주 여명을 밝힐 것이다.

여성이 정치의 주역인 때는 고대에도 많았고 현대 서양에는 심심치 않다. 대표적 인물이 정치 일선에 있지는 않지만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다. 한참 거슬러 엘리자베스 1세는 16세기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를 정도로 위용을 떨쳤고 19세기 팍스 브리태니카의 기초를 닦았다. 현재 유럽연합(EU)을 주름잡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여성이다. 중남미에는 현재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코스타리카의 라우라 친치야 등 3명의 여성 대통령이 있다. 언젠가 이코노미스트지가 정리한 여성 지도자에는 인도의 소니아 간디, 방글라데시의 세이크 하시나, 태국의 잉락 등 세계 여성 정치지도자 23명의 면면이 돋보인다. 여기 박근혜도 이름을 올렸다.

신의 옷자락에 묻은 권력은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느냐에 따라 권력자가 되거나 희생양이 되게 한다. 수치처럼 박근혜도 군인의 딸로, 대통령의 딸로 훈풍을 맞은 적이 있지만 현재 정치권력에 대한 도전의 벽을 실감하고 있다. 과거 역사의 사슬에 묶인 채 시대에 희생된 슬픈 영혼들을 달래고 원혼을 푸는 것이 박근혜가 풀어야 할 최대 난제인 것은 맞다.

가족과 시대의 멍에에 찌든다해도 시대상황의 논리가 같을 수 없고 더욱이 국민대통합을 표방하며 정직하고 진실하게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갈 것이 분명하기에 역사의 심판에 희생되지는 않을 것이다. 동서고금의 위대한 정치지도자들의 공과는 길이길이 남아 역사의 교훈으로, 내일의 귀감으로 살아있게 마련이다. 이런 역사를 응징하기보다 용서하는 것이 더 큰 용기와 지혜와 관용이 되어 내일을 밝히는 힘이 되고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김대중이 박정희에게 한 것처럼 더 큰 인물이 된다.

‘미래의 충격’을 발표한 지 40주년을 기념하여, 또 오는 40년을 예견한 피터 드러커는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라고 말한다. 여성에게는 남성이 갖추지 못한 정직, 이해, 공감, 여유, 용서, 포용의 DNA가 있고 세상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이 있다. 여성에게도 남과 다름(otherness)에 대한 편견과 집착이 없지 않지만 이분법을 넘어 하나 되는 길을 찾는다면 정치개혁의 길은 열린다.

그러나 정치도 뭐도 다 한방으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어서 메시아가 온다 한들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여성성이라는 시대적 가치는 여성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다. 다른 후보들도 이런 시대적 가치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내놓아야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는 변화의 리더십이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