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이성 되찾을 지도자 뽑자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 제29호 | 20070930 입력  

나라가 어지럽다. 권력을 쥔 사람과 권력을 쥐겠다는 사람들 때문이다. 인격이나 이성이 뒤틀려 있는데도 공인이 되었거나 되겠다는 사람들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나라의 법과 제도가 내 것인 줄 착각하고 멋대로 행사한다. 권력 네트워크를 연고 따라 마음대로 작동시켜 국가질서를 무너뜨린다. 또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은 나만 훌륭하고 상대방은 아니라며 비방을 일삼는다. 만일 능력이나 인격으로 존중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은 어찌하란 말인가. 그런 권위로 내린 결정을 따르란 말인가.

요즘 나라가 어지러운 이유를 우리는 안다. 하나는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 권력이라 이름 하는 네트워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헝가리 태생 물리학자 바라바시가 말하는 네트워크는 허브와 노드(매듭)가 있는 연결망이다. 공공 네트워크의 본질은 권력이고 망을 따라 돈·사람·정보·기술 등 중요한 자원이 흐른다. 허브에는 자원이 많이 모이고 일반 노드에는 덜 모인다. 허브가 늘 말썽이다.

오케스트라에서 협연하는 첼리스트는 줄이 끊겨도 갈채를 받으며 다시 연주할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의 네트워크에서 줄이 끊어지면 사익을 챙기려는 군상들이 끼어들면서 돈이 새고 정보가 날아간다. 새버린 돈과 정보는 실력자와 주변 인물의 개인 창고에 쌓인다. 공직 기강과 시장 질서는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한다. 줄이 끊어지듯 공직윤리와 공적 권위가 추락하는 것은 권력자 개인의 도덕성과 이권을 챙기려는 군상들 때문이다. 거기에 공공성과 형평성을 가볍게 생각하는 부적절한 인적 네트워크가 가세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구조적으로 권력이 집중돼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매일 인사와 이권 청탁 등 정부 안팎으로부터 오는 압력에 시달리는 고위공직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동정적 입장이 있다. 구조적으로 공직자가 희생될 수 있어 비난만 할 것도 아니다. 그래서 공직자에게 주문하던 ‘높은 수준의 윤리 지키기’(high road approach)에서 ‘낮은 수준의 윤리 지키기’(low road approach)로 내려앉는 것이 추세다. 그러니까 공무원더러 골프 치지 마라, 비싼 술집에 가지 마라 등등 자잘한 주문을 하기보다 정부의 권위를 크게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용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레이건 대통령을 희화한 공무원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이 로 로드 어프로치의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공인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신중하거나 절제하지 않은 자신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나라가 어지러운 또 다른 이유는 대권 지망생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의식과 태도 때문이다. 원래 경쟁이라는 것이 상대방을 쓰러뜨리고 나만 우뚝 서야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하는 데는 밝은 길이 있고 어두운 길이 있다. 네거티브 일색의, 이 나라 정치는 개인 인격과 이성을 파탄 낸다. 연설회나 정책토론회에서 애쓰는 대선 후보자들이 불쌍해 보인다. 어쩌면 저런 ‘인격’들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할까 하는 의구심에 불쌍한 국민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당신은 나보다 더 훌륭하고 존경스럽다. 그러나 이 시기에 국가가 짊어질 과제가 무엇인데 이를 해내기에는 내가 최적격자다” “21세기 신국제질서에서 한국의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한 구상은 이렇다” “선거운동원과 국정관리자를 엄격히 구분해 내가 집권하면 선거에서 고생했더라도 엄선해 국정에 참여시키고 밖에서 동조자를 널리 구하겠다”며 상대방을 치켜세우고 내가 할 역할을 열린 마음으로 말하는 후보자는 없을까.

결국 모든 것이 권력 때문인데, 권력으로 망하긴 쉬워도 흥하기는 어렵다. 권력을 적절히 행사하며 이해관계를 통제할 수 있어야 국가이성(레종데타)이 살고 나라가 선다. 스스로 엄격해 어떤 이유로도 범법하지 말아야 함은 물론 처절하게 다져진 인격과 이성으로 권력 네트워크를 정직하게 관리할 수 있는 대통령을 뽑자. 그래야 국가이성이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