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2년 11월호 638호 (p248~257)

여성의 시대 공감과 포용의 리더십

김광웅│서울대 명예교수·명지전문대 총장 kwkim0117@mjc.ac.kr


● 올브라이트 등 美국무 여성 3인방 맹활약
● 영국病 고친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힘
● 가장 영향력 있는 유럽 지도자 메르켈 독일 총리
● “여성의 특성은 위대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등장으로 여성 리더십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여자가 뭘 하겠느냐”는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공직에 여성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도 꽤 됐다. 외무공무원, 행정공무원, 법조공무원 등을 뽑는 시험에서 여성 합격률이 50% 전후에 다다른 지도 근 10년이 돼간다. 여성이 공직이나 그 밖의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현상은 남녀평등 내지는 여성 상위시대를 표방하는 시대 흐름과 맞아떨어진다.

우리나라의 제1호 여성 장관은 임영신이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초대 상공부 장관에 임명됐다. 임 장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정당인 조선여자국민당 후보로 ‘경북 안동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제헌의회 유일의 여성 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제1공화국에는 그 외에도 김활란 공보처장(1950년 임명), 박현숙 무임소장관(無任所長官·1952년 임명) 등의 여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 우리 정계에서 단연 빛났던 여성은 박순천이다. 그는 1950년 ‘서울 종로갑’에서 민의원으로 당선된 뒤 1963년 민주당 총재 자리에 올라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됐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은 중요한 대외협상에 나설 때 상징적인 뜻을 담은 브로치를 단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미국 국기인 성조기 모양의 브로치를 단 모습.


197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 정부 고위직에는 여성이 매우 적었다. 최규하 대통령이 문교부 장관에 임명한 김옥길, 5공화국 시절 보사부 장관을 지낸 김정례 정도가 전부다. 여성 장관은 6공화국 때 여성문제를 전담하는 정무2장관직이 신설되면서 꾸준히 배출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여성 관련 제반 정책을 다루는 여성부가 신설돼 한명숙이 초대 장관으로 임명되고 환경부 장관을 역시 여성인 김명자가 맡는 등 여성의 정부 참여가 점점 늘어났다. 노무현 정부 첫 내각에는 여성 장관이 4명 있었다. 이후 한명숙이 최초의 여성 총리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여성 장관 후보들이 언론 검증이나 국회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낙마하는 사례가 더러 있었다.

지난 정부의 사례를 보면 여성은 주로 보건복지부와 여성부에서 장관으로 일했다. 하지만 북유럽 국가나 칠레의 경우처럼 국방장관 역할을 한다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여성의 세기, 여성 리더십

여성이 정부 고위직에만 진출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 CEO와 시민단체 대표가 늘고 있다. 이들은 남성 못지않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 21세기는 여성의 세기다.

그렇다면 여성 리더십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여성은 협력·포용력 그리고 통합력이 남성보다 낫다. 둘째, 성실하고 온화하고 부드럽다. 셋째, 감성지수와 호감지수가 높다. 넷째, 마음을 움직이는 화법에 능하다. 다섯째, 감각이 예민해 직감적인 동시에 합리적이기도 하다. 여섯째, 고독한 가운데 자성할 줄 안다. 이는 리더십의 필수 요소다.

여성은 복잡한 성숙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이제는 더 이상 철학자 헤겔이 말하던 ‘공동체의 영원한 아이러니’가 아닌, 공동체의 주역이다.

그렇다면 리더십의 필수 요소인 협상력은 어떨까. 필자는 최근 15년간 콜린 파월이 재임한 4년(2001~2005)을 제외하면 미국의 국무장관이 모두 여성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칠기 짝이 없는 국제정세, 특히 미국 대 중동 관계를 책임진 이들의 협상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2012년 9월호는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까지 여성 국무장관들이 ‘활발한 활동에도 지칠 줄 모르는 끈기’로 “이제는 남성들이 뚫을 수 없는 ‘유리 천장 위의 유리 천장’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2008년 취임한 클린턴 장관이 9월까지 방문한 나라는 110개국이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98개국, 라이스 장관은 85개국을 다녔다.

여성 국무장관의 또 다른 강점은 감성과 감각이다. 포린 폴리시는 “어떤 남성도 뱀 브로치를 착용해 사담 후세인의 기를 죽인 올브라이트의 ‘브로치 외교’를 흉내 낼 수 없고,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라이스의 ‘피아노 외교’를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성 최초로 미국 국무장관이 된 올브라이트는 세계 정상을 만날 때마다 윗옷에 어떤 브로치를 다느냐에 따라 화제가 됐다. 그는 “처음엔 아무 뜻 없이 장식을 했는데, 언제부턴가 몸에 지닌 장식이 내 개인 외교의 병기(arsenal)가 됐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하던 “내 입술을 읽어라(Read my lips)”라는 말을 본떠 동료들에게 “내 브로치를 읽어라(Read my pins)”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는 “독사 같다”는 비난을 받으면 뱀 모양의 브로치를 달아 맞서고, 북한이나 러시아를 방문할 때는 독수리와 성조기 브로치로 미국의 힘을 과시했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만날 때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얼룩말 장식을 달기도 했다.

올브라이트, 라이스, 클린턴

올브라이트 장관은 유엔대사 재직 중 르완다 대학살과 후세인 치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 심각한 국제 이슈를 다루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코소보 전쟁 등 발칸반도 분쟁을 해결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다. 북한 미사일 위기로 긴장이 고조되던 2000년에는 미국 국무장관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협상을 벌였다.

라이스 장관은 국제정치 중에서도 러시아를 전공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부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시작해 국무장관에까지 오른 라이스는 협상의 달인으로 통한다. 분쟁지역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성을 보인 그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W 부시의 외교 정책 고문을 맡으면서부터. 그는 협상뿐 아니라 조정에도 능하며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하다.

9·11 테러 당시 라이스 장관은 침착함과 의연함, 그리고 논리적 설득력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테러 사건과 관련한 청문회에서 테러 공격 대비 상태 등에 대한 비난과 의혹이 폭풍처럼 쏟아졌지만, 그는 냉철한 답변으로 국민이 미국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을 충분히 신뢰하도록 상황을 반전시켰다. 심지어 청문회가 끝난 뒤 침착함과 용기, 그리고 확고한 태도에 대해 갈채를 받을 정도였다.

라이스는 임기 내내 분쟁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학자들이 보통 이론에는 밝아도 현장 감각이 둔하기 마련인데, 라이스는 여성이면서도 현장부터 달려가는 면모를 보였다. 그가 해야 했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전임 국무장관 시절, 이라크가 대량살상 화학물질을 가졌다는 잘못된 정보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것을 만회하는 일이었다. 또 이란·북한·리비아 등 다른 국가로 전장이 넓어지지 않도록 하는 데도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전쟁 내지는 전쟁에 버금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길의 한가운데 여성이 서 있다는 사실은, 여성도 어떤 임무가 주어지든 해낼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갖고 있다는 걸 입증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미국의 국무장관인 클린턴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미국 정치의 중심에 선 지 오래다. 뉴욕 주 상원의원을 잠시 지냈으며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놓고 오바마와 각축을 벌인 적이 있다. 그는 현재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세계 한복판에서 미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분쟁지역으로 달려가는 태도는 앞에 언급한 다른 여성 국무장관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더 타임스’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포브스’는 2위에 지명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이 “기존 국무장관이 해왔던 틀에 박힌 외교를 깨고 정해진 대본을 집어던지면서 외교의 정의를 다시 정립했다”고도 평가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우리나라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이공계를 전공하고 우파의 이념을 따르는 보수주의적 여성리더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박근혜는 자연과학을 중시하면서 미래 정치의 화두는 선진화, 그중에서도 경제 선진화이며 이를 위해서는 과학을 공부한 사람이 정치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대처리즘의 시작

대처는 보수당 당수를 거쳐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인물이다. 획기적인 정책 추진과 독단적인 정부 운영으로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웠다. 옥스퍼드대의 서머빌 칼리지를 졸업하고 1953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하원의원, 연금·국민보험부 정무차관, 교육·과학장관 등을 거쳐 1979년 총리가 됐다. 그 무렵, 영국은 심각한 ‘영국병’을 앓고 있었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바닥을 맴도는 경제성장률 등도 문제였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파업 열병’이었다. 1979년엔 특히 ‘불만의 겨울’이라고 불리는, 사상 유례없는 파업이 일어났다. 운수 노동자, 병원 근로자, 미화원 등 공공부문 근로자들의 장기파업으로 시민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대처는 영국병(病)의 원인을 게으른 경영을 하면서 정부에 의존하는 사용자와, 반기업적이고 호전적인 형태로 국가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는 노동조합에서 찾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국영 기업의 민영화를 결심한다. 영국 기업에 ‘DIY(Do It Yourself) 정신’이 배도록 하기 위해 감세, 정부 지출 삭감, 저축 장려 등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여겼다. 이러한 경제개혁을 통해 영국을 대중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 나라로 만드는 것이 대처의 목적이었다.

대처는 과감한 민영화와 노조 와해, 교육·의료 등 공공분야에 대한 대폭적인 국고 지원 삭감 등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1975년 영국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된 그에게 소련의 브레즈네프 정권이 붙인 별명 ‘철의 여인’을 그는 ‘신념의 정치인’이라고 받아들였다.

대처는 자기 비판적이고 정확한 사람이며 논리가 정연하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다. 모든 보고서에 빠짐없이 평을 하고 세부 사항에 대해서도 놀랄 만한 기억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료를 매우 거칠게 다루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누가 이 보고서를 작성했나? 물어보나마나 뻔하지 뭘 기대하겠어?” 같은 무례한 언사를 다반사로 했다고 한다. 실수를 변명하려고 하는 각료에게 “이건 실수가 아니라 총체적인 무능”이라고 했을 정도로 공격적이기도 했다. 그는 팀 플레이어가 아니었고 좋은 선장도 아니었다.
 - ‘대처 스타일’(박지향 지음, 김영사, 2012) 참고.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메르켈

그러나 대처리즘은 1980년대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사회적 시장(social market)’이라는 이름으로, 빈자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본질적인 제한을 둔 채 시장의 힘을 받아들였다. 또 ‘능력개발 국가(enabling state)’라는 개념을 써서, 국가는 스스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일을 할 수 있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에서 열린 다문화가정 세족식에서 베트남 출신 판티리엔 씨의 발을 닦아주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희생과 배려는 여성 리더의 긍정적인 면으로 꼽힌다.


메르켈 총리는 2000년 4월 독일 기민당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됐고, 2005년 10월 연립정부 구성에 성공하면서 독일 총리로 선출됐다. 라이프치히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때 동독 민주화운동단체인 ‘민주개혁’에 가입하면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오래지 않아 정부 부대변인으로 발탁됐고 독일 통일 후인 1991년 콜 총리에 의해 발탁돼 37세에 여성청소년부 장관을 맡았다.

메르켈은 이때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성평등법’과 ‘베를린 협약’을 관철시키며 화제를 모았다. 또 콜 총리가 비자금 스캔들에 휘말리자 당수직 사퇴와 정계 은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독립을 이뤘다. 독일 총리가 된 후에는 유럽연합순회의장직을 훌륭히 수행했고,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 외교정책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6년 12월, 미국의 유력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는 메르켈이었다. 이 순위는 2012년까지 6년간 이어지고 있다.

메르켈의 경제 정책의 키워드는 ‘우리 주식회사, 새로운 사회적 시장경제’다. 그는 근로자와 사용자 간의 관계를 조정하고, 사회보장제도의 재정적 기반을 갖추는 데 힘을 쏟았다. 또 50세 이상의 취업을 위한 ‘이니셔티브 50 plus’ 정책을 폈다.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 첫 총리, 독일 최초의 과학자 출신 총리인 메르켈은 정치 감각과 수완이 뛰어나고, 배포도 커서 ‘독일의 마거릿 대처’로 불린다. 그는 1993년 말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더 단단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자신의 상태를 ‘상시적인 비상사태’로 표현하기도 했다. 동시에 여성의 자유로운 의지가 자신의 사고의 중요한 바탕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는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메르켈 총리가 추구하는 경제정책이나 외교정책의 노선이 내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하고, 원칙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꼭 닮았다. 둘 다 보수정당의 당수라는 점, 그리고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박근혜는 원칙주의자이지만 현실을 무시하지 않고,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현명하게 가릴 줄 안다는 점에서 대처도 닮았다.

서강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던 박근혜는 1974년 어머니 육영수의 저격 소식을 듣고 귀국했고 스물둘의 나이에 ‘퍼스트 레이디’가 됐다. 그러나 스물일곱 살 때 아버지 박정희마저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지자 18년 동안 고난의 세월을 보내며 내공을 쌓는다.

박근혜의 자신, 공감, 실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며 가장 강조한 건 ‘경제성장’이다. 한국 경제를 ‘엔진이 고장 난 자동차’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가 존경하는 정치인은 대처다. 국가의 역할과 기능이 확대될 것이라 말했던 대처처럼 박근혜는 신국가론(新國家論)을 주장한다. 신국가론은 모든 산업, 모든 기업, 모든 국민의 1등화를 이룩해 공동체를 성공시키는 것이다. 강한 국가에 맞는 조직은 국가마다 다르고, 강한 국가에는 그에 맞는 정치체제가 있다는 말로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를 벤치마킹하고, 우리나라에 맞는 신국가론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는 원칙과 신념도 중시한다. 박정희 사망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한 말이 “전방은요?”였고, 본인이 선거유세 도중 커터칼로 피습당했을 때도 첫 당무 보고를 받으면서 당시 격전지였던 “대전은요?”라고 물었다. 국민과의 약속은 꼭 지킨다는 신념 또한 대단하다. 세종시 수정안,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재배치 등의 사안에 대해 결코 신념을 바꾸지 않았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과 관련한 논쟁에서도 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마지막 합동연설에서 지지자들이 파란 손수건을 흔들자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나무라기도 했다. 박근혜의 이러한 태도 덕분에 줄 세우기 정치, 계보 정치가 사라졌고 ‘제왕적 대표’라는 말이 없어졌다. 그는 대표실에 특보 한 명 두지 않았고, 공천권·재정권을 이양했으며, 디지털위원장, 장애인위원장, 청년여성차세대위원장까지 전부 선출하도록 했다.

박근혜는 무엇보다 사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관계 지향적인 여성 리더십을 보여준다. 박근혜의 리더십은 ‘자신(自信)’ ‘공감(共感)’ ‘실천(實踐)’이다. - ‘박근혜 스타일’(진희정 지음, 아라크네, 2011) 참고

‘자신(自信)’은 ‘나를 믿는 마음’인 동시에 ‘늘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마음’인데, 박근혜는 최고의 자리에서 일반인으로 내려와 은둔 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을 다스려 바른 자세와 가식 없는 마음가짐도 갖고 있다. 또 누구를 대하든 진심을 다하기 때문에 대중의 공감을 얻는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때 그는 정부를 향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달린 문제인데도 협상 전에 정부가 국민과 충분히 교감하지 못했다”며 일침을 놓았다. 2005년 탄광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강원도에 갔을 때는 3300m 지하로 내려가 광원들이 일하는 환경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강준만은 ‘나의 정치학 사전, 그리고 강준만 생각’이라는 책에서 “박근혜는 말에 군더더기가 없다. 누구나 쉽게 알아들으므로 말 바꿈의 여지도 없다. 높낮이가 없어 대중을 휘어잡지 않는다. 다만 가는 방향이 뚜렷하다. 조용히 스며드는 물과 같다. 믿음은 거기서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박근혜의 리더십에 의심스러운 면도 있다. 환하게 웃으며 먼저 국민에게 다가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점도 문제다. 정치인은 상황에 따라 역할극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

조화와 배려의 리더십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느 책 제목처럼 여성은 말을 잘하는 대신 지도를 못 읽을까? 여성의 진면목은 전통적으로 희생하고, 조화를 이끌어내며, 배려를 잊지 않는 등 세상을 협력적인 분위기로 만드는 것이다. 여성이 가진 조화와 협력, 성실성, 포용력 등을 여성 리더십의 특성으로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남성 중심으로 형성돼온 리더십은 배려나 관계성, 소통과 공감, 협력적인 요소가 부족했다. 이런 이유로 여성 리더십 이론 권위자인 바버라 켈러먼과 데보라 로드는 저서 ‘여자로 태어나 위대한 리더로 사는 법’에서 여성적인 특징은 이중구속이 아니라 오히려 위대함이라고 했다. 온화하고 협력적이고 부드럽고 친절한 여성의 특성을 위대하다고 부각시킨 것이다.

‘최고의 여자에게 배워라’의 저자 로이스 P 프란켈은 “여성 리더는 끼와 본능이 있다”며 마거릿 대처, 힐러리 클린턴, 칼리 피오리나, 오프라 윈프리, 마더 테레사, 코레타 스콧 킹 등을 예로 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으로 명확한 비전과 전략에 맞는 전술을 구사하는 능력, 리스크를 감수하고자 하는 의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화법, 의욕을 북돋우고 동기를 부여하는 코칭술, 비전을 달성할 팀을 구축하는 능력, 높은 호감지수와 감성지수,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는 용기 등을 들었다.

여성 리더십은 전통적인 리더십 모델과 다르다. 카리스마적인 리더가 조직을 통제하고 권위를 행사하는 ‘가부장적 리더십’이나 구성원에게서 권위적인 존경과 의존을 이끌어내는 ‘부성 리더십’과 달리 경쟁보다는 협동을 중시하며, 위계 조직 대신 팀 중심의 수평적인 구조를 선호한다.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결과물을 중시하며, 직감과 합리성에 따라 문제를 해결한다. 또 직급 간 통제를 최소화하고, 조직 구성원 사이의 감정 이입과 협동을 통해 높은 수준의 수행 결과를 추구한다. 그래서 여성 리더십을 ‘분담 리더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명이 아닌 구성원 모두를 리더로 보는 것이다. 이때 구성원들은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조직의 목적을 달성해나간다. 이런 측면은 곧 21세기 리더십을 말하는 ‘공유하는 리더십(shared leadership)’이라는 개념과 통한다.

공감력의 힘

‘베타 리더십’도 여성 리더십에 속한다. ‘크게 생각할수록 크게 이룬다’의 저자 데이비드 슈워츠는 전통적인 리더십을 ‘알파 리더십’이라고 칭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새로운 리더십에 ‘베타 리더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알파 리더십은 분석적, 합리적이며 양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위계적인 권력관계에 의존하는 반면 베타 리더십은 통합과 직관, 질적 사고, 적응적 지원 관계에 의존한다. 베타 리더십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상호적 리더십’은 여성 리더십을 설명하는 또 다른 용어다. 상호적인 리더는 구성원의 발전을 이끌어내면서 그들의 자기 가치를 높이고자 하며, 과제 수행만큼 구성원의 복지를 중시한다.

여성 리더십의 새로운 이론으로는 리더십 개발 전문가인 샐리 헬게센의 ‘통합의 거미줄’ 이론이 있다. 그에 따르면 리더는 거미가 거미줄을 엮듯 중심에서부터 주변으로 새로운 줄을 연결하고 기존의 줄을 강화시킨다. 이때 리더는 통합의 거미줄을 짜는 건축가에 비유할 수 있다. 리더의 수단은 강제하는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에게 지속적인 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헬게센은 여성은 사람들을 거미줄과 같이 통합해내는 관계 기술을 갖고 있다고 했다.

또한 여성은 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심리학 용어 ‘카멜레온 효과’와 통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는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 앞에서 자신을 모두 드러내는 심리적 특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을 ‘카멜레온 인간’이라고 부른다.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여러 가지로 바꾼다는 것이지, 일관성이 없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주위 환경에 맞게 적절히 대응하는 것, 무엇보다 그 변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능력은 여성이 훨씬 더 강하다.

여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분명하다. 여성이 권력의 중심에 서려면 무엇보다도 이원성(二元性)부터 넘어섰으면 한다. 여성은 ‘영원히 남성의 어렴풋한 그림자’라는 프로이트의 말을 넘어 공동체의 주역이 되도록 자신을 한없이 갈고닦고 의심해야 한다. 그러면서 남성이 하지 못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끝)


김광웅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미국 하와이대 대학원 졸업(정치학 박사)
한국행정학회장,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저서 : ‘국가의 미래’ ‘통의동 일기’ ‘서울대 리더십 강의’ ‘융합 학문, 어디로 가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