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에 승복하고 政敵 존중하는 아량 있어야 하나되는 민주국가 만들 수 있어”


잠룡들이 대선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이들 중 누가 나라를 맡을지 현재로는 알 길이 없다. 짚이는 인물들이 없지 않지만 국민이 누구를 선택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정치이념 따라 이미 당을 선택하고 누굴 찍겠다고 마음을 정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지만 무관심하거나 정치 혐오증에 걸린 무당파들은 찍긴 해야겠는데 판단이 잘 서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유권자층을 위해 ‘이러이러한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해 본다.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21세기 리더십은 ‘팀 리더십’ 또는 ‘파트너십’이다. 권력을 나누어야 한다는 뜻이다. 후보자 혼자서 잘나면 안 되고 팀이 건실해야 한다. 부족한 점을 서로 보완해 울력(雲力)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대개는 층이 생기고 소통도 안 되고 서로 견제하고 충성 경쟁하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실세들이 자리잡게 마련이다. 게다가 이들 중에는 심해에 득실거리는 상어 떼에 물려 부정에 연루돼 주군을 망치기도 한다. 유권자는 후보자 개인을 보고 표를 던지지만 일은 대통령이 참모와 함께한다. 대통령의 통치 능력 중에는 일과 권한을 참모들에게 얼마나 잘 위임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니까 후보자는 좀 부족해도 정직하고 시대를 읽을 줄 아는 참모가 많은 팀이 좋다.

대통령이 될 사람은 세상과 호흡해야 한다. 특히 바닥 민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김문수 경기지사처럼 택시를 몰아도 알 수 있겠지만 기왕 하려면 저우언라이(周恩來)처럼 하는 것이 좋다. 그는 노동자들이 오후가 되면 발이 퉁퉁 부어 가죽신보다는 헝겊신이 필요한 이유를 신발 가게에 가서 설명한다. 동네 이발소에 가서는 손님 틈에서 차례를 기다린다. 만원 버스에서도 자리 양보를 마다한다. 때 되면 재래시장 가서 아줌마 손 한번 잡는 제스처로 서민의 애환을 느껴 보려는 우리 식과 크게 다르다.

대통령이 정책에만 매달려도 안 된다. 정책은 돈이 있어야 하고 때를 맞추어야 한다. 빚을 잔뜩 지면서도 정책을 바로 세우지 못해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임대 주택, 사교육, 양극화, 재벌개혁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법과 제도와 정책은 문제를 여는 열쇠일 뿐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지 못한다. 정책이나 사업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는 이유는 전체를 조감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사(邪)가 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잠룡들 중에는 민주화 투쟁을 한 훌륭한 후보도 있다. 숭고한 시대정신의 발현인 것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보수 뺨칠 정도로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그건 김정남 전 청와대 수석같은 영웅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내 주장만 옳아서는 안 되고 오히려 나는 얼마나 옳은지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나라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

대통령 될 사람은 얼마나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느냐부터 자문해야 한다. 주어진 이익 다 포기하고 세속으로부터 초연하며 경쟁자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경쟁의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약속으로 그 과정에서 페어플레이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일 진다 해도 떳떳하고 이기는 것보다 더 훌륭할 수 있다.

미국에는 역대 대통령이 모이는 ‘대통령 클럽(The Presidents Club)’이 있다. 백악관 길 건너 라파예트스퀘어에 있다. 전직들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 유숙하기도 한다. 거기나 아니면 오벌 오피스 옆방에서 만나 현직이 전직으로부터 정책조언을 듣는다. 이들은 아무리 정적이었더라도 농담하며 서로 격려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정부 출범에 맞추어 발족한 이 클럽에서 존슨 대통령은 나이트가운을 걸쳤지만 잠옷 바람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이 나라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마음의 문을 열고 누구보다도 많은 경험을 한 전직들과 어울려 지혜를 짜낼 수 있어야 한다. 정적에게 관용을 베풀고 그들의 논리를 존중할 줄 아는 아량만이 이 나라를 하나되는 민주국가로 만들 수 있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