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광웅] 무늬만 통합이면
  • 2012.04.0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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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라면 화려한 경력자나 전문가보다는 헌신과 봉사의 삶이 중요하다”

‘낯선 길에서 문득 돌아보니 희미해진 처음의 다짐들/내 곁에 머물던 많은 사람들 많은 바람들은 어디에/욕심이었을까 집착이었을까 허망해진 처음의 소망들/귓가에 울리던 목소리들 난 이 세상 어디에 서있나/…/하고픈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라고/진정한 힘은 용서하는 것 다시 만나 큰 하나 되는 것/진정한 힘은 아름다운 것 너와 내가 큰 하나 되는 것(후략)’

지난해 서울대 리더십 센터가 3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뮤지컬 ‘대통령이 사라졌다’의 마지막 합창곡 ‘아름다운 힘’의 가사다. 학생 때 나라를 일으키자고 다짐했던 이들이 후일 대통령과 부통령이 되고 나서 권력을 잡으며 사랑과 뒤엉켜 갈등을 빚고, 비방과 음모가 난무하다 결국 부통령이 학생 때 잘못을 고백하며 서로 용서하고 큰 하나가 된다는 줄거리로 ‘리더십은 봉사이고 권력은 아름답다’가 주제다.

권력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권력이 추하면 추했지, 권력이 남용되면 되었지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데 권력을 쓰겠다고 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치판에서는 특히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며 권력을 쟁취하려고 든다. 용서하고 양보하여 공생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결에 대결을 거듭해 갈아엎는 생각만 한다. 국민 경선의 이름으로 여론조사 조작하기를 떡 먹듯 하면서도 나는 민주주의 신봉자이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겠다고 입으로만 떠든다.

이렇게 하면 하나가 될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레토릭이 통합이다. 통합은 말은 쉽고 그럴듯하다.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형상이다.

그러나 통합이 그렇게 쉽게 된다면 이 세상은 편하고 온화하고 여유로울 것이다. 노예를 해방한 링컨이나 이교도를 인정한 간디가 통합의 상징으로 꼽히지만 통합의 역사상 표본은 프랑스의 앙리 4세다. 1598년 낭트 칙령을 내려 가톨릭을 국교로 선포하나 신교도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보장하고 공직에 임명해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런 용단의 배경은 신교와 구교의 화합의 상징으로 거행한, 신교의 수장 나바르의 앙리와 마르그리트 공주의 결혼식에서 왕실 실권자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교회의 종소리를 신호탄으로 신교도를 학살해 하루 희생자만 3000명에 이를 정도로 처참했던 역사다.

다음 주 실시될 총선에서 통합을 외쳐대는 정당들은 선거에서는 승리한다 해도 국회가 구성된 후 정책사안에서 사사건건 부딪힐 것이 뻔하다. 남북 이슈, 한·미 FTA, 재벌개혁, 무상급식 등에서 어디 하나 불협화음이 들리지 않을 부분이 없다. 수단만 앞세워서도 그러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세운 비례대표들의 면면이 한쪽은 현실 이슈를 대변하는 인물들이고, 다른 한쪽은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 세력이니 이 또한 통합의 길을 아득하게 만든다.

물론 의회의 구성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직업도 경력도 나이도 생각도 가치도 모두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19대 국회가 앞으로 4년간 난삽하기 이를 데 없는 정책 이슈들을 풀어가기 위해 여러 얼굴들이 어떤 자세로 어떤 논리로 어떻게 임할지 궁금해지면서 걱정만 쌓인다. 승리하든 패배하든 이들은 분명 자신만 선이고 상대방은 악이며 내 생각과 주장만 옳고 남은 그르다고 우겨 화합과 통합의 길을 멀게 할 것이 뻔하다.

이제 판을 바꾸기는 늦었다. 유권자가 아무리 현명한 선택을 한다 해도 이 판에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기 힘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투표를 포기할 것인가? 지역구 선거에서만이라도 정당만 따라가지 말고 관용과 포용, 그래서 이념을 초월해 상대를 존중하며 진정한 통합의 길목을 넓힐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럼 누굴? 나밖에 모르는 화려한 경력자나 전문가보다 헌신과 봉사로 일관해 나보다 남을, 남보다 우리 모두를 위해 진정한 하나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꾸밀 인물을 찾자.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