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5.03.29 17:23:42 | 최종수정 2015.03.29 20:26:30

                                                                                                       <매일경제 2015.3.30(월) 자 A38면>


     


아랍의 봄은 오는 듯하다가 말았다. 아랍리그 22개국 중 민주국가는 세 나라 정도다.

서울의 봄도 시련을 겪고 있다. 한마디로 전 세계 자유민주국가가 신음한다면 누가 믿을까.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1)국민국가 (2)자유국가 (3)복지국가로 이어진 국가 변천 과정에서 아직도 복지국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있어 언제 (4)공존국가(Symbious State)로 옮겨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한계이자 모순 때문에 제4 혁명은 더디기만 하다. 민주국가라면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한껏 보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길을 알면서도 나서지 못하고, 국민 역시 억지를 쓰는 일이 점점 늘어난다.

국가 개조의 출발은 정부 개혁이다. 지금까지 끝없이 정부를 고쳐왔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 법과 제도로 풀 수 있는 한계 때문에 허송하며 국민의 기대와 희망은 배반당한다. 최근 김영란법이 그랬고 어린이집 CCTV 설치 법안 심의 때도 민주정치의 민낯이 드러나고 말지 않았는가.

정부 개혁은 정부가 뭔가를 새롭게 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미국 워싱턴은 비대해지고 빚만 지고 고착 상태에 놓여 있다고 J 미클레스웨이트와 A 울드리지가 말한다. 그 훌륭한 덕목을 지닌 민주주의는 과부하 시스템에 오히려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에 비해 작지 않고, 정부가 매사에 관여하며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허둥대고 있다. 정부 권한이 능률만 좇는 것이 능사가 아닌데도 그 일만 매일 반복하며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정부는 스스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을 가릴 줄 모르는 치매 증상이 깊어만 간다.

국가 개조를 위한 제4 혁명은 민주주의의 봄을 피우자는 것이다. 정부부터 고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여야, 세대 간 갈등과 분열이 깊어 가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그 길은 법과 제도를 바로 세우는 것으로는 안 된다. 국무총리가 각부 장관을 평가해 서열을 매기고 퇴임 압박을 한다고 되지 않는다. 장관을 평가한다는 발상 자체는 매우 전근대적이다. 사람이나 기관을 평가한다는 것은 정확하지도 않고 모든 요소를 망라한 것도 아니고 정곡을 비껴갈 텐데 정부는 미덥지 않은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설혹 장관을 평가한다면 청와대 수석도 함께 도마에 올려놓아야 한다.

한국의 민주 점수는 어느 여론조사를 보면 47점 정도로 매우 낮다. 민주주의 토대인 이성적·합리적 성격도 비슷한 수준이다.

길은 하나밖에 없다. 정부부터 열어젖히는 거다. 이를테면 형식적인 개방형 인사 시스템 정도로 정부를 연다고 하지 말고 폐쇄적 관료조직에 내외부 입김을 불어넣으면 된다. 요즘 기업들이 하듯 정부 각 부처가 외부자는 물론 내부자로 하여금 `평가 사이트`에 의견을 개진하게 하는 것이다.

기업은 지금 페이스북에서 `대나무 숲`을 통해 의견과 비판을 서슴없이 받아들인다. 삼성 평가가 5점 만점에 3.5점에 불과하다는 `잡플래닛`도 같은 기능을 한다. 미국도 취업 정보 사이트인 `글래스 도어`로 우수 인재를 적극 끌어들인다.

정부라고 못할 리 없다. 부처별로 장관을 포함한 고위직 리더십, 정책, 조직 인사 관리 등 외부 평가를 철저히 받고, 동시에 정직하고 성실한 공직자 내부인이 하는 진솔한 평가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는 정부만 아니라 폐쇄적 왕국을 건설한 재벌과 사악(邪惡)한 사학도 예외여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각자 이해에 얽혀 퇴보하고 있다. 21세기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해방적 가치와 명령과 통제의 권위주의적 가치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학자들은 말하지만, 이러한 막연한 주장보다 정부가 내외의 평가를 적극 수용하면 공존국가로 이어져 서울의 봄은 아랍 같지 않을 것이다.

[김광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