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014.5.20일자  A4면 >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 개조(改造)'를 거론해온 박근혜 대통령은 19일 대국민 담화에서 공직 시스템 전반을 개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무원 채용 단계부터 근무 방식과 퇴직 이후 재취업 문제까지 과정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한 19일 오후, 안전행정부가 입주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한 19일 오후, 안전행정부가 입주한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성형주 기자


① 임용제도 개선 - 획일적 '考試 선발' 대신 필요에 따라 채용

박 대통령은 우선 공직 부조리 척결 해법으로 5급 이상 공무원에 민간 전문가 출신을 50%까지 늘리는 공직 임용 제도 개혁안을 제시했다. 민간인의 공직 진출을 수월하게 만들어 고시(考試) 출신과 민간 경력자 비율을 5대5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 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계급제’를 축소하고 미국식 ‘직위분류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은 과장급 이상에 ‘개방형 직위제’가 있는데도 대부분을 공무원 출신이 차지하는 데 대해 “부처별로 선발위원회를 두고 공모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앙에 별도의 ‘중앙선발시험위원회’를 설치해서 공정하게 민간 전문가를 선발해서 부처로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수한 인재 유치와 정착을 위한 방안 없이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위 공무원의 퇴직 후 재취업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공직 혁신안의 하나로 제시된 만큼 민간 인재가 공직에 진출했다가 다시 기업에 가기 어려워지면 민간에서 버티지 못하는 ‘B급 인재’만 공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② 전문성 높이기 - 1~2년마다 자리 옮기는 '순환보직制' 개선

박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문제점으로 계속 지적받아온 ‘순환보직제’를 개선해서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1~2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는 순환보직제는 잦은 업무 변경으로 공무원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면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야기하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따라서 순환보직제를 개선해서 한 자리에 진득하게 있도록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한 부처 내에서 소위 ‘좋은 자리’와 ‘나쁜 자리’가 나뉜 상태에서 어떻게 순환 보직을 포기하도록 할지가 관건이다. 과거 정부에서도 순환보직제 개선을 시도했다가 선호 보직에 대한 쏠림 현상 등으로 실패했던 전례(前例)가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전문성을 가지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공무원들은 더욱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와 함께 보다 나은 여건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자리에서 오래 일하면서 전문성을 키우는 공무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 조직개편 내용. 박 대통령이 발표한 세월호 사고 후속 조치.


③ 재취업 엄격 제한 - 퇴직자 취업 제한 대상 기관 3倍 늘리기로

박 대통령은 이날 민관 유착을 막기 위해 안전 감독과 인허가·규제, 조달(調達) 업무 등과 직결되는 공직 유관 단체 기관장과 감사직(監事職)에는 아예 “공무원(출신)을 임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정부 업무와 관계있는 협회·조합을 재조사해서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대상 기관을 현재보다 3배 이상 대폭 확대하고, 취업 제한 기간도 현재의 퇴직 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퇴직한 고위 공무원에 대한 재취업 적격성 심사 때 퇴직 전 ‘소속 부서’ 업무뿐만 아니라 ‘소속 기관’ 전체 업무를 판단 기준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고위 공무원으로 퇴직한 후 10년 동안은 취업 기간 및 직급 등을 공개하는 ‘취업이력공시제도’를 도입하겠다며 이런 내용들을 담은 공직자윤리법의 개정안을 곧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또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가 제출한 ‘부정청탁금지법안(일명 김영란법)’을 국회가 조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공무원들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경제 부처의 한 1급 간부는 “퇴직하면 바로 집에 가라는 얘기다. 허탈하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과장은 “공정위 전체로 업무 관련성을 따지면 모든 기업과 로펌에 취업하기 힘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