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광웅] 21세기의 자원 ‘時産’

[2010.08.02 17:46]   모바일로 기사 보내기


“물질 필요하지만 시간과 생명체의 소중함 함께 터득해야 인류가 공존할 수 있다”

지난주 꼬맹이들에 떼밀려 피서를 겸해 다녀온 해운대와 수영만 일대는 가히 홍콩의 카우룬이나 상하이의 푸둥 지구를 방불케 했다. 한창 짓고 있는 84층의 콘도미니엄을 비롯해 고층 아파트 숲을 이루고 있는 이 지역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 위에 떠있는 요트들의 풍경은 이 나라를 선진국이 아니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모습이다. 나라가 해마다 달라져 오랜만에 고국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물질문명의 변화 흐름을 거역할 수 없어 우리도 편승하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변해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한번은 생각해 볼 일이다. 양극화 현상이 날로 심화되기 때문이다.

작가 박완서는 최근 펴낸 산문집에서 경제성장 덕분에 “잘살건만 한 치 앞이 안 보이게 불안하고 답답하고 자꾸만 초라해지는 건 무슨 까닭인가”라고 했다. 경제 일변도로 생각하고 행동해 뭔가 손에 쥐려고 하는 군상들이 못마땅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생각하고 성취하려는 것이 나쁘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인간이 빵 없이 물만 마시고 생존할 수 없다는 엄연한 진리를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서 얻는 것만큼 잃은 것이 있다면 그래도 이 길을 가야 하겠는지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해도 환경은 파괴될 것이고 질병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빈곤 역시 없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공동선이 구현돼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고 자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상은 매우 정반대로 전개된다. 서로를 믿지 않고 존중하지 않고 자신만 살기 위해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며 자기중심에 깊숙이 빠져들기만 한다. 이런 사회를 바람직한 사회며 더불어 사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세상에 소중한 것이 무얼까. 가족, 친구, 집, 땅, 돈, 사랑 등등 수 없이 많겠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제일 소중한 것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땅이 소중한 시대를 농본사회, 돈이 소중한 시대를 자본사회,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이 소중한 시대를 뇌본(腦本)사회라고 한다. 시대구분 따라 연도가 다르긴 해도 뇌와 인지의 중요성이 부각된 지 오래다. 지금껏 물질과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지고지선이었다. 경쟁에서는 이기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19세기 과학주의와 도구적 합리주의다.

1990년대 초 한 종교인은 광주에서 열린 강연에서 올림픽 정신이 옳지 않다고 설파한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빠르게’라는 것이 인간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경쟁시대에나 타당한 논리일 뿐이라는 뜻이 함축된다. 자연을 깎아 먹고 사는 삶이 어려워질수록 인간은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다. 경쟁보다 상대를 존중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물질과 에너지의 생산이 필수적이긴 해도 시간과 생명체의 소중함을 함께 터득해야 인류가 공존할 수 있다. 여기서 생명체는 인간의 생명만을 말하지 않는다. 지구상에 있는 온갖 생명체들이다. 무기물까지도 포함한다. 성장의 속도가 빨라지면 기계도 숨이 차 죽겠다는 비유도 한다.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우는 것은 결국 인간사는 시간과의 함수관계에서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히려 주체일 수 있다. 시간이 독립변수가 되는 셈이다. 그런 시간을 우리는 잘 관리하지 못한다. 국가의 최고결정권자나 대기업CEO들의 시간이 얼마나 희소성을 갖는지를 우리는 어림한다. 그렇다고 학생이나 선생의 시간이 덜 소중하다는 것은 아니다.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진 최대의 자원, 곧 시간의 활용은 매우 소중하며 이것이 곧 돈이 되고 명예가 되고 권력이 된다.

그렇다고 시간을 과거의 경쟁적 리비도가 지배하는 시대의 자원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유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성패가 달린다. 내 시간이 소중한 만큼 남의 시간도 존중해 조화를 이룰 때 승수효과를 더한다. 그렇게 해서 에게, 크레타, 메소포타미아 등의 문명에서 비롯돼 오늘에 이르고 또 새롭게 시작되는 21세기 인지문명이 펼쳐진다. 소유보다는 점유와 사용에 더 무게를 두고, 21세기 최대 자원을 ‘시산(時産)’이라고 한 제러미 리프킨의 말을 곱씹어야 할 때다.

김광웅(서울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