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2년 08월호 635호 (p398~407)

시련 속에서 ‘불굴의 정신’ 기른 화합의 지도자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명지전문대 총장 kwkim0117@mjc.ac.kr


● 불우한 가정 환경이 리더에게 미치는 영향
● 대구사범 꼴찌 박정희, 중학교 때 정학 맞은 김영삼
● “상처는 흠이 아니라 성공의 필수불가결한 요소”
● 흙, 비바람, 햇볕이 어우러진 ‘테루아’ 형 리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사열 모습. 히틀러는 어머니를 습관적으로 구타하는 폭군 아버지 밑에서 컸다(왼쪽).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어머니 앤 더넘. 앤은 어린 오바마에게 마틴 루서 킹을 롤 모델로 보여주며 흑인의 장점과 우수성을 가르쳤다.

대선 때가 되면 춘추전국시대처럼 군웅이 할거한다. 잠룡이라 일컬어지는 이 중에는 그럴싸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선뜻 내키지 않는 인물도 있다. 뭔가 도모하고 싶어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겠지만 제값(self worth)을 모르는 듯한 인물이 자기주장만 펴는 것을 보면 정치 혐오증이 도진다.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를 가리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배양할 생각 없이 저마다 잘난 척을 하며 대권만 쥐면 뭐든지 잘할 수 있다고 허언을 하고 다닌다.

조선의 왕은 경연을 당연시했고, 현대에서도 대통령이 가정교사를 두고 국제문제나 경제 등의 분야에서 부족한 지식을 익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을 갖춘 뒤의 일이다. 한 분야의 경험밖에 없는 인물이 가정교사를 두면 대통령 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은 허황되다.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되고 대통령이 되려면 역경을 겪어야 한다. 또 공공분야에서 봉사하고 정진해야 한다. 이렇게 정진해도 원하는 수준에 미칠까 말까다. 그런데 아직도 미분화된 원시사회 같은 이 나라에서는 대선 때만 되면 모두 자신이 잘난 줄 알고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해 국민을 괴롭힌다. 앞으로는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국내외 정치 지도자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경험을 거쳐 일가를 이뤘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리더 중에는 귀족처럼 특권층에 속하는 인물이 있고, 반대로 소외층에 속했던 인물도 있다. 루스벨트와 처칠은 대대로 정치에 깊이 관여한 귀족 가문 출신이다. 드골과 레닌은 중상류층에 속했고, 집안에 학자가 많았다. 차이점은 드골 가문은 애국심이 강했던 반면, 레닌 가문은 레닌의 형이 러시아 차르 체제에 반대하고 혁명에 가담한 죄 때문에 교수형을 당했을 정도로 반골 기질이 강했다는 점이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전체주의 국가의 리더는 대개 사회 소외계층에서 나왔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사생아로, 하급 세관원이었다. 무솔리니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다. 스탈린은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이다. 마오쩌둥의 아버지는 빈농이었지만 나중에 부농이 된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도 어려운 환경 출신이 많다. 김대중은 서자로 태어났다. 노무현은 고구마를 심어 생계를 겨우 꾸리는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명박은 단칸방에 살면서 하루 두 끼를 술지게미로 때워 술 냄새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집안이 좋아야 큰 인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가정에서도 인물은 얼마든지 난다. 문제는 어려운 상황을 겪는 과정에서 불행하게도 못된 군주가 나오는 예가 많다는 점이다.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선거 당시 부모와 함께 투표하는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전체주의자의 아버지

리더 가운데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이도 많다. 러시아의 이반 대제는 아버지를 매우 증오했다. 스탈린은 아버지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하며 자랐다. 히틀러는 어머니를 습관적으로 구타하는 폭군 아버지 밑에서 컸다. 마오쩌둥은 아버지를 싫어한 나머지 어린 나이에 가출한 적이 있다. 이들은 이후 권력을 잡은 뒤 인권을 탄압했다. 하지만 전체주의 국가 지도자가 다 그렇지는 않다. 레닌은 아버지를 본받고 그의 정치 성향을 따르려 했다.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지닌 드골도 마찬가지다. 이들 대부분은 어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박근혜도 사정이 비슷하다. 반면 안철수는 아직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있다.

레이건은 아버지에게서 열심히 일하는 것과 큰 뜻을 품는 것의 가치에 대해 배웠고, 어머니에게서는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회고했다. 대처의 아버지는 식료품점 점원에서 시작해 영국 중소도시 그랜덤의 시장까지 한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는 딸에게 어린 시절부터 정치적인 경험을 쌓게 했다. 마을에 유명한 연설가가 오면 연설을 듣고 요점을 정리하게 했다. 이후 대처는 아버지가 시의회에 진출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할 때 참여했다. 존 F 케네디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일등이 되라’고 요구했다.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을 어기면 가차 없이 벌을 줄 정도로 엄격하고 완고했다.

오바마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가 ‘흑인과 백인 구분 없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다. 오바마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나눔의 정신과 배려를 가르쳤다. 구걸하러 온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아낌없이 나누어줬다. 또 해외에 살 때도 학교에 가기 전 반드시 세 시간씩 영어를 가르치는 등 미국식 교육을 시켰다. 어린 오바마에게 마틴 루서 킹을 롤 모델로 보여주며 흑인의 장점과 우수성도 가르쳤다.

박근혜도 어머니로부터 ‘근검절약하고 자랑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으며 컸다. 어머니 육영수는 영부인이라는 자만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했고 자식에게도 모든 것을 자제하라고 일렀다. 항상 수첩에 주요 사안을 메모하고 다녀 훗날 ‘수첩공주’라는 별명까지 얻은 박근혜의 습관도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박근혜는 이 별명을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여성정치인’이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박근혜는 아버지를 잃은 충격 속에서도 냉정하게 남과 북의 대치상황을 걱정할 정도로 강인한 면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치게 꼼꼼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것은 틀을 깨고 새로움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승만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양녕대군의 16대손이라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다. 어머니는 이승만이 6세 때 천자문을 떼자 가난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동네 잔치를 열었다. 이런 교육은 그가 엘리트 의식과 왕손 의식을 갖는 바탕이 됐다. 김영삼은 여장부로 소문난 어머니 덕분에 자부심과 우월감이 대단했다. 이렇게 리더에게 우월감을 심어주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강직함을 심어주는 부모도 있다. 이명박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어머니를 꼽는다. 그는 사춘기 때 뻥튀기 장사를 하는 게 부끄러워 밀짚모자를 썼다가 어머니에게 “네 힘으로 일해 돈 버는 것은 떳떳한 것이다. 도둑질한 것도 아닌데 왜 부끄러워하느냐”며 호되게 혼이 났다.

리더의 학창 시절

대부분의 리더는 학교생활이 그리 원만하지 않았다. 처칠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공부도 신통치 않았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라틴어와 희랍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루스벨트는 학업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성적에 연연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낙제생이었고, 원하던 미술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 마오쩌둥도 열등생이었다. 스탈린은 어머니가 원한 대로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그곳에 마르크스 사상을 퍼뜨리다 퇴학당했다. 무솔리니는 학교 성적은 좋았지만 두 차례나 동급생을 칼로 공격했을 정도로 난폭했다. 박정희도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구사범 4학년 때 성적이 73명 중 꼴찌다. 결석도 자주 했다. 김영삼은 통영중학교 2학년 때 한국인을 멸시하고 아이들이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를 싸오면 빼앗아 내던졌던 일본인 교장을 골탕 먹인 일이 있다. 일본인 반장을 때리고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

조지 W 부시는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를 ‘어둡고 습기 찬 듯 축축한 분위기’라고 묘사했다. 그는 여동생의 죽음으로 힘들어했고, 난독증이 있었으며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처도 학교에서 인기가 없었다.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한 친구가 적었다. 동급생들에게 ‘야심가’라는 말을 들으면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안철수는 ‘몸치’여서 학창시절 축구를 할 때마다 놀림감이 되곤 했다. 반면 드골과 레닌은 좀 예외여서, 학업을 계속했다면 학자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모범생이었다. 레닌은 감옥에서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을 정도로 탐구욕이 강했다.

리더들은 젊을 때 해외 경험을 많이 한 편이다. 간디는 유럽과 남아프리카에서 20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다. 처칠은 세계를 여행했다. 20대 때 종군기자로 쿠바, 인도, 수단, 남아프리카 등의 전장을 누볐다. 장제스는 일본과 소련을 여행했다. 레닌도 여행을 많이 한 편인데 가까운 유럽으로 망명한 적도 있다. 루스벨트도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즐겼다. 존 F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아버지의 지시로 두 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며 각국의 전쟁 준비 실태를 살펴봤다. 이때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터키, 예루살렘, 레바논, 시리아, 그리스 등을 두루 돌아다녔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와 하와이에서 산 경험이 있으며, 유럽과 케냐를 여행하기도 했다. 아웅산 수치는 15세 때부터 인도와 영국 등에서 생활했다.

반면 여행을 거의 하지 않은 리더도 있다. 스탈린은 이란 테헤란이나 오스트리아 빈 등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나라를 떠난 것을 제외하면 거의 국내에만 있었다. 마오쩌둥도 해외여행을 한 적이 없다. 히틀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정도를 빼고는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프랑스 파리를 처음 방문했을 정도다. 세상이 넓고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토록 자기집착적인 정치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산전수전 공중전

젊은 날의 해외여행은 자국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낯선 문화와 이념에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된다. 남은 나와 어떻게 다른지, 이를 조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있기 때문에 젊을 때의 해외 경험은 중요하다. 이번 대선 후보 중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은 손학규, 박근혜, 정몽준, 안철수 정도다.

리더에게는 굴곡진 삶의 경험도 큰 자양분이 된다. 존 F 케네디는 해군에 입대했을 때 작전을 수행하다 일본 구축함에 받힌 적이 있다. 바다를 표류하고 무인도에서 6일을 버틴 끝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아웅산 수치는 두 살 때 아버지 아웅산 장군을 여의었고, 15세 때인 1960년 인도 주재 버마대사로 임명된 어머니를 따라 인도 델리로 망명을 떠났다. 중풍으로 쓰러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1988년 미얀마에 귀국한 뒤엔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가택 연금을 당했다. 문화혁명 초기 대학에 다니던 후진타오도 ‘자산계급 반동노선’을 걸었다고 비판받고 두 달 동안 ‘노동개조’를 당하면서, 땅을 쓸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육체노동을 한 적이 있다.

리더들은 이처럼 산전수전 다 겪은 경우가 흔하다. 처칠은 젊은 시절 공직도 없고 의원직도 없고 당도 없고 심지어 맹장도 없다고 할 정도로 한직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이후 정치 언론 등 각계에서 경력을 쌓았고, 1940년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한 후 영국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로 부상했다. 드골의 경력도 처칠과 비슷한 면이 많다. 드골은 타고난 군인이자 정치가이고 저술가였다. 눌변인 처칠이 노벨문학상을 탈 정도의 문장력을 가진 것과 유사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베르 전투에 참가한 드골은 세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 독일 포로가 된 뒤 다섯 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혹독한 고문과 린치를 견딘 뒤 1920년 귀국해 훈장을 받은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 런던에서 방송을 하며 프랑스 국민에게 항전을 촉구했다. 또 북아프리카에서 자유프랑스군을 이끌기도 했다. 1958년 알제리 전쟁 때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은 드골은 이후 10년 동안 프랑스를 통치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 활동에 초기부터 관여했다. 1919년 그가 제시한 비전은 “세계는 우리의 것이고 국가는 우리의 것이고 사회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말할 것인가?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누가 행동할 것인가?”였다. 전략가적인 기질이 넘치는 그는 한때 국민당과 손을 잡아 농민을 규합한 뒤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중국 전역을 장악했다. 그 후 27년 동안 독재자로 집권하며 의도적으로 혼란을 일으키고, 그때 벌어지는 변화를 기회로 삼아 감시와 억압과 통제를 강화해나갔다.

어린 시절 변호사와 학자가 되기를 꿈꿨던 레닌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형이 사형당한 이후 볼셰비키 운동의 리더가 된다. 러시아 내부의 무장 봉기와 국제적인 혁명을 일으키는 데 진력하면서, 동시에 정치 리더로서 엘리트 정당을 창당하는 계획도 세운다. 한때 서유럽으로 망명해 유럽 대륙에 공산당 세력을 키우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박정희는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군내 좌익 소탕 작업이 벌어졌을 때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1949년 강제 예편도 당했다. 1980년 내란 음모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대중의 옥중편지도 그의 굴곡진 삶을 널리 알린 역사의 기록이다.

가난의 힘

이처럼 큰 인물은 역경 속에서 완성된다. 링컨의 아버지는 빈농이었고 어머니는 미혼모의 딸이었으며 둘 다 문맹이었다. 링컨 역시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는 링컨이 아홉 살 때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아끼던 여동생도 일찍 잃었으며 정신이상자였던 아내와 두 아들 역시 일찍 죽었다. 독일이 동·서독으로 대립하던 시절, ‘동방정책’을 통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과 친선을 다진 독일 정치인 빌리 브란트도 상점 점원으로 일하는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레이건은 아버지가 가톨릭 신도이자 아일랜드계라는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당한 경험이 있다. 대공황기에 청년기를 보낸 그는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대학 졸업 뒤 등록금으로 사용한 융자금을 갚기 위해 공원 수영장의 구조원으로 7년 동안 일했다. 빌 클린턴은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양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말리며 느낀 아픔을 고백하기도 했다. 후진타오는 아버지가 상점을 경영했으나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

푸틴 역시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그가 자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집단 주거지는 ‘콘크리트로 된 정글’ 같은 곳이었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파트에서 쥐를 쫓으며 놀았고 “나는 방과 후 항상 싸울 준비가 돼 있는 불량 소년이었다”고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회고하기도 했다.

박정희 역시 가난으로 고생했다. 그가 태어난 곳은 경북 구미시에서 20여 리나 떨어진 두메산골이다. 박정희의 집은 그 동네에서도 특히 가난한 편에 속했다. 어머니의 젖이 모자라 밥물에 곶감을 넣어 끓인 대용식을 먹고 자란 탓에 영양실조로 밤눈이 어두워졌다. 초등학교 때는 짚신을 신은 채 왕복 40리 길을 다녔고 학용품을 사기 위해 땔감나무를 해 팔기도 했다.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출신의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바마는 어린 시절 4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했다. 이때 가난과 질병을 경험했고, 백인·흑인·황인 중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 채 인종차별과 편견에 시달렸다. 미국에 돌아와서도 인종차별을 당했다. 그는 학업에 열중하지 않고 담배와 마약 등에 빠져 방황했다.

존 F 케네디는 어린 시절 앓지 않은 병이 없을 정도로 갖가지 병마에 시달렸다. 병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덕분에 독서량은 많았지만, 중·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는 잘 못했다. 대학에 들어갈 즈음에도 황달에 걸렸으며, ‘추간판 헤르니마’라는 병을 얻어 평생 고생한다.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은 어릴 때 야구장에서 구두닦이를 했다. 이때 손님이던 한 노신사에게 야구공이 곡선을 그리며 높이 나는 이유를 물었다. 그 신사는 공의 상처를 실로 꿰맨 자국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아난은 이때부터 사회의 상처를 꿰매겠다고 결심한다. 공에 난 상처는 흠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존재의 이유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만델라의 리더십

위대한 지도자 중에는 민주화 투쟁 등을 하다 옥중 생활을 한 인물도 많다. ‘별을 달아야’ 정치적인 인물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김구와 이승만·김대중이 대표적이고, 손학규·문재인·이재오 등도 그렇다. 외국 지도자 중에는 27년간 수감 생활을 한 넬슨 만델라가 있다.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 등을 지낸 자크 랑의 표현에 따르면, 만델라는 세계라는 연극 무대 위에 선 존재감 뚜렷한 배우다. 민권운동가요 종신수이며,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변호사이자, 1994년 남아공 최초로 흑인이 참여한 자유총선거에서 최초로 당선된 흑인 대통령이요,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가 아직도 국내외 무대에서 활동하며 모범을 보이는 것이 바로 그의 나력(裸力)이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긴 투옥생활 등 갖가지 시련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지도자가 됐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8년 7월 만델라에게서 배울 교훈 8가지를 보도한 적이 있다. (1) 용기란 단순히 두려움이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두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남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2) 앞에서 이끌되 스스로 바탕을 삼은 것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3) 뒤에서 밀어 다른 사람이 스스로 앞에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토론을 할 때는 너무 일찍 나서서 말하는 대신 서서히 여론을 이끌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각에 따라 그 일을 한다고 믿도록 하는 것이다. (4) 적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언어(백인의 언어)와 그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럭비)를 배운다. (5) 친구를 가까이 하고 라이벌은 더 가까이 한다. (6) 겉모습을 중요하게 여기고, 미소를 잃지 않는다. 만델라는 가난한 법학도로 누더기가 다 된 헌 옷 한 벌만 입고 다녔지만, 그의 환한 미소에 호감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또 그는 권투를 했는데, 리더의 정력은 상대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신뢰를 느끼게 한다. (7)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는다. (8) 적절한 때 끝내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

비슷한 경력의 소유자가 이승만이다. 그는 젊은 시절 사형 선고를 받고 5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러면서도 옥중에서 ‘독립정신’이라는 국민 계몽서를 집필했고, 영어 단어를 외웠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 그런 공부를 해서 무엇에 쓰려고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죽으면 못 쓰더라도 사는 동안은 할 건 다 해 보아야지. 혹 쓰일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하고 태연히 답했다. 4·19혁명 이후 부인과 하와이로 망명해 가난과 병고에 시달린 그의 재산은 낡은 성경책 한 권이 든 가방 하나였다.

앞으로 우리의 숙제인 민주화합 칸타타(독창, 합창, 여러 악기가 어우러지는 서정적 성악곡)를 누가 연주할 것인가? 필자는 간디, 처칠, 체 게바라, 덩샤오핑, 만델라, 대처, 푸틴, 메르켈, 수치, 힐러리 클린턴 등 세계 200여 명의 리더를 분석해 ‘리더를 리더답게 만드는 공통점’을 정리한 적이 있다. (1) 학창시절부터 리더로 활약한 경험, (2) 풍부한 독서, (3) 뚜렷한 비전과 이념, (4) 법학 공부, (5) 닮고 싶은 역할 모델 존재, (6) 종교, (7) 의사소통 능력, (8) 해외 체류 경험, (9) 융합적 시각 등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김용과 푸틴처럼 운동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굴의 정신은 역경에서 솟아난다.

민주화합 칸타타

한 조사에 따르면 역사적 인물 400명 가운데 75%가 결손 가정, 과잉 소유욕, 독재적 부모 등으로부터 고통을 받았다. 20세기의 저명한 소설가, 극작가, 예술가, 과학자 중 85%가 문제 가정에서 자랐다고 한다. 미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 고어 바이덜(Gore Vidal)은 “부모 중 한 사람을 증오한 힘이 이반 대제를 만들었다”며 “부모 모두로부터 받는 사랑은 인물을 망치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힘든 경험이 사람을 농익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흙, 비바람, 햇볕 등이 어우러지는 테루아(terroir·포도주가 만들어지는 자연 환경)형 리더의 등장을 기다리는 이유다.

현 시점에서 대통령은 누가 해야 하며, 우리 시대 리더들의 경력(career path)에는 어떤 정형이 있을까? 브라질의 룰라는 금속노조 위원장을 하다 대통령이 됐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기업인 출신이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다. 사적인 부문과 공공부문의 논리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한 나라를 맡으려면 적어도 공공부문에서 정진하는 것이 정답이다. 서양에서는 젊을 때부터 정당활동을 한다. 안철수는 아이젠하워를 벤치마킹한다고 한다. 아이젠하워는 정치와 거리가 멀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영웅이다. 그러나 그는 큰 조직을 관리하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판단을 잘 해낸 인물이다.

경력이 화려한 전문가일수록 자기중심적이라 리더 자격이 부족하다. 역경에서 고뇌하고 쓰라린 경험을 해야 남과 세상을 이해하는 융합적인 눈을 뜰 수 있다. 나보다 남, 남보다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다. 나보다 남을 위하는 공공성은 리더십의 기본 중 기본이다. ‘내가 아닌, 너도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해(Non mihi, non tibi, sed nobis)’라는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국정의 난제를 풀기 위해서는 여러 직업 경로를 거쳐 생각과 느낌이 응축되고 체화된 인물이 필요하다. 그런 리더만이 갈기갈기 찢긴 사회의 화합을 이끄는 민주 칸타타를 연주할 수 있다.   (끝)

김광웅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한국행정학회장,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역임
저서 : ‘국가의 미래’ ‘통의동 일기’ ‘서울대 리더십 강의’ ‘융합 학문, 어디로 가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