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웅 칼럼] ‘私設 정부’를 아시나요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 제14호 | 20070617 입력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그린스보로 시에서는 시민들이 담배밭을 보상받은 돈으로 시의 교통체계를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직업야구팀을 유치하기 위해 스타디움도 짓고 있다. 시 정부와 의논해 하는 것이지만 시 운영을 민간이 주도해 이를 ‘사설 정부(private government)’라고 일컫는다. 정부는 이렇게 민간인과 역할을 분담하지, 공공이라는 이름으로 법ㆍ제도ㆍ정책을 독점하지 않는다.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지 2005년 8월호는 향후 35년 내에 정당(특히 공산당)ㆍ소아마비ㆍ공적 영역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정부가 아예 없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공공정책은 이미 정부의 독점물이 아니다. 민간경제연구소가 경제정책을 제시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고, 시민단체도 정책대안을 제시하곤 한다. 이를 ‘시민정책 시대’의 도래라고 말한다.

우리 정부는 어떠한가. 대통령 인수위 시절 공무원들을 적대시하던 노무현 정부는 시간이 갈수록 공무원들에게 관대해진다. 수를 늘리고 기구를 늘리고 자리를 상향조정하기를 다반사로 한다. 지난 4년간 공무원 수는 4만8000명이 늘었다. 장ㆍ차관 정무직은 28%가 늘었다. 대통령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은 기사가 딸린 자동차를 예사롭게 타고 다닌다. 1990년대 초반 서울대 학장들의 관용차를 없애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이고 더욱이 역대 정부의 대통령자문위원장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지난 3년간 정부는 예산의 32%에 해당되는 52조원을 낭비했다는 보고가 있다. 지난 4년간 늘어난 나랏빚 150조원도 정부 수립 후 54년간 떠안은 134조원의 부채 규모를 능가한다.

행정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부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김관보 가톨릭대 교수는 교육ㆍ노동ㆍ문화관광의 일부 기능을 합쳐 미래부를 신설하자고 한다. 1993년에 필자가 주장했던 미래부는 약간 성격이 다른 것이긴 하지만 비슷한 견해다. 김 교수는 헌법 제88조 2항에 어긋나긴 하지만 1원 10부처를 주장한다.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국정홍보처와 여성가족부를 없애자고 한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 공보처를 없앤 적이 있다.

정부 부처 수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 자체를 얼마든지 슬림화할 수 있다. 민간이 해도 되거나 중복되는 기능을 줄이면 되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의 예를 들면 관광과 체육기능은 굳이 정부가 하지 않아도 된다. 정책홍보관리실의 인사ㆍ재정ㆍ법무 기능 등은 존치되어야 하겠으나 정책총괄 기능을 더하면 문화정책ㆍ예술ㆍ문화사업ㆍ문화미디어ㆍ관광ㆍ체육 등 각 국의 정책팀을 따로 둘 이유가 없어진다. 각 국은 실체적인 업무를 하면서 정책의 총괄과 조정을 정책홍보관리실에서 하면 더 효과적이고 중복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여기에 대외협력업무를 보태면 문화정책국의 국제문화협력 같은 팀도 없앨 수 있다.

정보통신부 하나만 더 예를 들면, SW진흥단은 소프트웨어에 관한 한 시장이 훨씬 앞서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관리해 효율을 기하기보다 연구소로 이관하는 것이 현명하다. 대신 미래수요에 맞게 우주청 같은 기구는 신설해도 좋다. 인구 2억9500만 명의 미국의 연방정부는 15개 부에 불과하다. 인구 1억2700만 명의 일본의 정부 부처는 12개 성이다. 우리는 헌법을 고치지 않는다면 15개 부처로 줄일 수 있다.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를 역설하며 시장과 정부의 힘을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쓰자고 했다. 자본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자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 정부도 역할과 이미지를 바꾸며 꼭 필요한 일만 하는 ‘창조적 정부(creative government)’로 가야 하지 않을까. 사설 정부에 밀리기 전에 다음 정부는 반드시 그리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