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대통령을 기대한다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 제37호 | 20071125 입력  

대선 후보자들이 국민을 대하는 자세에 의문이 생긴 것은 일전에 예술의전당 앞에서 우연히 만난 두 노파 때문이다. 여든이 넘은 듯한 한 할머니는 우면당 앞 나무벤치에 화석처럼 앉아 햇볕을 쬐며 주무시고 계신다. 다른 한 분은 서초구의 명물, 물이 흐르는 아쿠아 육교 아래 도로변 잔디밭에서 풀을 뽑고 계신다. 다가가서 무얼 하시느냐고 여쭤봤더니 “아, 내가 아들을 낳지 못해서 군대를 못 보냈잖아, 나라를 위해서 한 일이 없으니 풀이라도 뽑으며 뭐라도 해야지”라고 하신다. 앞의 할머니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복지의 대상이고, 뒤의 할머니는 그런 도움 없이도 나라를 위해 당당히 한몫하는 분이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저자세인 듯하지만 내가 뭐든지 해낼 수 있고, 이에 따라 유권자인 당신들은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나를 찍어야 한다는 오만한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실제로 대통령이 되면 엄청난 예산과 온갖 자원으로 나라를 좋게 만들 수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라고 해도 좋고 친인성·친환경 국가라고 해도 좋다. 아니면 공자의 예기(禮記) 9장에 나오고 덩샤오핑과 후진타오가 말한 샤오캉(小康) 국가가 되어도 좋고, 창조국가가 되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에게 요구하는 당당한 자세가 아니면 그런 국가가 될 수 없다. 대선 후보들의 시대인식이 구태의연하다는 데 문제가 있지만, 후보자의 저자세-그것은 당선되는 순간 고자세로 바뀐다-에도 문제가 있다.

새로운 시대인식은 한마디로 채움만큼 비움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인식, 산업·환경·건설·교육·통일·인권 등 여러 공공 이슈를 따로따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하고 복잡성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정책인식, 지구와 우주 그리고 사이버 등 공간에서의 관계기술(RT·relations technology)과 네트워크적 인식 등이다. 새로운 시각과 인식 없이 21세기 국가를 이끌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새로운 인식을 국민과 어떻게 공유하느냐다. 저자세로 일관하다 갑자기 고자세가 될 것인가, 고자세까진 가지 않아도 국민에게 표를 구걸하지 않고 당당히 요구하는 자세를 취할 것인가? 국민 중에는 거짓으로 꾸며 위법·위장하고 요런조런 핑계로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면서도 온갖 이득을 취하고 공직도 맡겠다는 군상도 많지만 앞의 한 할머니처럼 내가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뭔가를 고민하고 찾으려고 애쓰는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다.

미국 쪽 예지만, 소설가 헤밍웨이는 용기를 ‘고난 앞의 품위’라고 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지도자는 품위를 지킬 줄 알아야 존경받는다. 링컨 대통령은 ‘있는 그대로 말하기’의 원칙을 지키는 바람에 온갖 비난과 견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감정을 드러내는 편지 쓰기를 서슴지 않았다.

케네디 대통령의 명구는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 “나라가 그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그대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물어라”라고 했다. 클린턴 대통령도 “승리는 열심히 일하고 규칙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의 것… 낙오되었다고 버림받았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더 잘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승리… 이 나라, 인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리라는 책임을 받아들이고…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다시 미국인이 되어달라고 당부합니다. 얻는 것만이 아니라 주는 데, 비난을 하는 데만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데, 자신만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돌보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합니다…”라고 당선 인사를 했다.

웹2.0이나 사용자제작콘텐트(UCC)로 유권자의 마음을 읽고 쌍방향 소통을 잘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자세부터 바꾸어 유권자들에게 당당히 요구하라. 내 권한과 책임, 그리고 국민의 의무를 말하고 ‘같이 가자’고 ‘미래의 파트너십’을 말하라. 이런 자세에 호응하지 않는 유권자는 버리는 것이 국정운영에 크게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