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民格의 시대에 걸맞게 스스로 인간됨과 레퍼런스 그룹의 반듯함이 우선돼야”

역사상 부침했던 정치지도자들이 정상에 오르기까지 어떤 정형화된 경로가 있을까? 시대에 따라 나라마다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유형은 있다. 이를테면 젊은 시절부터 정당 활동을 하거나 적어도 선거캠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해 보았다든가, 대학 때부터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했다든가, 교회청년회 활동이나 보이(걸) 스카우트 같은 단체봉사활동을 한 것 같은 것이다.

시대에 따라 독립투쟁을 한 인물이 있고 전장에서 투혼을 불사른 경우도 있다. 정치와 전혀 관련 없는 분야에 종사하다가 혜성같이 등장하기도 한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방장관과 총리를 겸임하고 또 대통령까지 된 드골 장군과 2차 대전의 영웅이었다가 미국 대통령이 된 아이젠하워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떤 조사를 보면 현세의 인물들 가운데 젊은 시절과 관련해 몇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학창시절부터 리더로 활약한 경험, 풍부한 독서, 법학 공부, 닮고 싶은 롤 모델 존재, 돈독한 신앙심, 나름대로의 의사소통 방식 터득, 어릴 때 해외체류 경험 등이 그것이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인물 중에는 간디, 처칠, 체 게바라, 덩샤오핑, 만델라, 대처, 푸틴, 메르켈, 수치, 클린턴(힐러리) 등이 있다.

또 다른 통계는 리더들이 어릴 적 의 힘든 경험을 부각시킨다. 400명의 역사적 인물 중 75%가 결손가정, 과잉 소유욕, 독재적 부모 등으로부터 고통받았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20세기 저명한 소설가, 극작가, 예술가, 과학자들 중 85%가 문제가정에서 자랐다.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이 불행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바이달은 부모 중 한 사람을 증오한 힘이 이반 대제를 만들었다고 했다. 부모 모두로부터 받는 사랑은 “인물을 망치는 것이 분명하다”고도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면 머리가 좋은 것은 물론 학교에서 정상적 교육을 받고 여러 분야, 특히 공공부문에서 일한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다. 군인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서양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공공부문에서 일한 것으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해군사관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하고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다. 금속공으로 여러 해 일하면서 노조활동에 참여해 지도력을 발휘한다. 퇴임 때 87%의 인기를 누릴 정도로 대통령으로서 성공적 임무를 수행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고등학교 학력이지만 시대를 바로 읽고 내일을 보는 바른 비전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학교를 제대로 다녔거나 아니거나,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러나 고생하고 안 한 것의 차이는 세상과 남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직결된다. 나밖에 모르는 인간과 아닌 인간의 차이는 매우 크다. 리더는 쉬운 일이 아닌 어려운 일을 해 내고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아닌가로 판별된다.

대선이 다가온다. 후보가 될 인물 가운데에는 좋은 가정에서 자란 인물이 있고, 그러면서도 심적 고통을 이겨야 했던 슬픔을 겪은 인물도 있다. 민권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 있고 공직에서 오랜 경험을 한 인물도 있다. 학력이 반듯해 세계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가릴 줄 아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오는 대선부터는 “누구도 했으니까 그도 된다”는 식의 인물평이나 지지도로 가리는 일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제부턴 국격(國格)과 민격(民格)을 높이는 시대로 접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요소는 어떤 역경을 겪었어도, 또 반대로 어떤 부를 누렸어도 스스로 인간됨과 주변 인물들인 레퍼런스 그룹의 반듯함이 우선이어야 하고, 동시에 기왕이면 공공부문에서 큰 활동을 했던 인물이 바람직하다. 인기나 인지도로 국정이 저절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선 후 정당의 뒷받침도 없고,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도 부족하고, 내일을 열 비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인물이 또 등장하면 국민만 또 고생하고 세월만 허송한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