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2년 09월호 636호 (p394~403)


이미지 메이킹, 스피치 메이킹 지도자 인기 가른다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명지전문대 총장 kwkim0117@mjc.ac.kr


● 기억에 남는 건 정책보다 정치인의 이미지
● 윤보선의 더블 브레스트 재킷, 박정희의 선글라스
● 유머로 시작해 메시지로 마무리하는 스피치의 힘
● 이미지 완성하는 건 내면의 품위와 인격


리더는 숙명적으로 ‘나’를 알려야 한다. 대개는 정책으로 관심을 모은다. 그러나 정책 내용만 좋다고 표가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표현력이 남달라야 사람을 끈다. 표현력의 첫째는 이미지다. 인상이 좋아야 한다. 표현은 보통 언어나 비언어로 한다. 말로 자신을 잘 표현하고 소리나 몸짓 등 비언어로 상대의 마음을 파고들어야 한다.

대선 후보 TV 토론의 효시는 미국 케네디와 닉슨의 토론이다. 1960년대 이야기지만, 당시 케네디는 검은 옷, 스타일리시한 머리 모양, 캘리포니아에서 태닝한 섹시한 얼굴색 등으로 젊고 박력 있게 보였다. 나이까지 많았던 닉슨은 회색 양복에 특색 없는 음성 탓에 인기를 끌지 못했다. TV 토론 후 선거판이 뒤집힌 건 물론이다.




짙은 색 안경을 즐겨 쓰던 박정희 전 대통령. 색안경이 흔치 않던 시절 그는 이 차림으로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언어적인 의사소통은 내용을 언어로 전하고, 비(非)언어적 의사소통은 강세·어조·억양 등 준(準)언어적인 특성을 포함하며, 몸짓이나 표정으로 화자의 태도를 보이는 메타메시지(meta-message)를 전달한다. 비언어의 대표적인 것이 몸짓과 소리다. 몸짓과 소리는 교양을 나타내는 척도다. 연설을 듣는 사람 중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은 7%에 불과하지만,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38%이고, 나머지 55%는 몸짓 등 비언어를 기억한다고 한다.

정치인 넥타이 색에 담긴 뜻

몸짓에는 얼굴 표정, 손짓, 걸음걸이 등이 포함된다.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란 원을 그리며 말하는데, 이는 보통 OK 사인을 뜻하지만 동시에 정확히 사고하고 철저히 계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 유명 MC 오프라 윈프리의 깍지 낀 손은 강한 자신감을 나타낸다. 러시아 총리 푸틴은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듯 고정하고 다른 한 팔을 힘차게 저으며 걷는 특징이 있다. 연설하는 정치 지도자의 손짓을 보면 안정된 상태인지 흥분한 상태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연단(podium)에 똑바로 서서 연설하는 사람이 있고 무대 공간을 십분 활용해 움직이면서 연설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방식이 설득력을 더할 수 있는지는 내용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색깔이 이미지를 좌우하기도 한다. 늘 빨간색 넥타이를 매는 정치인 홍준표는 자극적이고, 용기와 애국심을 고취시키지만, 변화가 없어 따분한 인상을 준다. 국회의원 중에서 옷이나 구두가 제일 멋진 이는 이낙연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연초록색 넥타이를 매는 정치인이 늘어났는데, 신선미와 평화로움, 그리고 활기 있는 이미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파란색 넥타이를 즐겨 맨다. 차갑고 정의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오렌지색 넥타이는 건강해 보인다. 보라색은 잘만 매면 풍족하고 당당하며 정열적인 느낌을 주며 승리를 상징한다. 여성은 화려한 스카프로 눈길을 끌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는데,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거의 매지 않는다. 게다가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먼 색깔의 옷을 입고 상의 옷깃을 늘 세워 전투적인 분위기마저 풍긴다.

대통령은 권위를 상징하는 짙은 색 정장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의식(儀式)에 알맞은 색깔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가끔 밝은 색 옷을 입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더블 브레스트 정장을 입고 항상 두 손을 윗옷 주머니에 넣은 채 연설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짙은 색안경을 줄곧 써서 국민이 거리감을 느꼈다. 그때만 해도 거리에 색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보기관 사람 같은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노인이기도 했지만 연설 때 장음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연민의 정에 젖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머리를 약간 흔들며 걷는 모습이 안정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장관들에게 밝은 색 넥타이를 매게 했다. 국민에게 편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비치게 하려 한 듯싶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정장을 입을 때 줄무늬 있는 넥타이를 매는 게 원칙이다. 그리고 공식 예식에서는 모닝코트나 턱시도를 덧입고 보타이를 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이런 공식 예복을 없앴다. 엄격하고 장중한 의식에서는 의복부터 달라야 하는데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듯싶다. 김영삼 정부 이전까지는 장관이 임명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양복점 주인이었다. 턱시도부터 맞췄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런 면에서 아직도 다분히 영국식이다.

이미지는 대상을 명확하고 확고하게 만들며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 이때 추상보다는 구상이 좋다.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어렴풋한 평화의 땅’ 같은 표현을 기피해야 할 추상화 같은 시라고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표현인 ‘가랑잎 빛깔의 외투를 걸친 새벽’을 칭찬했다. 이미지가 명확하다. 소설가 박범신은 작품 ‘비즈니스’에서 ‘가을 햇빛을 받은 바다는 옥양목처럼 희었다’라고 했다. 최인호의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는 ‘커튼 사이로 밝은 햇볕이 칼로 벤 상처에서 나오는 선혈처럼 스며들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음악을 해방이라고 말한 작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프란츠에게 음악은 도취를 위해 창안된 디오니소스적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한 예술’이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의 이미지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단정적인 이미지(clean-cut image)를 본다. 장면 전 총리, 김영삼 전 대통령,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등은 건전하고 긍정적인 이미지(sound · positive image)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중적인 이미지(public image) 쪽에 속한다. 전직 대통령이나 대권주자 중에 부정적인 이미지(negative image)나 손상된 이미지(tarnished image)를 지닌 인물은 보기 드물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 대통령으로서 국부(國父)라는 인식 그대로 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겼다. 정확히 표현하면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라고 해야 옳다. 대통령 취임 때 74세였으니. 그리고 늘 백성을 ‘어여삐’ 여기고 걱정스러워하는 말투라 웃어른 같은 인상이 짙었다. 한복 차림이 잘 어울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조선의 정체성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듯도 했다. 그는 철학박사이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세상에 대한 이해가 남달랐다. 동시에 국제적인 인물로 손색이 없어 우리나라 다른 대통령과 품격 면에서 크게 차별화된다.

윤보선 전 대통령과 장면 전 총리는 러시아의 레닌처럼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학자가 됐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온화하고 고매하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복도 잘 어울렸다. 그 시대에 외국에서 공부했을 정도로 세계에 눈을 뜬 인물들이다. 다만 민주당이 구파와 신파로 갈려 극단적인 권력투쟁을 하다가 ‘9개월 정권’으로 끝난 것 때문에 권력욕을 다스리지 못한 인물이었다는 인상을 남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깡마른 얼굴에 체구까지 작아 덕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인상은 매우 강하다. 5·16 군사정변과 억압정치 때문에 호감 가는 인상은 아니다. 다만 ‘조국 근대화’를 앞당긴 공헌이 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이 평가받는 인물이 되긴 했다. 국정운영에 추호의 빈틈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현장을 중시해 문서나 말로 하는 보고 내용을 반드시 눈으로 확인한 점도 그런 이미지가 생기는 데 한몫을 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오랜 관료생활 때문에 규격품 같은 인상을 풍기지만 중후한 외교관의 위엄이 있다. 그러나 작은 일까지 시시콜콜 관여한다고 해서 ‘주사’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니 폭넓은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보긴 어렵다. 큰 키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외모임에도 소심하다는 평이 있어 신뢰를 얻는 데 불리했다. 그럼에도 모든 경험을 일일이 체계적으로 기록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오랜 군사독재에 시달린 국민이 군부통치를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 등장해 정통성에서 낙제 점수를 받았다. 더욱이 집권 초기의 5·18 민주화운동 대응 과정은 국민에게 ‘탄압’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퇴임 후에도 정치자금 문제로 복역해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다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문학을 좋아하는 성품 그대로 온화한 인상을 풍기는 면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넓은 이마와 맑은 안색이 귀공자처럼 훤한 인상을 주지만 눌변과 강한 경남 사투리에 발음까지 부정확해 희화화된 일이 많아 신뢰를 주지 못했다. 대화하는 중에도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책에서 일제 잔재를 없애고 금융실명제를 밀어붙이는 등 강단 있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랜 옥중생활에서 얻은 독서 경험으로 지적인 인상을 풍기고 세심했다. 그러면서도 민주화 투쟁을 벌여 강한 인상을 풍기기도 한다. IMF 외환위기를 비교적 빠른 시일에 극복하고 평등지향적인 정책으로 국민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한 것으로 기록된다. 정치 테러 때문에 다리를 절게 됐는데 불편한 거동이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깊이 생각해 말하는 듯하지만 어투가 듣기에 불편하고, 때로는 직설적이라 반감을 샀다. 머리를 건들거리면서 걷는 자세 때문에 말할 때도 불안해 보였다. 지배계급을 바꾸려는 정책을 내세워 보수 세력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또 시정에서나 쓸 거친 말을 서슴지 않아 존경의 대상에서 멀어질 때가 있었지만, 신념이 확고하다는 인상은 풍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적인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사업가의 인상을 버리지 못했다. 추진력 강한 인상을 풍기기는 하지만 4대강 사업처럼 추진하는 정책마다 심한 반발에 직면하고 실패를 거듭해 국민 정서와 거리가 먼 인물이 됐다.



웃기거나, 웃음거리 되거나

최근 대권주자로 불리는 후보 중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여성이기에 온화한 인상을 풍기지만 단호한 면모를 보인다. 대화에 인색해 소통이 어렵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반듯한 외모와 행동 때문에 선생님 같은 인상도 풍긴다. 좀 더 환히 웃고 유권자에게 더 다가가 국민을 보살피는 인상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건강해 보여 반감은 사지 않는 인상이다. 그러나 정책을 밀고 나갈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 미지수여서 신뢰감과는 거리가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 역시 경력이나 성품과는 달리 국민에게 다가가는 인상은 아니다. 경상도 억양의 눌변 역시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는다.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지적이면서 국제정치의 흐름을 아는, 행동지향적인 인상을 풍긴다.

정치인이 이미지를 좋게 하는 데는 유머가 필수다.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는 “21세기에는 유머가 진정한 파워”라고 했다. 유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리적인 거리를 줄이기 때문이다. 외국 리더들은 연설에 앞서 반드시 유머를 곁들인다.

유머를 잘 구사한 지도자로 링컨 전 미국대통령을 꼽는 사람이 많다. 그는 한 야당 의원이 “두 얼굴을 지닌 이중인격자”라고 하자 “내가 얼굴을 두 개 가지고 있다면 하필 왜 이 못생긴 얼굴을 갖고 나왔겠느냐”라고 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에 관한 유머도 많다. 한 기자가 그에게 “B1 폭격기에 예산을 너무 많이 쓴 거 아닙니까”라고 추궁하자 보좌관을 향해 “비타민(B1) 사는 데 돈을 그렇게 많이 쓰나? 그러면 안 돼”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저격범 존 힝클리의 총에 맞았을 때도 “내가 예전처럼 영화배우였으면 잘 피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유머를 구사했고, 이 한마디로 레이건의 지지율은 83%까지 올랐다. 케네디 전 대통령도 유머에 능했다. 그가 43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입후보했을 때 상대 닉슨이 ‘경험 없는 애송이’라며 깎아내리자 연설에서 “이번 주의 빅뉴스는 국제문제나 정치문제가 아니라 야구왕 테드 윌리엄스가 나이 때문에 은퇴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이것은 무슨 일이든 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라는 조크를 던져 전세를 뒤집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적이고 신중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을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내가 망쳤다(I screwed up)’고 할 정도다. 그러나 이런 오바마조차 유머는 빼놓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면 10월을 ‘버락토버(BARACK-TOBER·10월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옥토버와 자신의 이름 버락을 합친 말)’로 부르겠다”고 하기도 하고, 자신의 미들네임인 ‘후세인’을 문제 삼는 이들에게 “제 이름을 지어주신 분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할 것을 생각하지 못했나 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은 유머나 조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CBS의 앵커 데이비드 레터맨은 “빌 클린턴은 항상 조깅을 하는데도 살은 왜 안 빠지며, 매일 햄버거를 먹는데도 왜 정부지출이 줄어들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유머로 현실을 꼬집었다. 클린턴은 1997년 한 해 동안 3대 토크쇼에서 810번이나 조크 대상이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ready-made joke’라고 불렸다.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컵라면처럼 ‘준비된 웃음거리’였다는 뜻이다. 초등학교를 방문해 책을 거꾸로 들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처럼 부시는 유머러스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 정치인이 유머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손해만 보는 건 아니다. 리더는 어떤 형태로라도 대중의 기억에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머’라는 단어는 ‘물속에서처럼 유동적이다’를 뜻하는 라틴어 ‘umere’에서 유래했다. 이는 유머가 상황을 유연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리더라면 유머에 대해서도 유연한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 긍정적인 유머로 살을 덧붙여야지, 부정적인 유머로 제 살을 깎아먹어서는 안 된다.

“말 잘하면 대통령 된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고등학교 때 웅변반원이었다. 당시에는 큰 목소리로 사자후를 토해내야 멋진 연설로 평가받았다. 연단의 책상을 쾅 내리치며 청중에게 호소하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는 정치인이 된 뒤 군중이 많이 모인 대중연설에서 이런 습관을 보였다. 그러나 큰 목소리로 언성을 높여야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들이 거머리처럼 국민의 정강이에 달라붙어 있다”라고 했던 1957년 신익희 선생의 한강 백사장 연설은 매우 차분하지만 폐부를 찌른다.

케네디는 강조하기 위해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서 발음하는 습관이 있었다. 빌 클린턴은 연설문 작성자가 써준 단어나 문장보다 훨씬 적절하고 세련된 문장을 구사할 정도로 연설의 달인이었다. “미국에 정의로 치료할 수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라는 그의 문장은 강렬한 느낌을 준다. 루스벨트의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라는 문장도 듣는 이를 고무시킨다. 조지 W 부시도 취임사에서 “어떤 사람은 리더십을 연극이나 트럼펫 소리처럼 보이고 들리는 무언가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끔은 그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역사를 수많은 페이지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매일 희망적이고 의미 있는 행동으로 책을 한 페이지씩 채워나갈 것입니다”라고 했다.

케네디의 연설은 또 어떤가.

“여러분은 이 역사적 과업에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장구한 세계사에서 불과 몇 세대만이 매우 위험한 시기에 직면해 자유를 수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본인은 이 책임에서 물러서지 않겠으며 오히려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세대와 이 자리를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 과업에 기울일 정력과 신념, 그리고 공헌이 우리나라와 이에 봉사하는 모든 사람의 앞날을 밝혀줄 것이며, 이 불길이 전 세계를 비춰줄 수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러기에 나라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묻기 바랍니다.”

그가 1961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이 연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명연설로 인구에 회자된다.

연설이 중요한 만큼 연설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다. 미국 영화협회장을 지낸 잭 발렌티는 ‘말 잘하면 대통령도 될 수 있다’라는 책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평가했다. 우아하고 음악적인 목소리의 소유자 루스벨트는 탁월한 단어 조합으로 강한 설득력을 발휘해 ‘A+’를 받았다. 도회적인 이미지의 케네디, 품위 있는 어조와 제스처를 구사한 레이건, 훤칠한 외모로 청중의 긴장을 푸는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은 ‘A’다. 연설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지지 않고 단조로운 억양의 아이젠하워는 ‘B’, 차돌처럼 차고 딱딱한 비음의 트루먼은 ‘C-’에 그쳤다. 답답한 훈계와 어색한 풍자로 ‘잘난 척한다’는 평가를 들은 닉슨은 ‘D’밖에 받지 못했다.

명연설의 법칙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는 연설로 A를 받을 인물이 드물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연설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 대개 정상들은 외국에 나가면 모국어로 연설하는데 그는 영어로 연설했다. 이때 연설 원고에 물이 묻는 바람에 두 장이 한꺼번에 넘어갔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원고 없이 원문 그대로 연설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헤드셋을 끼고 원고를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스피치 메이킹’이라는 말이 있다. 연설 잘하기라는 뜻이다. 연설을 잘하려면 첫째, 말에 신심(信心)을 담아야 하고 둘째, 간결한 단문을 써야 하며 셋째, 복식호흡을 해서 목소리에 공명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두성(두골을 울려서 내는 소리)을 내는 것이 좋다. 목소리에 감정을 담아야 함은 물론이다. 소리는 호흡이 좌우한다. 미국 하버드대의 실험에 따르면 청중의 80% 이상이 말하는 사람의 음성만으로 그의 신체적·성격적 특성을 구별한다. 이어서 넷째 조건은 제스처를 적절히 사용하고 말의 장단을 잘 맞춰야 한다는 것. 다섯째는 스피치를 마무리할 때 의미 있는 내용을 강한 어조로 하되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리더의 문장력

“세상이 움직이는 순간, 그곳에 연설이 있다”는 말처럼 연설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또 연설 속에 캐치프레이즈를 담아 그것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시공을 뛰어넘어 깊은 울림을 주는 위대한 연설에는 강력한 표어, 캐치프레이즈가 담겨 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안녕, 나의 동지들이여, 그대들 모두를 내 품에 꼭 껴안을 수 있다면” “어디에든 억압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높이 날 수 없습니다” 같은 표현은 한 인물이 가진 사상의 정수이며, 시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유권자의 마음에 크게 각인되고 또 이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말 한마디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자유당 때 야당이 내놓았던 구호다. ‘북진통일’‘일전을 불사한다’는 이승만이 즐겨 쓴 수사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저녁이 있는 삶’,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는 ‘내게 힘이 되는 나라, 평등국가’ 등을 내세우고 있다. 좀 더 호소력을 높였으면 한다.

연설의 바탕이 되는 연설문은 글이다. 결국 좋은 연설의 근간은 문장력이다. 좋은 문장에서 좋은 연설이 나오고, 오래 기억되는 연설 역시 좋은 문장을 바탕으로 한다. 연설문을 전담하는 참모가 대신 써주는 경우도 많지만 리더 자신도 문장력이 빼어나야 한다. 클린턴 대통령 시절 공보비서를 했던 스테파노 플러스는 “우리가 써준 원고를 대통령이 여러 번 고쳐 정작 연설 때는 우리가 상상도 못한 멋진 단어가 나온다”고 했다. 글도 잘 쓰고 연설도 잘하던 리더 중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글솜씨가 뛰어났던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대조법을 써 개개의 문장을 강조하는 효과를 냈다. “난관극복의 길은 난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의지 속에 있는 것입니다. 불굴의 의지와 용기로써 조국의 근대화를 향해 위대한 전진의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겠습니다”라는 문장에서 의지의 중요성을 반복해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나열과 대구를 사용해 완성도 있는 문장을 구사했다. “지난날 우리는 계층으로 찢기고, 지역으로 대립되고, 세대로 갈라지고, 이념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벽은 허물어야 합니다. 한은 풀어야만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그늘 속에 살아온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 먼저 우리 공동체 전체를 생각합시다.” 유사어를 짝을 맞춰 잘 배열했다. 뒤의 문장에서도 벽은 허물고, 한은 풀어야 한다면서 대구를 잘 사용했다.

‘로고스’보다는 ‘에토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8년 제142회 임시국회 대표연설에서 감성에 호소하는 문장을 사용했다. “저의 정치참여 목적은 오직 국민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사는 데 있습니다. 무엇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어떻게 값있게 사느냐가 목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수많은 죽음의 고비에서도 국민을 배신할 수 없었습니다. … 사랑하는 우리 국민이 자유가 만발하고 정의가 넘쳐흐르며, 통일에의 희망이 솟아오르는 그러한 민주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저는 저의 모든 것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는 것처럼 친화력 있는 문장을 구사했다. 문제는 이런 유려한 레토릭이 현재화하지 않고 허상으로 끝난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어떤 약속을 하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나라의 문제는 복잡하게 꼬이고 더 늘어난다.

설득의 방법에 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고 눈빛만으로 상대와 소통할 수 있다. 가벼운 제스처로도 신뢰를 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적인 설득 방법(logos), 감성적인 설득 방법(pathos), 인격적인 설득 방법(ethos) 가운데 인격적인 설득 방법을 강조했다.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눈빛, 정제된 몸짓 하나가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핵심은 역시 소통이다. 상대방이 알아듣고 공감할 때 이미지를 비롯한 모든 것이 빛난다. 이미지는 그 인물을 말해주고, 쉽게 이슈가 되며, 뻗어나가면 정당성으로까지 자리매김한다. 이렇게 이미지는 총체적이다. 그러나 이미지만으로는 인기를 유지할 수 없다. 내면과 일치하거나 원활한 소통이라는 내외의 조건이 맞아야 상승효과가 난다.

소통하기 위해 나를 타인에게 알리는 것은 아상(我相)이 아니라 진아(眞我)다. 화려하게 치장된 외면으로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된 진실을 먼저 전달하는 것이 순서다. 알아주기만 바라지 말고 ‘우리’ 안에 포함된 ‘나’를 함께 알아가고자 할 때 소통은 시작된다. 너도 나도 나서서 홍보로 장난치며 알아달라고 아우성치는 ‘이미지 메이킹’을 넘어 품위와 인격에 걸맞은 이미지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리더라야 진정 끌린다. 내 말만 하는 지식인보다 남의 말을 듣는 지혜인이 되어 내일을 내다보는 ‘끌리는 리더’가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기를 소망한다.  (끝)

김광웅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한국행정학회장,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역임
저서 : ‘국가의 미래’ ‘통의동 일기’ ‘서울대 리더십 강의’ ‘융합 학문, 어디로 가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