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格 높일 지도자를 소망한다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 제24호 | 20070826 입력  

경제 이야기 말고 나라의 지도자나 대선 후보들이 주력해야 할 일 중 하나가 격을 높이는 일이다. 격(格)이란 신분, 지위 등급, 또는 어울리는 격식이나 품위를 이른다. 격이 높다, 낮다, 격에 어울리다 등의 표현은 그래서 쓴다.

인격은 사람됨이다.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예의가 바탕이다. 언행이나 마음 씀씀이, 심지어 목소리도 격을 가른다. 시정(市井)의 언어를 마음 내키는 대로 쓰거나 소리 높여 파열음을 내는 사람의 인격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목소리가 교양이라고 말한다. 의상도 격과 같이 간다. 공식 석상에서 진 바지를 입은 사람은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부시가 목장에서 쉴 때야 그런 바지를 입어도 뭐라고 말하지 않는다. 청와대 국빈 만찬 때 윗옷을 벗어 의자 뒤에 걸쳐 놓는 국회의원의 행동은 품위를 잃는다. 리더십 훈련 때 ‘드레스 코드’를 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명망가인데 직격(職格)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느 대학 총장이 내방객에게 학교 마크가 새겨진 골프공을 선물하는 것을 보고 인격에도 직격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오히려 그 대학이 발간한 교수들의 양서를 선물로 내밀었다면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자신의 저서를 기관 예산으로 사서 주는 것은 직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공직자다. 직격은 직업의 귀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일을 맡은 사람이 그 직책에 어울리게 행동하느냐를 기준으로 삼는다.

대통령이 헌법이 옳지 않다며 나라의 기본법을 타박하면 직격에 맞는다고 할 수 없다. 공직자 중에는 유독 사무실의 넓이, 자동차 배기량, 비행기와 호텔의 등급 등 일정 수준 이상을 고집하며 급을 따져 격을 올리려는 사람이 있다. 나도 ‘장관’이고 ‘장관급’이라는 것이다. 직격은 그렇게 해서 높여지지 않는다. 신분계급사회인 우리나라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직급이 올라가면 직격도 인격도 더불어 높아지는 것으로 착각한다.

직격에 어울리려고 무리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교수에게 학위를 덧씌우는 경우다. 특히 공연예술 쪽이야 학위보다 능력인데 관료주의 때문에 뭔가 어울리지 않는 요건을 갖추게 하니까 거짓 학력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게 된다. 고등학교를 나오고 트럭회사에 취직했던 엘비스 프레슬리나 링컨, 에디슨, 빌 게이츠가 학위를 제대로 갖춘 인물이었던가? 교수직에 그것도 박사학위가 있어야 행세를 한다는 제도와 사회풍토는 고쳐야 할 것 중의 하나다. 신지식인이란 말이 왜 나왔겠는가? 이걸 고치지 않으면 거짓 학위와 대필 논문은 양산된다. 좋은 학교 나와 높은 학위를 가져도 라캉이 말하는‘거울계’에 머물러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교수를 생각하면 이들이 가짜 학위 소지자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라의 품위, 국격(國格)은 더욱 중요하다. 대통령이나 공직자가 국격을 좌우하는 시금석이다. 유럽연합(EU) 국가 중 1인당 국민소득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그리스는 후진국이라기보다 오랜 역사 때문에 방문하고 싶은 나라에 꼽힌다. 반대로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 국민소득이 높아도 룰을 안 지키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관행이 팽배하면 그 나라의 국격이 높다고 하지 않는다.

평소에 점잖다가도 선거 때만 되면 정치판은 격하고는 거리가 너무 멀어진다.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 중에 누가 국격을 높일 수 있을지 가릴 때가 되었다.

격은 참으로 오묘하다. 갖추어야 할 때가 있고 버려도 괜찮을 때가 있다. 윤석철 교수는 나력(裸力)이라는 표현을 써서 직위 없이도 영향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패자가 승자를 축복하고 승복하겠다고 아량을 보이면 나력이 충만해지고 우러러 보인다. 패자의 논리인 헤레스세틱스(heresthetics)는 승자의 논리인 레토릭(rhetoric)보다 더 넉넉하고 나을 때가 많다. 인격이 훌륭하고 대통령이라는 직격도 바르게 지키고 나아가 국격을 한껏 높일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