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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가을이 되면 학교나 공공도서관에 나부끼는 플래카드가 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 “책을 열자 미래를 열자” 등의 표어가 바로 그것이다. 지극히 상투적인 문구이다. 독서란 늘 해야 하는 것, 왜 가을에만 강조하는가? 그러나 문득 고개 들어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을 만나거나 팔꿈치를 스치는 생량머리의 소슬한 바람을 느낄 때면 새삼 책장 넘기는 소리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벌레 울음소리 청량한 가을 밤, 마우스를 눌러 검색창을 뒤지는 대신 사그락거리는 종이 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넘기고 싶어지는 것이다. 마우스가 인도할 정보의 바다에서 빠져나와 잠시 걷고 싶은 곳은 깊은 사색으로 이어진 지혜의 오솔길이다.

조선의 학자 이덕무는 스스로를 ‘책에 미친 바보(看書痴)’라고 불렀다. 그는 가난한 서얼 신분의 질곡 속에서도 책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서른아홉에 규장각의 초기 검서관으로 임명된 그는 문서 정리와 같은 단순 작업에서 시작하여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편지글에는 “옛날에는 문을 닫고 앉아 글을 읽어도 천하의 일을 알 수 있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둔재임에도 1억 1만 3천 번의 독서를 통해 꽃을 피운 김득신이라는 노력가도 있다. 모두 책에 미친, 아름다운 이들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2월 서울대를 정년퇴임한 김광웅 교수는 평생을 책과 함께 해 온 가인(佳人)이다. 교수이자 학자이니 책과 가까이 생활함은 당연지사일 터이다. 그러나 가령, 행정학을 전공했으면서 과학 분야에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관심을 지니고 있고, 정부 관직에 머무르면서 행정을 예술과 연결짓는 상상력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 가인(佳人)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지 않을까? 그가 이번 9월부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좋은책선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김광웅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 행정대학원 3층 명예교수실을 찾은 것은 9월 초순의 비 오는 날이었다.

“자유인이 된 건 참 좋은데, 하던 일이 있잖아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해서 그런지 퇴임을 했어도 하던 일은 해야 할 거 같아요. 파킨슨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R(Retirement)-3’이라고, 퇴임 전 3년 전부터 일을 접으라는 것이죠. 갑자기 모든 일을 손에서 놓으면 금단현상이 일어나니까. 그런데 퇴임식 때 나는 ‘R+3’을 말했어요. 퇴임 후 3년까지는 일을 하라고 말이죠.”

퇴임 후의 근황을 여쭙자 나온 답변이었다. 아직도 강의를 또 그 밖의 일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퇴임 후 5년까지 강의가 가능하다고 덧붙인 그의 얼굴에는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하는 기쁨이 환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살다가 정리할 때가 필요해요. 무엇을 잘못했나, 잘했나, 정리를 하면서 사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런 정리의 일환으로 정년퇴임하면서 3,000권의 책을 도서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정부 중앙인사위원회에서 나오면서도 행정학 관련 도서 300권을 기증해서 별도의 문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퇴임 전 가득 쌓인 책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고 내방객들에게 원성을 샀던 책들을 정리했건만 그의 책상에는 과학, 예술 분야의 책들이 새롭게 쌓여가고 있다. 신문에 책 광고가 나온 것을 보면 반드시 사게 된다는 그는 어쩔 수 없는 독서광이다. 그러니 그에게 새롭게 부과된 좋은책선정위원회 위원장의 자리는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사실 책에서 벗어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팔자인가 봅니다.(웃음) 위원장직은 책을 더 읽으라는 준엄한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퇴임을 하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한다. ‘어떤 형태로든 봉사를 해야겠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서비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좋은 책을 선정하는 일이라고 해서 귀가 솔깃했고 시, 소설, 역사 등 다른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21세기에는 인간의 지능이 지금의 1조배가 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 시대에 인간의 존재 의미는 어떻게 달라질까? 김광웅 교수가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래 학문이다. 지난 4월 서울대에서 열린 미래 학문·대학 콜로키움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광웅 교수는 소통을 중시하는 ‘관계의 과학’과 경계를 넘는 ‘융합의 과학’을 강조한 바 있다. 학문 간의 벽을 뛰어넘고 소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또한 독서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의 독서 실태를 떠올리면 열악하기 그지없다. 성인 독서량이 월 평균 0.8권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월 평균 3권 정도인 다른 나라에 비하면 부끄러운 숫자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독서 인구의 양극화 현상이 벌어져 소수의 사람들만이 책을 읽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생들의 독서 실태는 어떨까? 김광웅 교수의 눈에 비친 모습은 다소 어두웠다.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대학 교재조차 사 보지 않는다, 그러나 노트북만은 비싼 걸 가지고 다닌다, 아무 때나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그때마다 노트북에서 정보를 빼낸다, 이것이 대학생들의 지식 습득 과정이라고 한다. 아날로그 세대가 종이에 익숙해 있듯 그래서 신문을 뒤적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잠들기 전에 책장을 다만 몇 장이라도 넘겨야 마음이 편안해지듯 오늘의 대학생들은 인터넷에 길들여져 있다.  

“어떤 형태로든 학생들이 지식을 얻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 절망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단지 세대간에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죠.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필요한 지식을 자르고 붙이고 편집하는 그런 데에 익숙해 있는 셈이에요. 따라서 정보를 수집하는 속도가 빨라졌고 그 양 또한 많아졌죠.”

정보와 지식은 다르다. 정보가 조각이라면 지식은 묶음이라 할 수 있다.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하고, 미술은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런데 음악이나 미술뿐만이 아니라 역사, 과학 등 인류의 모든 지식이 책을 통해서 접근 가능하지 않은가. 결국 책을 읽는 것은 뇌를 즐겁게 하는 일이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사람이란 살기 위해서 필요한 무엇인가를 책을 통해서 얻으려고 합니다. 내가 미처 모르는 것, 나와는 다른 남이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책이죠. 책을 통해 지식을 얻기 마련인데, 그러한 지식의 습득 없이 어떻게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또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수 있죠? 만일 내 생애에서 책을 지워버리면 그건 내 존재 자체가 없어져버리는 일이에요.”

최근 정부 기구를 간소화하자는 의견을 피력해 온 그는 대화 중에 문득 농담 한마디를 툭, 던진다. “이 기구는 없애면 안 되는데…….”




지난 2월에 있었던 퇴임식에서 그는 퇴임 교수 대표 연설을 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퇴임사의 말미를 장식한 것은 한 편의 자작시였다.




그대 영원하니




작은 불씨

지펴

모락모락

연기 일더니

꺼질 듯 꺼질 듯

한때

그러다 말다

다시 타

큰 불꽃

활활 타오르는

진리의 빛




그대

영원하니

관악에 온 누리에

높게 널~리





이 시를 통해 모 시인께 시인의 자질을 인정받았다면서 수줍게 기뻐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이다. 진리의 빛. 서울대 배지에 적힌 라틴어 문구 ‘VERITAS LUX MEA’의 뜻도 ‘진리는 나의 빛’이다. 21세기에 진리는 어떤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21세기에 진리는 없어요.”

“네?”

“시간도 공간도 없어요. 오로지 인식하는 내가 있을 뿐이죠.”

Richard Lanza라는 다소 생소한 영국 학자의 저서를 예로 들며 그는 말했다.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 시간도 공간도 다르게 인식된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니 인식 주체에 따라 수백 가지 진리가 공존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이미 예고했던대로 절대적인 진리, 절대적인 권위가 사라진 시대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허무주의의 무중력 상태로 빠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각 개인이라고 하는 사회적 소자아간의 소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김광웅 교수가 자신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책으로 손꼽은 마가릿 휘들리의 『리더십과 새로운 사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 속에 놓여있다. 양자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리더십을 바라보고 있는 이 책은 침묵, 틈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선을 중시한다. 이 책에서 역설하는 리더십론은 사람을 간섭하고 통제하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사이에 사랑과 신뢰를 채우는 일이다. 절대적인 진리, 절대적인 권위가 없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간의 소통과 이해이리라. 미래를 준비하는 비전인 ‘코그노(Cogno)’와 아름다움을 가릴 줄 아는 심미안을 의미하는 ‘디지그노(Degigno)’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 그의 리더십론의 요체이다.

“문학, 인문학의 위기요? 미래사회에 더욱 필요한 것이 바로 시나 소설 같은 예술인데 위기라니 무슨 말인가요? 상상력을 바탕으로 아우르는 디지그노의 핵심이 바로 시나 소설이며 또한 예술인데.”

최근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방향이 ‘심의’나 ‘규제’에서 ‘권장’이나 ‘진흥’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것에 대해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워낙에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정신 건강에 해로운 책들을 골라낸다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규제’라는 말에는 무언가 불편하게 하는 점이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좋은 책을 더 많이 읽도록 하는 것, 또 좋은 책을 더 많이 쓰도록 하는 것, 그런 분위기의 조성이 중요할 거예요. 더 나아가 단순히 선정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좋은 책들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전반적인 환경의 조성이 더 중요한 거죠.”




김광웅 교수는 딱딱한 행정학이라는 학문에 온기와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중앙인사위원회 시절에는 정부개혁에 참여하면서도 비판적 평론을 서슴지 않았던 쓴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일에 앞장선 미래학문의 선지자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책에서 지혜를 구하는 즐거운 탐구자이다. 책을 읽으면 즐겁잖아요, 하고 말하는 김광웅 교수의 환한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어깨 위에 새롭게 놓여진 짐이 무겁다기보다는 가뿐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마 뒤로 넘긴 은발 아래 은은히 감도는 미소는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를 떠오르게 한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지 45년 되던 해에 썼다는 편지의 한 대목은 그의 미소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려주는 듯하다.

‘당신이 제게 가르쳐주신 것은 정의도 자유도 민주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사랑과 아름다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