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부드러운 권위`입은 리더십을 보고 싶다

기사입력 2014.09.18 17:23:03 | 최종수정 2014.09.18 17:49:43    


왼쪽 바퀴가 몹시 삐걱거려 수레를 끄는 기수가 힘겨워한다. 여의도 장애물이 너무 높아 정국이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차는 달려야 한다.

난국일수록 크게 봐야 한다. 흐름을 읽어야 한다. 창업의 시기는 지났으니 대통령 리더십 스타일을 차제에 좀 바꿔 리듬을 조절해야 한다. 의상만 아니라 국정운영 양식을 바꾸어 수성과 내일을 창조하는 새로운 이미지와 분위기를 조성했으면 해서다.

국민은 매일 대통령을 접하면서 민주교본을 읽고 시대 변화를 감지한다. 엄격하고 근엄한 대통령의 이미지는 그것 자체로 통치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니까 손색은 없다. 원리와 원칙 지키기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으로 믿음을 쌓는다. 그러나 의상 색깔 빼고는 딱딱한 인상이 짙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좀 부드럽게 바꿔 계급으로 찌든 이 사회에 힘찬 활력을 넣으면 안 될까.

60년대니까 반세기 전 이야기다. 미국 메이저 프로야구 월드 시리즈 챔피언에 등극한 뉴욕 양키스 라커 룸에서 감독 머리에 샴페인을 쏟아붓는 선수들을 보면서 민주국가라 저렇게 할 수 있구나, 충격 반, 신선 반이었다.

80년대 `백악관의 하루` TV프로에서 복도를 지나가며 흑인 여성 타자수에게 하이(Hi)! 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앉은 채 쳐다보지도 않고 인사하는 직원의 모습도 매우 생소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나이트 가운을 입은 채 전직 대통령을 만나기도 한다.

우리가 미국의 생활양식이나 운영양식을 따를 이유는 없다. 그러나 21세기 리더십의 정수가 파트너십이자 코 리더십(co-leadership), 그리고 무대 위아래 구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계급의식부터 없애야 한다.

청와대 회의 때 총리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따라 들어가는 것부터 하지 말았으면 한다. 대통령이 입장하면 비서관들은 병마총 군사처럼 꼿꼿이 서서 맞는다. 회의 중에도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는 듯한 경직된 인상만 풍긴다. 이런 장면들은 미국 대통령이 회의 때 캔디가 담긴 볼(bowl)을 맞은편에 있는 장관에게 밀어 보내는 모습과 매우 대조적이다. 지시하는 대통령보다 의논하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대통령의 모습이나 이미지는 국민의 마음에 그대로 투영된다. 민생 정책이나 제도보다 때로 더 마음이 다가가서다. 대통령이 회의 때 정책의 정합성이나 시급성 등을 아무리 강조해도 정책 집행이 국회나 저항하는 시민 때문에 막히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경험한다. 더욱이 힘은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나온다는 미셸 푸코의 말을 떠올리면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이 맞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을 안다.

대통령은 오히려 이사야 벌린이나 네이트 실버의 말처럼 고슴도치의 입장이 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한마디로 세세하게 지시하기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답답한 국민의 마음을 여는 길이다. 대통령은 원샷 행사성 사회참여나 관찰 말고 어느 단체나 개인하고라도 철학적으로 깊이 있는 대화와 토론을 하면서 격쟁상언(擊錚上言)을 받아들여야 한다.

딱딱한 계급보다 유머와 여유로 순응의 민주정치에 맞는 행동양식을 지향했으면 하는 기대하고, 의상을 포함해 의식의 권위를 지켰으면 하는 것하고는 상충되는 것 같지만 국정의 수장으로 대통령의 직격(職格)과 품격을 지키려면 대의를 표방하는 따뜻하고 여유롭고 유연한 권위 이상이 없다.

나라의 기본인 법과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권위의 상징인 공권력의 미토콘드리아(생명소)도 키워야 한다. 자신들만이 옳다고 강변하는 인위적 근본주의자들의 주장보다 훨씬 크고 든든한 자연산 국민의 성원이 뒷받침하고 있다.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초대 중앙인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