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판이 이러면 선진국 되기는 멀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총생산이 중국에 밀려 세계 13위로 내려앉았다. 문제는 경제에만 있지 않다. 노동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아무리 땀 흘려도 정부와 사회 곳곳에서 권력이 부당하게 행사되면 좌절하고 박탈감만 생긴다. 아직도 개인 편의에 따라 깨지는 원리와 옳지 못한 관행이 사회 곳곳에서 판치고 있다. 가장 절제되고 정직해야 할 지식사회와 권력기관이 사익 챙기기에 급급해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 자본주의 국가의 치부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이란 대개 서양이 기준이다. 소크라테스의 이성, 데카르트의 논리, 기독교의 희생정신, 계몽주의, 로마법전, 합리주의와 개인주의적 특성 등이 있고, 그 토대 위에 근검절약하며 소명의식에 기초한 자본주의 정신이 뿌리내려야 서양다운 선진국이 된다. 그렇다고 서양이 선진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일찍이 사뮤엘 헌팅턴은 서양은 서양일 뿐 보편적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신적 지주를 가지고 자신을 절제하고 바르고 넉넉한 의식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며 내가 갖추지 못한 것을 남을 통해 메우는 호양의 정신이 숨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꼭 닮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 서양적 선진 요소가 희박하다는 것은 금방 안다. 우선 논리가 서지 않는 일이 흔하다. "공무원은 정직하거나 사악한 인간이다 / 공무원은 사악하지 않다 / 고로 공무원은 정직하다"와 같은 `선언지 긍정의 오류`를 범하는 논리가 흔하다. 정책논리 이전에 정권논리를 미리 정해 놓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두 사례에 불과한 것을 마치 전체인 양 보편적인 논리라고 우긴다. 진리는 그 진리체계 안에서만 진리인데도 보편적 타당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희생정신이나 소명의식도 한탕주의에 몰려 빛을 보지 못한다. 정권 주변에서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날뛰는 군상들이 나라를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근검절약도 이젠 보기 쉽지 않다. 상대방을 존중하기는커녕 아직도 일방적이다. 그리고 남성중심적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줄을 대려고 한다. 조직의 생리가 옛 그대로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더욱 황폐해진다.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아직도 지속적 발전을 외치며 개발만이 능사라고 땅을 마구 파헤치는 난개발 △공직을 사유물인 양 후배나 고향사람에게 던져주는 일 △공권력을 쥐고 온갖 일에 간섭해 공직윤리를 땅에 떨어뜨리는 일 △범법자가 공직에 진출하는 일 △권력기관의 비호로 정부의 이권을 따내는 일 △대학이나 공기업 평가를 한답시고 허상인 수치만 잔뜩 나열해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우기는 일 △제자이거나 친인척이기 때문에, 아니면 학력을 위조해도 힘이 센 청탁이 있으면 대학교수가 되는 일 △국내 소비자를 박대하는 이중가격 구조 △골프나 항공기 예약 같이 어려운 일에 권력이 부탁하면 통하는 일 △규정대로 하면 되는 일을 청탁이 있어야 공직자가 겨우 움직이는 일 △삶과 죽음이 하나인 것을 모르는 채 죽음은 혐오스럽기만 하다고 우기는 일 등등. 정말 겉으로가 아닌 진정한 합리주의와는 너무 거리가 먼 전근대적 구판이 판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나라는 선진국은커녕 삼류 국가도 되기 어렵다.

사부분은 또 다르겠지만 우선 국가 부문에서 공직의 공공성과 공덕(公德)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 국가 권력이나 내가 앉은 자리는 말할 것도 없이 내 것이 아니다. 내 소유가 아니다. 자연인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헤겔이 일찍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공직에 앉자마자 하는 말이 임기 동안 "내 소신껏 하겠다"고 한다. 공직에 소신이 들어가면 안 된다. 공직에 사적 연이 들어가면 큰일 난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가 되면 막강한 권력에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여려진다. 제 직분을 지켜야 하는 지분(知分)을 잃는다.

권력이란 있는 그대로 100%를 쓰면 오만해 보인다. 120%를 쓰면 그건 물론 남용이다. 내가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졌어도 70~80% 정도만 행사해야 남들이 존중하고 순응한다. 이런 권력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한없이 내휘둘렀으니 결과는 참담해질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가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들과 그 주변 인물들부터 참회하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새판 짤 기틀을 마련해라.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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