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공천심사는 정직하고 당당한 공인으로서의 그릇을 가려내야 하거늘…”

공천의 장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기준이 무엇이냐느니, 불복하겠다느니, 새 얼굴이 없다느니 난리를 피운다. 경쟁에서 탈락하면 정치생명이 잠시 숨을 거두어야 하니까 이전투구가 이만저만 아니다. 평행우주에 있는 도플갱어(doppelganger, 나와 동일한 현상을 보고 있는 다른 생명체)가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공천경쟁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선거란 엘리트들 순서 매기는 행위이고 공천과정 역시 예외가 아닌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엘리트란 사람들이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심사과정에 불복하고, 내편 네편 가르며 질서를 어지럽히니 지구상 한국이란 나라엔 언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거며, 서로 믿는 공정한 사회가 언제 될 것인지 궁금해한다.

이번 공천과정은 지극히 기계적이고 관리적이다. 한정된 시간에 결코 완벽할 수 없는 기준에 따라 사람을 고르는 관리행위 이상이 아니다. 가감산의 기준을 정해 더하고 빼고 하는데 범법 등이야 철저히 가려내야 하겠지만 기준 중에 언론기고, TV토론, 당원 연수강의 같은 가산점은 의정활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체성 같이 도저히 수치화할 수 없는 것도 점수로 환산한다.

관심은 오로지 당선뿐이고 그러기 위해 이 과정만 통과하면 된다. 당 대표를 한 사람이 다른 경쟁자들과 나란히 앉아 면접시험을 치르는 광경은 볼썽사납다. 권위란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의 공천은 당선 후 의정단상에서의 역할과 상관관계가 낮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미지수로 남긴 채 대학이나 직장에서 면접시험 치르듯 사람을 내친다. 기준은 아무리 만들어도 완벽할 수 없고 진수를 놓치기 십상이다. 날로 복잡해지는 국정을 감당할 인물을 이렇게 하면 뽑을 수 있을까? 일정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더 큰 인물은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해서 국회에 간 사람들이 국민의 기대 저버리기를 밥 먹듯 한다. 최근의 예만 보더라도 32억원짜리 국회의석을 하나 더 늘렸고, 결국 약사법을 개정하지 않아 슈퍼마켓 약 판매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범법행위 말고도 이번 18대 국회에서 변호사를 겸직하며 수임한 건수가 100건이 넘는 의원이 있을 정도로 도덕성과 거리가 멀다. 행정부 견제한답시고 국민 세금만 거덜 낸다.

18대 국회에서 현재까지 접수된 의원발의와 정부제출 법안은 모두 1만3840건이고 처리된 안은 7207건, 계류 중인 안이 6633건이다. 부결, 폐기, 철회를 빼고 가결된 것만 2245건이니까 16%선에 불과하다. 정당학회는 18대 국회를 평가하면서 키 워드를 ‘갈등과 파국’이라고 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어렵사리 낙타 바늘 같은 공천 심사과정을 거쳐 당선된 인물들이 한 일이 이렇다. 그때도 참신하다고 뽑아 보냈지만 하루아침에 동색이 되어 내 몫 챙기기에 급급하고 자기네 지역구 예산을 따기 위해 ‘투표거래(vote trading)’를 서슴지 않았다.

옷이나 구두야 치수 따라 내게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그러나 인재의 선택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무엇보다도 인물됨을 보아야 한다. 됨이란 공인으로 격을 갖추었느냐를 말한다. 나보다 너를, 너보다 우리를, 그래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할 재목을 본다. 여기에 정직함과 정당함이 배어 있어야 한다. 누가 뭐래도 흔들림 없이 당당해야 한다. 얼마나 넓은 안목과 긴 시관(時觀)을 가졌는가도 중요하다. 넓은 안목을 가지려면 융합의 시각에 익숙해야 한다. 긴 시관은 과거와 미래를 아우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이념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늘 의심하는 가운데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인물이면 여러 스펙에 따라 매긴 점수는 무시해도 좋다.

칼 세이건이 말한 대로 하나의 파리한 파란 점에 불과한 지구(a pale blue dot)에서 뭐 그리 대단하다고 목숨을 걸고 유권자를 배반하며 불명예들을 자초하고 있는지 도플갱어에게 부끄러울 뿐이다. 이제 고개를 들어 광활한 우주를 보라. 정치인 내 존재가 얼마나 초라한가를.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