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초유의 위기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대선을 코 앞에 둔 지금까지 유력 정당 후보간 경쟁구도조차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승패를 떠나 최소한의 정책ㆍ인물 경쟁이 실종된 일방적 대선은 정당정치를 왜곡하고 장차 차기 정부의 국정수행에도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심각하다.
책임은 물론 대통합민주신당에 있다. 경선일(14일)이 닷새 앞으로 다가온 지금, 신당 경선은 부정선거 공방에다 사상 초유의 후보 캠프 사무실 압수수색 사태까지 벌어지고 분당설까지 나오면서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다.

설령 정동영, 손학규, 이해찬 후보 중 누가 우여곡절 끝에 신당 후보로 확정된다 해도 부정선거 논란과 선거 파행 책임론으로 정통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이미 도를 넘어선 후보간 공격은 선출 후보에 대한 다른 후보의 협조 거부를 넘어 분당 사태마저 초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이른바 범여권 지지세력으로부터 신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 장외 후보인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간 후보단일화 요구가 거세게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불신의 골이 깊고 분열될 대로 분열된 범여권 세력으로서는 후보 단일화 논의 자체를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대선을 포기하고 내년 총선을 겨냥한 분파주의가 실제 존재한다면 신당 경선 이후의 국면은 더욱 혼미해질 수 있다.

대선이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신당 경선이 좌초위기를 맞고 있는데 대해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는 ‘착각과 오만의 산물’로 진단했다. 김 교수는 “신당의 일부 인사들은 지난 대선 때처럼 네거티브 한 방으로 국면을 뒤집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면서 “이는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이자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무능”이라고 비평했다.

문제는 이런 신당 경선의 파행이 그들만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정당정치 나아가 국가 미래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고자 하는 국민의 선택권을 크게 훼손하고 제약하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4월28일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5월9일에 확정돼 10월에는 정책적, 도덕적 검증을 다각도로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의 경우 11월에 가서도 후보 구도조차 가시화하기 어려워 국민들은 여야 후보간 정책적, 도덕적 차이를 면밀히 점검하지 못하고 그저 인상비평에 의존해 표를 던져야 할 처지다.

정치적으로는 정당정치의 퇴행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대선 시즌만 되면 시도되는 분당과 창당 등 분파주의적 움직임이 이번에는 대선직전까지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 국민의 정치혐오증을 극점으로 치닫게 해 정당 정치의 존립기반마저 뒤흔들 우려가 있다.

보다 거시적으로 대선이 대통령을 뽑는 절차를 넘어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 즉 시대정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의미를 확대한다면, 지금의 혼미한 구도는 그런 진지한 논의를 상실시킬 우려가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건전한 대선이라면 서로 다른 국가전략과 비전이 생산적으로 경쟁하는 구도일 것”이라며 “범여권 또는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지리멸렬해진다면 대선을 통한 시대정신의 모색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구도는 승패를 떠나 차기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각 후보는 대선 과정을 통해 자신이 추진하는 주요 정책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점검, 현실 적합성을 제고하고 도덕적 검증과정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현 국면은 이런 논쟁들을 대선 이후로 이월시켜 차기 정부의 초반을 소모적 정쟁에 휘말리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 10월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