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2년 06월호 633호 (p124~133)

권불 5년 시대, 새로운 지도자의 자세

스마트 파워, 나력裸力, 잔향殘香 갖춘 ‘아름다운 리더’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 명지전문대 총장 kwkim@snu.ac.kr

우리나라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온갖 결정이 그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는지는 국민적인 관심사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서울대 공공리더십센터 상임고문 등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가 ‘대통령의 리더십’을 조명하는 연재를 시작한다.
첫 회에서는 리더들이 서로 경쟁해 쟁취하는 권력의 본질과 생리를 분석하고, 권력은 어떻게 얻고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편집자 주>

나라 안팎에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안에서는 최근 총선을 끝낸 각 정당이 대표 선출을 놓고 파벌 간 힘겨루기를 한다. 야합도 하고 단합도 한다. 밖에서는 가까운 중국에서 10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앞두고 상하이방, 태자방, 공청단 간에 자리다툼을 벌인다. 올 한 해 세계에서 대선을 치르는 나라는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 22개국에 달한다. 우리도 대선을 일곱 달 남겨두고 있다.

권력은 크건 작건 경쟁해 얻는 쟁취의 대상이다. 인간의 심성에서 권력욕이라는 DNA를 없애지 않는 한 그렇다. 헤겔은 권력을 소화작용에 비유하며 생명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부터 작동한다고 했다. 그에게 권력이란 타자를 점차적으로 생명체 자신과 동일화하는 소화작용과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타자를 자기 자신에게 환원시키는 것,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소유욕은 생명의 가장 기본요소인지 모른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축구 경기장을 방문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왼쪽).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만델라는 ‘나력’과 ‘잔향’으로 퇴임 후에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도자다. >


1993년, 민주자유당이 대선에서 승리해 김영삼 대통령이 집권하던 해, 필자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이었다.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의원 연수회에 초대받았다. 그 자리에서 “선거 순기(循期)로 치면 2012년이 돼야 총선과 대선을 같은 해에 치르게 되니, 의원 임기를 약간 늘리든 아니면 대통령의 임기를 조금 줄이든 해서 한 해 같은 날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를 함께 치르자”고 제안했다. 이를 언론이 대서특필한 기억이 난다. 이 연설에는 선거로 국력을 낭비하는 일을 막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임기(권한)를 양보할 리 없는 정치인들이라 세월은 그냥 흘렀다. 그리고 올해,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치러지게 됐다.

다행히 그 후의 선거에서는 국력이 예전처럼 크게 낭비되지 않았다. △정당 후원회 금지 △법인과 단체의 정치후원금 기탁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오세훈 법’이 만들어졌고, 필자가 2005년 국회정치개혁협의회 의장을 하면서 선거법을 더 엄격히 해 ‘돈 선거’를 막도록 애쓴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니까 근 20년 전 걱정했던 ‘선거 손실’의 규모는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어서, 선거로 인한 국력의 낭비는 민주 학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면 예전처럼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음성화된 ‘돈 선거’를 아예 막을 길은 없고, 새로 동원되는 SNS의 탈법도 막을 방법이 없다. 권력 쟁취 과정의 기생충 같은 부정과 탈법이 정당한 권력까지 망치고 있다.

공평한 저울

먼저 권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권력은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힘이며 자기가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특정한 자원의 보유를 바탕으로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능력이 곧 권력이다.

한자의 뜻을 풀이하는 것도 이 단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권력(權力)의 권(權)은 저울이라는 뜻으로, 물건을 저울에 달듯 모든 일에 공평한 태도를 유지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력(力)은 힘을 의미하는데, 이는 끝이 세 갈래로 된 농기구 ‘가래’를 형상화한 글자다. 두 한자의 뜻을 합하면 권력이란 ‘모든 일에 공평한 태도를 유지하는 힘’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력은 권력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뜻처럼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를 위한 힘’만을 추구한다.

<평생 서민과 더불어 검소하게 살았던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왼쪽). 2006년 독재체제가 공고했던 시절의 무아마르 카다피. 그의 실권과 피살은 권력 무상을 보여준다. >


여기서 “권력은 누굴 위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리더는 누구를 위해 권력을 행사하는가? 이 질문에 ‘나 자신을 위해서’라고 자신 있게 말할 리더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을 잘 만드는 셰프나 포도주 농장 주인이 고객을 위한 ‘자비심’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자애심’으로 열심히 일한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교만한 인간은 일시 스쳐가는 권력을 손에 쥐면 / 유리알처럼 부서지기 십상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 성난 원숭이처럼 하늘 앞에 별별 농간을 다 부려 천사를 울리곤 합니다”라는 말도 상기해볼 수 있다. 이는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내각에서 법무장관과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판사를 지낸 프랜시스 비들의 회고록 ‘스쳐가는 권력’(1962)에 나오는 표현이다. 자신을 위한 권력을 날카롭게 묘사한 것이다.

‘나를 위한 권력’의 비유는 문학 작품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 등장한다. 라인 강 바닥에 있는 황금 반지를 끼면 권력을 얻는다고 하자 모두 그것을 원한다. 그러나 얻음이 있으면 반드시 잃음이 있는 법, 권력은 얻지만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모두 이를 꺼리게 된다. 그때 알베리히라는 난쟁이가 나타나 “어차피 내 외모로는 사랑을 얻을 수 없으니 권력이라도 가져야겠다”며 반지를 취한다. 그 후 반지의 주인이 여럿 바뀌는데 이들은 예외 없이 파국을 맞는다. 여기에는 권력을 탐하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셰익스피어 희곡 ‘맥베스’에도 남편을 권력자로 만들기 위해 평생 노력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아내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베르디의 ‘포스카리가(家)의 두 사람’은 총독이 권력을 추구하다 세 아들을 잃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이 작품들은 모두 권력을 잘못 이해하고 그릇되게 행사한 대가를 보여준다.

당신만의 천국

이러한 예를 한국문학에서 찾는다면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적합할 것이다. 이 작품은 권력을 주제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를 그린 알레고리 소설이다. 나병 환자들이 사는 소록도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천국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주정수 원장’은 권력자다. 그는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소록도 사람들을 착취하면서 효율성을 추구하고, 자신의 동상을 세운다. 이런 행동은 결국 그가 말하는 천국이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오로지 ‘당신들’만의 천국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문학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인간 사회의 비극이다. 현실적인 예는 얼마든지 있다. 현 정권에서 드러나고 있는 대통령 1급 실세들의 총체적 부정과 비리의 내막은 역대 대통령 2인자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권력을 이익 추구의 기회로 삼는 관례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권좌에 앉았다 줄줄이 감옥으로 가는 어리석은 권력자도 많다. 전두환, 노태우 등이 그랬다. 이렇게 ‘나를 위한 권력’은 권력 무상으로 이어진다. 리비아의 카다피 역시 그렇다. 카다피는 42년 동안 집권하면서 현존하는 세계 집권자 중 가장 오랫동안 철권통치를 이어갔고,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중동의 미친 개’라는 심한 비난까지 들었다. 그러던 그도 결국 중동에 인 ‘아랍의 봄’ 기운에 밀려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지 8개월 만에 처단됐다. 물론 권력의 붕괴는 카다피가 처단되기 전부터 진행됐다. 카다피는 트리폴리의 요새를 떠난 뒤 2개월 동안 물과 전기도 없는 곳에 숨어 지내야 했고, 남은 쌀과 파스타 등으로 연명했다. 포탄이 거처에 떨어져 경호원과 요리사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요리도 직접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은신처가 발각돼 죽기 직전까지 금과 현금을 주겠다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비굴함을 보였다. 이것만으로도 그가 쥐고 있던 권력이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보여주기에 적당해보인다. 그러나 이를 더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카다피 사후에 벌어졌다. 사망 하루 만에 그의 시신이 대중에게 전시된 일이다. 죽은 카다피는 미스라타의 오래된 정육점 냉동고에서 콘크리트 바닥 위, 싸구려 매트리스에 놓였고, 구경꾼들은 그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세상 모든 권력은 잘못 사용할 경우 이처럼 무상하다. 하지만 나라에 따라 권력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다르다. 권력자와 피권력자 사이의 간격을 뜻하는 권력간격지수(PDI·Political Distance Index)도 서로 다르다. 말콤 그래드웰의 저서 ‘아웃 라이어’에 따르면 괌에서 추락한 대한항공기의 경우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 존재하는 매우 큰 권력간격 때문에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부기장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완곡어법을 쓰는 등 기장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이 때문에 직설적으로 위험을 알리지 못한다. 사우디아라비아도 권력간격지수가 높은 나라에 속한다. 반면 미국은 낮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맥나라마 국방장관이 워싱턴 DC 지하철에서 우산을 들고 출근하는 장면이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다. 장관들이 넥타이를 매지 않고 걸어서 백악관에 업무 보고를 하러 가기도 한다. 스웨덴 총리도 길거리 쇼핑을 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총리는 한 번 움직일 때마다 20명에 달하는 경호원과 기사들의 수행을 받으며 점심 값을 축내고 있다.

지난 4월 총선 직후 열린 통합진보당의 당선자 상견례 모습. 그러나 심상정, 이정희, 유시민(앞줄 왼쪽부터) 등 통합진보당 대표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치열한 당내 권력 다툼을 시작했다.


우리 모두를 위해

‘나 아닌 남, 남보다 우리 모두를 위해(non mihi non tibi sed nobis)’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칭기즈 칸은 권력의 한계를 알고 위임의 묘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대제국을 홀로 통치하려 하지 않았다. 공을 세운 부하에게 칸의 이름으로 전권을 위임한 뒤 다시 몽골의 초원으로 돌아가곤 했다. 중국 덩샤오핑은 생전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마오쩌둥을 보고 절대적인 권력 독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는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후계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문제라고 판단하고, 지도자를 육성하는 공식적인 절차를 만드는 등 권력을 분산하는 정책을 펼쳤다.

문제는 대개의 경우 권력을 쥔 당사자가 스스로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모두 잘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 체코의 하벨 대통령처럼 자신이 잘못했다고 후회하고 용서를 빈 사람은 아직 없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낼 때 ‘백성이 원한다면 당연하다’는 말을 남겼을 뿐이다.

권력을 욕먹지 않고 제대로 행사하려면 권한의 80%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100%를 행사하면 오만해보이고 120%를 행사하면 남용이 된다. 80% 이하로 써야 겸손해보이고 효과도 높다.

리더십의 본질은 봉사이기에 리더가 행사하는 권력은 나나 내 식솔이 아닌 남을 위한 것이다. 리더는 자신을 위한 이익 위주의 사고를 하기보다는 조직이 직면한 문제에서 해법을 찾고 희망을 이끌어내고 때로는 권력마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모름지기 깊게 사고하고 실패에 대한 내성을 강화하고 미래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야지,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특히 권력이 봉사가 되려면 리더가 현명해야 한다. 마음의 바탕에 곱고 어진 결이 있어야 한다. 현자(賢者)의 리더십이다. 현자의 리더십은 ‘감성의 리비도’로 공존하려는 것이다. 나만 살겠다는 리더십은 곤란하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스스로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가리면서 현명해져야 하는 것이다. 또 모든 것을 다 갖지 말고 나눠 가져야 한다. 내 생각만 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서 남이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헤아려야 한다. 전체를 보면서 리듬과 흐름을 읽을 줄도 알아야 한다.

스마트 리더십

총체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현자로서의 리더는 아름다워야 한다. 더불어 지족(知足·스스로 만족하기), 지분(知分·분수를 알기), 지지(知止·그칠 줄 알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과전문의 이나미 씨는 타계한 김수환 추기경이 지혜와 사랑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는 ‘노현자원형(老賢者原型)’의 리더였다고 평가했다. 이는 칼과 창으로 집단을 이끄는 권위적이고 전투적인 ‘전사원형(戰士原型)’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김 추기경은 주교가 된 지 2년 만에 서울대교구장을 맡는 등 젊은 나이에 높은 위치에 올랐다. 하지만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서서 권력과 맞섰다. 관용과 화해의 리더십의 본보기다. 그는 1970년대 민주화 항쟁에 참여했는데, 당시 김 추기경이 있던 명동성당은 ‘종교가 왜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의 중심이 됐다. 정부까지 나서서 천주교를 탄압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내 생각을 지배하는 큰 주제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사사로운 다툼에 집착하지 않고 인간이라는 큰 범주에서 모두를 끌어안으려는 현자의 태도를 보였다. 또 그는 “참 평화는 모든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리고 육체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인간답게 숨 쉬고 살 수 있을 때 실현되는 것”이라는 말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을 위해 지혜를 발휘했다. 이러한 리더가 많아질 때 ‘뷰토피아(beautopia)’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권력은 봉사(Ab Officio, Ad Honestatem)일 뿐 아니라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다.

리더십에는 권력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니 모든 지도자는 실제적 또는 잠재적으로 권력의 보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권력 보유자가 다 지도자는 아니다. 운동선수라고 해서 누구나 멋진 스포츠맨십을 갖고 있는 건 아니듯, 지도자라고 해서 누구나 훌륭한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리더가 권력을 성공적으로 행사하려면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의 권력자원이 배합된 ‘스마트 파워’가 필요하다. 하드 파워는 군사력과 경제력에 주로 의지하는 능력으로 강제와 보상을 권력자원으로 이용한다. 반면 소프트 파워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능력으로 한 나라의 문화나 민주주의·인권·개인적 기회의 보장 등과 같이 그 나라가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와 제반 정책 등에서 우러나오는 매력과 관련된다. 또한 하드 파워는 분석적인 지성을 의미하는 인지지성(cognizant intelligence) 또는 IQ와 관련이 있고, 소프트 파워는 자기극복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및 공감적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을 의미하는 감성지성(emotional intelligence) 또는 EQ와 관련을 맺는다. 이 둘을 배합한 스마트 파워는 ‘권력에 대한 권력(power about power)’, 즉 ‘메타권력(meta-power)’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 지나간다”

스마트 파워를 적절히 활용한 인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루스벨트는 파나마 운하 건설을 자신의 가장 뛰어난 업적으로 생각했다. 자서전을 통해 “나는 내각과 상의하지 않고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다”고 자랑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당시 의회에서 인준한 ‘스푸너 법(Spooner Act)’은 정부로 하여금 파나마 운하 건설을 콜롬비아와 협상해 처리하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콜롬비아가 파나마 지역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며 루스벨트가 제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하자, 그는 파나마 주민들을 고무시켜 콜롬비아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다. 그리고 곧 파나마를 ‘새로운 국가’로 인정하는 한편 미국의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미 전투함을 파견했다. 파나마 정부는 즉각 미국과의 협상에 조인했고, 운하 건설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루스벨트가 파나마 운하를 건설할 때 내각과 상의하지 않았다는 점, 콜롬비아와의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반란을 독려하고 전투함을 파견했다는 점에서 그는 하드 파워를 이용한 리더의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프트 파워의 측면 또한 존재한다. 소프트 파워는 단순히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 무대에서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 국가행위의 정당성과 도덕성에 기반을 두는 권력이며 하드 파워의 정당한 행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루스벨트는 콜롬비아를 상대로 단순히 군사력이라는 하드 파워만 동원한 것이 아니다. 파나마를 새로운 국가로 인정하고 그들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지켰다는 점에서 소프트 파워도 함께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여러 협상에서 하드 파워를 사용하면서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인 소프트 파워도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리더가 스마트 파워를 행사할 줄 안다고 해도 권력을 혼자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승자의 논리가 레토릭(rhetoric)이다. 그러나 패자의 논리가 더 옳은 경우도 많다. 이를 헤레스세틱스(Heresthetics)라고 한다. 선거에서 2등은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박완서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보듯, 경쟁에서 항상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져도 의연할 수 있고, 더 큰 존경을 받을 수도 있다.

대통령선거 때 상대를 비방만 하지 말고 존중하면서 이기거나 또는 질 수도 있는 게임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모두가 다 경쟁에서 이기고 모두가 스마트하면 세상은 멋지고 편하고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더 무미건조해지거나 무질서해질 가능성이 있다. 모두가 정상에 올라갈 수는 없다.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밝히고, 스스로 고뇌하고 회개하며 성찰할 수 있으면 그게 내가 설 땅이다. ‘타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나’를 위해서라도 남을 배려하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일등만큼 꼴찌도 아름답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권력자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려면 권력을 지키고 있을 때뿐 아니라, 권력을 내려놓을 때를 늘 생각해야 한다. 두고두고 리더를 기리게 하는 것은 나력(裸力)이다. 보통 리더들은 자리를 탐하고 하드 파워를 거머쥐려 한다. 그러나 권력의 본질과 본 모습을 제대로 안다면 자리를 맡지 않아도, 아니면 자리에서 물러나도 사람들이 숭상하게 된다. 물론 비우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빈자의 미학’ 같은 것이다. 중국 베이징대 명예교수를 지낸 지셴린(季羨林)의 말대로 세상은 어차피 “다 지나간다”고 생각해야 현명하다. 한때의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인생을 통틀어 한 축과 한 선에서 내 좌표를 항상 가려야 하는 것이다. 잔향(殘香)은 그래야 나온다.

나력과 잔향

잔향은 나력과 같은 의미에서 은은한 기품을 말한다. 권좌에 있다가 내려와야 제대로 평가받는다. 진정 훌륭한 지도자였는지는 자리에 없을 때 알 수 있는 법이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도 남이 떠받들고 우러러보게 되는 힘이 드러나는 것이다. 거기에 잔향이 은은히 풍기면 더할 나위 없다. 훌륭한 리더들은 나력의 힘으로 영원히 존재하고 잔향도 풍긴다. 대표적인 인물이 체코의 하벨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전 대통령이다. 만델라는 민권운동가, 종신수, 남아공 최초의 흑인 변호사, 1994년 남아공 최초로 흑인이 참여한 자유총선거에서 당선된 최초의 흑인 대통령,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다. 그가 아직도 국내외 무대에서 활동하며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로 그의 나력이다. 잔향 또한 그윽하다. 하벨이 퇴임 때 국민에게 용서를 구한 연설은 오래도록 회자된다.

우리나라의 인물 중 나력이 있는 분은 송인상, 김준엽, 강영훈, 신현확, 김재순, 이만섭 같은 분들이다. 김준엽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국무총리직 제의를 받았을 때 머리가 100개 있어도 숙일 수 없고,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제자들을 생각하면 자리를 맡을 수 없고, 또 지식인이 벼슬이라면 굽실거리는 풍토를 고쳐야겠기에 국무총리직을 수락할 수 없다고 했다.

나력과 잔향의 대표적인 인물을 하나 더 소개한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다. “권위와 힘은 자리나 직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존경심에서 나온다”고 믿은 그는 중국 곳곳을 다니며 인민의 삶을 살폈기 때문에 숭앙받는다. 1950년대 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당시 그는 해질 대로 해진 잠옷, 기울 대로 기운 인민복을 입고, 식사는 두 가지 이내의 반찬과 탕으로 간소하게 먹는 등 검소한 삶을 살면서 인민의 애환을 나눴다. 영양보충에 소홀한 총리를 위해 어느 날 소시지를 잘게 썰어 된장에 절인 채소와 버무려 상에 올렸더니, 그가 대번에 알아내고 “모든 국민이 숨죽이며 고통과 싸우고 있는데, 나에게만 좋은 음식을 준다 한들 어찌 그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는가? 앞으로는 아내인 덩잉차오가 주방에 내려가 사 온 재료가 규정에 맞는지 또 고기가 들어 있는지 살펴볼 것이네”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어떤 경우라도 국가의 돈을 개인적으로 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봉급이 모자라 매주 두 끼는 거친 잡곡을 먹고, 3년 동안의 경제 불황기에는 몇 달이고 육류를 먹지 않았다. 지도자나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예로부터 권불십년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권불오년이다. 대통령의 임기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그러므로 권좌에 앉은 사람은 앉는 순간부터 떠날 때를 준비해야 한다. 등산보다 하산이 더 어렵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직위나 직책에서 내려올 때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때 빨리 달려 높은 자리에 올라 다른 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성공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인간은 그가 산 세월을 통틀어 어떻게 살았는지를 평가받는다. 세상 떠날 때 받는 평가가 제일 중하다.

연말 대선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인물에게 나라의 5년을 맡길 수 있을까? 나력과 잔향 이야기를 하면 정신없는 소리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라에 난삽하기 이를 데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무슨 태평성대의 말이냐고 할 것이다.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같은 리더라면 스마트 파워를 갖고, 나력을 드러내며, 잔향을 풍길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어야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만 해결하기를 기대하면 더는 얻을 것이 없어 국민은 실망의 늪에 빠질 것이다. 눈앞만 보지 말고 먼 내일로 눈을 돌려보자. 이제 민주학습도 여물어가니 이러한 흐름에 걸맞게 멋지고 아름다운 리더를 찾자.  (끝)

김광웅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한국행정학회장,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역임
저서 : ‘국가의 미래’ ‘통의동 일기’ ‘서울대 리더십 강의’ 
            ‘융합 학문 어디로 가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