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 극복해 바른 정부 세우고 여유 있고 반듯한 ‘小康국가’로 국격 높였으면”

새 정부 출범이 두 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궁금증에 걱정이 겹친다. 국민은 얼마나 행복해지고, 격조 있는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 새 대통령은 성공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까. 정부 출범 때마다 희망찬 내일을 기약하지만 5년이 지나도 나라의 문제는 그대로 쌓인 채 오욕투성이 상처를 남긴다. 새 정부도 그러라고 유권자가 대통령을 뽑은 것은 아니다.

기대는 배반당하기 마련이지만 출범 전부터 새 정부는 기대에 어긋났다. 정부조직 개편이 그 한 예다. 시장을 견제하고 공무원 수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미루어 새 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하는 듯하다. 정부는 선거 때 한 공약을 이행해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야겠지만 이를 수행하는 정부조직에 대한 손질은 납득하기 어렵다. 부처 하나 바꾸면 엠블럼 새로 만드는 데 5000만원 이상이 든다. 낭비를 줄여 국민복지에 써야 할 정부의 시작이 미덥지 않은 이유다. 안전행정부보다 교통, 재난, 경찰 등을 관장하는 국토안전부가 답이다. 책임총리제를 구현하려면 전 부처를 통할하기 위해 조직과 인사를 맡는 총무처를 총리 직속 기구로 둬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도 걱정거리다.

박근혜 정부의 미래는 바로 이 부처가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새 정부가 미래와 과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다. 장밋빛 미래를 점치고 있는 연구서들도 많지만 최근 출간된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생각연구소)는 화석연료 등 자원고갈, 식량소비 증가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 인구감소에 따른 소비감소, 성장정체 등 어두운 미래를 예측한다. 이를 과학의 힘으로 극복하겠다지만 정부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사람들더러 쓰레기 처리 시설과 인터넷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전자를 택하는 것이 상식이다. 실재가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며 철학자와 물리학자들은 따지지만 우리는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이 최근 특집으로 싣고 있다.

과학이 DNA가 아닌 XNA(합성 생물학에서 말하는 DNA에 의존하지 않는 새 생명 형태)를 밝혀내기도 하지만 과학은 실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동굴 속을 헤매고 있는 때가 흔하다. 같은 잡지에서 50년, 100년, 150년 후의 과학의 미래를 점치고 있다. 집 앞에 주차한 나는 차 드론(Drone), 태양 엔지니어링, 인간이라는 종의 미래와 우주 등에 관해 예측들을 하지만 과학도들의 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학으로 인해 희망과 절망이 교차해 정부가 엄청난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닌데, 새 정부는 이를 어떻게 막을까.

미래와 과학의 효능에 대한 궁금증만큼 이를 담당할 정부 기구와 운영에 관한 것 또한 논쟁거리가 아닐 수 없다. 공룡조직인 미래창조과학부가 어떻게 운신해 정부가 생각하는 미래를 과학의 힘으로 열 수 있을까. 조직에는 유감스럽게도 관료주의나 부처주의 같은 복제자나 정신 바이러스 같은 것이 있어서 시스템이 움직이는데, 이때 수혜자는 따로 있게 마련이다.

남유럽의 재정 위기는 복지를 외치다 공직자가 부패의 골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스 공무원은 취업자의 40%를 자지할 정도이고 투 잡 이상의 삶을 산다. 선진국들이 후진국에 부어 넣은 돈이 50년간 4000조원인데 아직도 29억명의 인구가 2달러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수혜자가 누구일까는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밈(meme) 이론을 들추지 않아도 안다. 5년 내내 정책을 따지며 성과를 체크해야겠지만 거대 정부조직일수록 포획자가 될 가능성이 높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권력인데, 그 권력에 기생하는 창형흡충 같은 존재가 문제다.

대통령이 관료주의를 극복해 바른 정부를 세우고 여유 있고 반듯한 소강(小康)국가가 되어 국격을 한 단계 높였으면 좋겠다. 5년 후 박근혜 정부가 역대 정부와 다른 인식과 패러다임으로 새 희망의 역사를 썼다고 평가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