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와 민주당 대표 선출을 보면서 묻게 된다. 민주정치가 과연 정답이 있어 이를 맞추면 모든 게 잘 되고 문명국인가. 민주정치의 꽃이 선거인 건 맞고, 선거를 통해 엘리트 순서를 매김 질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며 결과가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왜냐하면 안철수 의원이 이 나라 정치를 새 판으로 갈고, 김한길 대표가 정체성조차 의심받는 민주당을 살린다는 것이 가능할 까. 만일 아니라면, 민주정치란 사람 뽑기 따로 하고, 개혁은 어쩌다 되는 것이라고 치부하면 될 까. 그래도 문명국은 독재하는 나라와 달리 대중의 의사를 대변할 선거 제도가 있고, 중지를 모아 정부를 운영해 국민을 편하게 만들도록 하는 기제가 있는 나라다.

그러나 경쟁의 과정에서 의견이 엇갈려 갈등을 빚고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이 나라의 사회갈등지수가 OECD 국가 중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4번째라는 사실만 봐도 사회 분위기가 얼마나 황폐한 가를 어림할 수 있다. S. 핑커의 말대로 폭력충동과 평화충동이 부딪히는데 정부역할이 무관하지 않다면 정부도 앞장서 평온을 찾도록 노력해야 문명국의 입지를 굳힐 수 있다.

민주주의는 원래 수 많은 삶의 표현이라 살기가 편한 체제는 아니다. 순탄하게 굴러간다 해도 민주정치는 사회 갈등을 떠안아야 하고, 순탄치 못하다면 정부의 권력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느 방안 채택해도 문제 해결 안돼

그래도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창의성을 존중한다. 창의성을 유지하려니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를 막으려는 세력 또한 만만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편가르기, 뒤봐주기, 이기주의, 냉소주의, 무관심 등의 꼬임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R. 오스본의 말이다. 이를 이끄는 집단 또한 사익에 몰두해 공익을 뒷전에 두니 더 문제다.

민주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문제는 무엇이 정답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데 있다. 만일 앞서 말한 당선자들 말고 다른 사람이 뽑혔을 때 더 나은 민주정치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 나라 의회정치를, 이 나라 정당정치를 누가 어떻게 바꾸고 향상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은 정치인이면 누구나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민주정치의 다양성으로 활력이 넘쳐 보이지만 동시에 합일이 어려워 뭉치기 어려운 것이 한계가 아닐 수 없다.

어느 방안을 채택하더라도 문제는 항상 내재한 채 풀리지 않는다. 왜 그런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들이 세상의 이치를 직시할 줄 몰라서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 - 이를테면 학교폭력 문제가 CCTV 몇 개 더 놓아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 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한은이 금리를 내린다고 경기가 반짝 반등할지 몰라도 경기는 또 곤두박질 한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겉치레 처방전만 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자체에 있고 이를 제어하거나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그 자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도를 고치기만 하면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는 데 인식의 한계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J. L. 보르헤스는 인간들은 무력해 우주 혹은 현실의 질서를 지배하는 법칙을 감지할 수 없어 자신이 정리한 법칙에 따라 '현실'을 고안해 냈다고 말한다. 스티븐 호킹이 말하는 '모델 의존적 실재'라는 말과 같다.

권력 줄이는 데 생각 초점 모아야

다시 말하면, 우리는 실재보다는 허상을 보고 문제에 접근하며 허상조차 만지지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하면서 실재가 어떻다느니 하며 강론을 편다. 우주의 섭리도 잘 모르면서, 법과 제도만 잘 만들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부터 고쳐야 한다는 말이다.

민주주의 특히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정되고 강력한 정치사상인 것은 맞지만 어느새 부자들의 리그가 되고 '거대한 거인'이 되었으니 문명국이 되려면 모든 것이 권력화가 되어가는 세상에서 허상을 벗고 권력을 줄이는데 생각의 초점을 모아야 한다.

그러면서 국민을 편하게 하려면 정치나 정부가 국민을 간섭하지 않는 것이 첫째이고, 한 두 잣대로 국민을 재는 일이 없어지는 것이 둘째이고, 정치인 자신부터 실재와 거리가 먼 현실의 나 ego를 버리고 초월적 나 self를 찾는 것이 셋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