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주소>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1311&cat_code=06&start_year=2007&start_month=02&end_year=2007&end_month=05&press_no=&page=1


儀式이 意識을 일깨운다 - 서울대학교 김광웅 명예교수

우리 대학은 교육내용만이 아니라 의식을 포함한 형식에서도 교육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고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가. 내용만큼 중요한 형식을 너무 등한시하지 않았나. 이런 의문이 든 것은 지난주 미국 서부의 어느 대학 졸업식장에서였다. 장장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졸업식에서 대학은 학생을 교육해 사회에 내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몇 가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하나가 자유와 평등에 관한 바른 인식이고, 다른 하나가 질서 의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었다. 교실에서도 그러하겠지만 의식(儀式)을 통해 이런 의식(意識)을 일깨워주면서 노력의 결실로 얻은 성취를 존중하고 한껏 찬양한다.

학장의 사회로 진행된 졸업식의 첫 연설자인 학생대표는 배움 속에서 익힌 이론이 사회에서 제대로 적용되기를 기대하면서 교수들에게 한없는 존경의 염을 감추지 않는다. 최고 인기 학생으로 선발된 졸업생의 익살은 장엄한 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베스트 티처’로 선정된 교수의 연설은 “남과 다를 바가 없다”고 겸손히 말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잊지 않는다. 주 대법원 판사는 정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총장도 격려를 잊지 않았고 주임교수가 지난 3년을 회고하며 정리한 교육과 연구의 내용이 ‘탁미(卓尾)’를 장식한다. 졸업생 중에서 피아노 연주자와 메조소프라노 가수가 등장해 흥을 돋운다. 졸업식은 한마디로 대학교육의 정수를 축약한 것으로 졸업생 모두의 의식에 학문과 고등교육의 소중함을 각인시켰다. 전날 가든파티 때도 자원해 물통 위에 앉아 있는 교수를 물에 빠뜨리는 게임을 하는 것은 그동안 한없이 시달렸던 학생들의 의기를 살려주는 사기앙양과 평등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론 무장에 평등과 자유를 구가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 대학에 이들은 평생 감사할 것이다.

이번 대학 행사를 보며 새삼 느낀 것이 교육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이 실제를 가름하고 영향을 주는 구석을 우리는 너무나 등한시했다는 점이다. 대학 안에서는 각종 행사가 수없이 벌어진다. 행사 하나하나를 보면 겉으로 근사하게 보이지만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흔하다. 나아가 행사가 내용을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여지를 원초적으로 막는다. 왜냐하면 의식이 지나치게 관료적이면서 형식 위주로 흐르기 때문이다. 좀 더 멋있게 할 수 있고 의미있게 할 수 있는데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유 중 하나를 들라면, 교수나 학장들이 직접 해야 할 일을 조교들에게 맡기니까 세련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 강의는 강의대로, 행사는 행사대로 모두가 교육의 장이라는 인식을 불어넣어야 한다.

우리와 서구사회 사이에 문화와 스타일의 차이는 물론 있다. 그래서 꼭 서양식대로 따라갈 것은 아니로되, 기왕 하는 일을 더 멋있게 더 의미있게 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이제 30분이면 끝나는 무질서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메시지가 없는 식사와 축사가 곁들인 졸업식 행사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꼭 학생 대표와 나란히 무대에 앉아 행사를 치러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대학이 가르쳐야 할 소중한 가치를 현현하자는 뜻이다.

대학인들은 아직도 자기중심적 생각에 집착해 남의 의견을 말로만 존중하지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흔하다. 학생의 의견이 더 훌륭한데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문적 입장에서 그렇고 스타일에서도 그렇다. 이제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다. 대학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 시대에 뒤떨어져 쓸모가 없다는 비판도 많이 받는다. 그래도 자유와 평등에 관한 인식을, 특히 의식을 통해 제대로 인식하고 학교를 떠난다면 그 이상 좋을 수가 없다. 의식의 스타일부터 한번 바꿔보는 게 어떨까.  

기사 게재일자-2007.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