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너무 좋아 좀 베꼈습니다."

교수와 장관까지 지낸 인사가 내 글을 베낀 적이 있기에 학회에서 다그쳤더니 넉살 좋게 한 반응이다. 대학에 연구를 의뢰한 구청장은 용역보고서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둔갑한다. 용역을 수행한 교수가 각료 후보까지 되었다 낙마한 사례를 우리는 기억한다.

한 숨 돌린 것 같다가도 표절시비는 끊이지 않고 고개를 든다. 사회지도층의 '앎과 잘남'에다 신분과시욕 때문이다. 지도층 인사들이 학문이 뭔지 모르고 그저 타이틀만 좇으며 죄의식 없이 짝퉁 상품 만들어 내는 상인을 닮아간다.

이런 나라를 문명국이라 할 수 있을까? 논문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강의 잘하는 교수도 논문은 수준 미달일 때가 있다.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설명하기를 인식론의 어느 입장 따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논문을 쓴다 해도 정상과학normal science을 하는 커뮤니티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최근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청장, 스타 강사, 연예인들의 표절시비가 이는 것을 보면서 뭔가 타이틀이 있어야 행세를 하는 나라. 관직 아니면 박사 등 뭔가 명함에 써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이 이 나라의 자화상이다. 문명이란 깨우치고 밝음을 지향하는 것인데, 지식사회부터 깨우치기는커녕 어둠을 지향하고 있다.

앎이란 자신만의 인식 경계에 스스로를 묶는 짓이다. 그러니 좀 안다고 으스대면 바보 되기 십상이다.

문명은 깨우치는 것

지식인 중에는 이사야 벌린이 말하듯 거대담론을 추구하는 고슴도치형이 있고, 호기심 가득 차고 다양한 주제에 관심 갖는 여우형도 있다. 어떤 형태이든 앎이 힘인 것은 맞지만 신분과 계급이 될 수는 없는데 우린 너무 집착해 일을 저지른다.

문명이란 원래 서양에서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학문을 수학, 물리, 화학, 생물 등 기능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는 데서 비롯됐다. 지금의 사회과학은 대부분 윤리학에 속했다.

서양의 지식이란 자연법칙을 익히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런 지식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강변하며 동일화시키려고 애쓴다. 실재가 뭔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허상을 근거로 주장을 펴는 지식인이 허다한 나라가 문명국 행세를 한다.

연구는 칼 포퍼의 주장대로 입증verification만 아니라 반증 falsification이 되어도 연구는 연구다. 그런데 입증에 급급해 자료를 조작하는 연구가 수 없이 많다.

노벨상도 세월이 흐르면 의학생리학 분야가 특히 그러한데 거짓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생긴다. 실험으로 가설만 입증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기반도 부실하고 세상의 섭리를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철학도 과학사도 하지 않으면서 연구를 하는 미시세계에 갇혀 있어서다.

논리도 하이데거나 A. 애벗이나 최종덕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이분법으로 내 것만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문은 순수와 응용, 예체능 등 분야 따라 기초가 모두 다른데 학위 타이틀만 강요하는 대학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지식에는 칸트가 분류한 대로 현상적 지식phenomenal knowledge과 본체적 지식numeral knowledge이 있다. 영적 세계를 알 수 없어 우리는 기껏해야 현상적 지식을 쫓을 뿐이다. 인식론 중에서도 경험주의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손지식과 리듬으로 충분하다

지식 중에는 학교에서 배우는 종합지가 있고,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이 가능한 '손지식'이 있다. 아프리카 부시맨 같은 야생의 사고를 일컫는다.

굳이 학문을 하고 학위를 취득하고 싶으면 분석과 종합의 세계, 창조의 세계, 그리고 실천의 세계를 섭렵해야 지식이 내 몸에 배고 남이 존중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가 있다. 이들 세 세계 가운데에서 겹치는 합집합의 영역에 있는 리듬rhythm 말이다. 리듬 없이 또는 리듬이 뭔지 모르고 이들 세 세계를 아무리 섭렵해보았자 지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리듬의 화신인 연예인들이 학위 없이 손지식만으로도 지도층의 중심에 있기에 충분한데 도덕의 문턱이 낮은 대학에서 학위를 따내야 하니 문명국이 멀어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