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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안정, 행정하듯 지시하면 정치 실패  

논객 10인이 MB에게 전하는 고언
호가호위하는 곁을 물리고 결자해지해야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kwkim@snu.ac.kr  

서울광장과 광화문 네거리가 연일 몸살을 앓는다. 시민의 분노가 정치고 경제고 모두 마비시킨다. 군부독재 때나 있을 법한 장면이 연일 이어진다. 국민들은 축제라는 이름으로 시위를 하지만 이것은 정부에 대한 명백한 저항이다. 정부의 설득능력이 바닥이 났으니 국민은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림픽,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등 국제운동경기에서 승리하면 기쁨은 더할 나위 없지만, 비록 지더라도 국민은 선수를 위로한다. 그러나 국가 간의 협상에서 진다는 것은 국민이 희생당한다는 뜻이다. 협상은 얻고 잃는 게임이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포지티브섬게임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번 한·미 간 소고기 협상만은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국가가 네거티브섬게임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이 없다. 답(목표)을 정해 놓고 협상의 너울을 썼기 때문이다. 사람을 정해 놓고 인사검증하듯, 줄 것을 이미 정해놓고 협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만 해도 국제협상에 능통한 율사들이 총동원돼 국익을 보호했다.

그런 능력이 정권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날아갔단 말인가? 선진국은 높은 소득뿐 아니라 지적 수준을 포함해 협상에서 힘이 있고 또 이를 발휘할 수 있는 국제 수준의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등도 필요하다. 국가 간의 이해 경쟁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재들을 갖춰야 한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뒤 하루도 쉬지 않고 정부의 경제정책이며 대외정책에 실망하는 국민이 늘어났다. 유가와 환율이 오를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미래를 모르는 정부를 우리가 선택한 죄는 있다. 정부 초기 대통령 지지도가 10%대에 불과하다면 분명 뭔가 잘못됐다. 개인과 팀 리더십이 실종된 거다.

권력은 흔히 집중되는 속성을 갖는다. 한곳에 모여야 적어도 겉으로는 잡음도 없고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원심력이라는 것도 있다. 흩어져 각각의 소임을 다하고 다시 합쳐 반성하고 또 나눠 분업을 할 때 힘은 더 세지고 효과도 배가된다. 정치고 경제고 행정이고 사람 중심일 때와 일 중심일 때가 확연히 다르다.

사람 중심이면 신분과 계급이 형성돼 국민과는물론 자기네끼리도 소통이 사라진다. 오직 명령과 눈치만 남는다. 청와대에 이미 이런 증상이 도졌다는 소리도 들린다.

여의도와 함께 가는 정치력 절실

21세기를 복잡계 과학의 시대라고 말한다. 결코 단순하지 않은 정치를, 행정하듯 지시하고 효과를 기다린다면 얻는 것은 속빈 강정뿐이다. 21세기 리더십을 파트너십이라고 말한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가는 것이다. 조화로운 팀이 평등하게 가는 것이다. 만일 팀 안에 계급이 형성돼 있다면 소통은 끝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그 팀은 청와대끼리만이 아니라 여의도와도 함께 가야 하는데 이 나라 민주정치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것은 정치가 정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귀찮다고 생각해서다.

정치가 정치를 하지 않고 사람 모아서 형식 일변도의 회의만 하는 행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만 하는 이유는 무언 중에 편한 것, 절대 권력을 갖고 싶어서 그렇다.

정치나 경제는 모든 분야와 함께 숨 쉴 때 불안을 접을 수 있다. 패자의 논리(Heresthetics)가 승자의 논리(Rhetoric)보다 때로 현명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원추가 거꾸로 서 있는 듯한 불안한 정국을 바로 세우는 길은 오직 문제를 꼬이게 한 대통령이 호가호위하는 곁을 물리고 결자해지하는 수밖에 없다. 새 색깔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63호(08.07.09일자) 창간29주년 기념 특대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