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상처만 남는 승리는 피해야  

피루스왕 같은 승리는 안돼
새 틀로 나라 설계해야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서 전선이 불붙고 있다. 선거는 착각의 게임이다. 후보 누구나 다 당선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출마한다. 유권자도 후보의 자질을 착각하고 기대를 건다. 상대방 후보를 비방해야 내가 살아남는다고 착각한다. 비방은 부정적 이미지로 5년 내내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래도 당선되어야겠지.

그러나 기원전 280년 로마군단을 물리친 피루스 왕의 승리(Pyrric Victory)처럼 될까봐 걱정이다. 로마 공격을 받은 타렌툼인이 요청해 왕은 2만5000명의 병사와 20마리의 코끼리로 로마병 2개 군단을 섬멸하지만 사랑하는 병사를 모두 잃는다. "이런 승리 한 번 더 했다가는 우리가 망한다"고 한 피루스 왕의 승리를 `상처뿐인 영광`이라고 일컫는다. 같은 제목의 권투영화도 있다.

대선에 임하는 후보들을 보면 오로지 승리만 외쳐대며 모든 것을 얻어 나라를 일으켜 세울 듯이 포효한다. 잘난 대통령 제대로 뽑아 나라가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 경제가 살아나 취직 잘 되고, 법치가 제대로 되고, 남북 관계도 잘 되고, 한ㆍ미 관계도 예처럼 복원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등ㆍ고등교육 할 것 없이 돈 많이 안 들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미안하지만 어떤 대통령이 당선돼도 나라가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는 않는다.

5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예가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각 대선 캠프는 전쟁에서 지면 안 되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야 한다는 일념이다. 그렇게 해서 이긴들 만신창이가 된 당선자의 명예를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대통령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자리가 가져다주는 위엄으로? 국록을 먹게 되는 주변 사람들의 만족감으로? 그러나 이들 모두는 허상이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허망해진다.

그래서 말하는데 대선 후보자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5년 동안 할 일과 안 할 일, 더욱이 5년(2008~2013년) 동안 세계 정세와 지역 사정이 어떻게 변하는데 한국의 위상은 어떻게 되고 이를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이며, 국민과 시장이 할 일이 무엇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과거의 국정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미래는 복잡계ㆍ융합시대이고, 물질 기계 마음 에너지가 하나라고 인식하는 인지과학, 즉 제2계몽주의시대이고, 우주ㆍ사이버 등 공간시대이고,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꾸미는 디지그노(designo) 시대이고, 규격화하지 않으며 채우지만 말고 비우기도 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에 맞게 국정 운영 틀을 새로 짜야 한다.

그러려면 첫째, 나라가 어떻게 변모할지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달성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로널드 잉글하트 미국 미시간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 1만달러가 넘으면 어느 나라 국민이나 주관적 웰빙은 거의 비슷하다.

이제는 나라의 경제력을 국내총생산(GDP)만 가지고 하지 않고 GPI(Genuine Progress Index)라고 해서 `진정진보계수`를 가지고 나라가 튼튼한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말한다.

둘째, 21세기에 맞게 복잡계 과학시대에 융합적 사고를 하라는 것은 정부는 작아야 하니까 몇 개 부처로 줄이겠다고 하면 안 되고, 유관 정부 부처를 통폐합할 수 있는 논리로 활용하라는 뜻이다.

헌법 82조 2항에 정한 국무위원 수(15인 이상 30인 이내)도 모르고 부처 수를 10개로 하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이나 하고 있다.

셋째, 허튼 공약하지 말고 5년 동안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다양한 생각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어떤 성향으로 정책을 집행해 어느 계층을 만족시키겠다고 해야 한다. 대통령이 온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도저히 없다. 넷째, 국민의 머리를 채우되 배는 덜 채워도 좋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창조사회에서 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모든 일을 아름답게 디자인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어느 노정치인이 정치를 업으로 삼았던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은 실업(과실을 얻은 직업)이 아니라 허업(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는 직업)을 했다고 일갈했다.

대선 후보와 참모들에게 고하노니 `상처뿐인 영광`을 향해 그렇게 뛰지 마라. 정 뛰고 싶으면 `영광뿐인 상처`를 어루만져라. 그것이 개인과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