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게 바라는 기념 식수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 제20호 | 20070728 입력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주 도산서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은 금송(錦松)을 봤다. 퇴계(退溪) 사거(死去) 400주기를 맞아 정부가 서원 중수를 지원하고, 이를 기념해 1970년 12월 박 대통령이 청와대 정원에 있던 것을 옮겨 심은 것이다.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이황의 문하생이던 서애(西厓) 유성룡 선생의 자취를 영모각(永慕閣)에서 더듬었다. 서애를 기리는 병산서원 만대루(晩對樓) 앞에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이 2005년 기념 식수한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대에 ‘민족의 대학’이라는 휘호를 하사했다. 총장실 한쪽 벽면에 원본이 오랫동안 걸려 있었는데 언젠가 없어졌다. 서울대 문화관 앞의 개교 50주년 기념 조각물에 새겨진 ‘겨레와 함께 未來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글씨다. 이처럼 고위 인사, 특히 대통령의 손길이 닿은 곳은 영광스러운 흔적으로 남는다.
대통령의 관심과 성원은 대학 구성원들에게 큰 힘이 된다. 경연(經筵)으로 자신을 연마하는 군왕들의 숭문사상 덕에 배움의 터는 예로부터 존중의 대상이었다. 학문과 대학을 존중하지 않는 대통령이 어디 있겠으며 대학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대통령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통령과 대학, 정부와 대학의 관계가 항상 매끄럽지는 않았다. 과거 국가·교회· 대학이 세속성·초월성·합리성이라는 각각의 속성과 가치 때문에 서로 부딪친 적이 많았다. 어떤 때는 대학이 꼼짝 못하고 국가나 종교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대학은 자유를 지상의 가치로 삼는 합리적 존재이고, 거짓 세속이나 초월로 얽어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대학은 다재다능한 인간(eutra pelia)을 자유롭게 키우는 곳이지 틀에 박힌 기능인을 기르는 곳이 아니다. 자유인으로 길러야 창조적 상상력을 갖고 미래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한몫할 수 있게 된다. 미국 하버드대가 SAT(한국의 수능시험에 해당) 만점을 받은 학생을 15명당 한 명밖에 뽑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교육계의 원로 정범모 교수는 대학의 목표를 전인교육과 자유주의 교육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학생들은 지식 습득을 위해 머리가 명석해져야겠지만 인간미 있고, 몸도 건강하고, 거기에 멋까지 곁들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딱한 것은 정부나 기업이 이런 생각과 너무 다른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써먹을 인재가 필요하니 대학더러 판에 박힌 기능인을 기르라고 주문한다. 대학을 기계로 착각하고 표준화된 기준을 적용해 통제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인턴제도를 도입하면 쉽게 해결된다.

정부가 굳이 간섭하고 통제하고 싶다면 시대착오적으로 편제된 분과(分科)학문들과 교육방식을 혁신하는 것을 지원하면 된다.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아직도 고전 물리학의 원리대로 대학과 학문을 평가하며 점수를 매기고 이에 따라 돈을 지원하며 간섭과 통제를 일삼는다. 대학은 여기에 일희일비하고 있으니 미래로 달음질쳐야 할 주체가 스스로를 과거의 틀에 묶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학은 그런 인식과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제 물리학과 화학의 시대를 거쳐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생물학적 인식이 지배하기 시작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면 우주와 지구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돼 신인류를 길러내야 한다. 정부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을까?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학문의 흐름을 모르는 정부는 대학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느 대학이나 서원을 찾아 기념 식수 하고 ‘지배계급의 가치에 정의를 더하고 싶었다’는 글을 남기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의 미래가 더 밝고 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