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으로 포장된 권력 집착 그 권력으로 이룬 일 너무 작아
● 복거일씨 특별기고 "실망스러운 첫해"
복거일

▲ 복거일씨
이명박 대통령의 첫해는 실망스러웠다. 갑자기 닥친 경제 위기를 감안하더라도, 그가 이룬 것은 너무 작다.

그런 결과는 이 대통령이 항로를 잘못 고른 데서 비롯했다. 그가 시민들로부터 받은 위임사항(mandate)은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질서'의 회복이었다. 두 번의 좌파 정권 아래서 우리는 헌법이 마련한 항로에서 크게 벗어났다.

이상하게도, 이 대통령은 이 당연한 항로를 외면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별다른 애착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재산권이란 말을 쓴 적이 드물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대신 그는 '실용'을 내세웠다.

실용은 아주 모호하고 주관적인 개념이다. 자연히, 실용을 내세운 지도자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실용의 기준으로 삼게 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항로를 자주 바꿨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이나 '용산 철거민 참사'처럼 정치적 위기가 닥치면, 그는 자신의 정치적 안전을 위해 법이나 절차적 안정성과 같은 원칙들을 기꺼이 버렸다.
여기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문제의 본질은 실용이 아니라 이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집착임을. 그에겐 자신의 권력이 유일한 가치다. 그리고 자신이 권력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은 실용적이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비실용적이다. 권력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그런 집착은 국무총리의 권한을 줄인 데서 처음 드러났다. 총리는 원래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대통령에게 국무위원을 제청"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총리에게 그런 권한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결정이었음이 곧 드러났다. 만일 헌법이 총리에게 부여한 권한을 한승수 총리가 실제로 지녔었다면, 국무위원 제청 과정을 통해서 인선의 문제들이 조금은 걸러졌을 터이고 현 정권의 운명도 상당히 달라졌을 터이다.

이 대통령이 보인 권력에의 집착은 권력의 총량이 고정되었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총량이 고정된 권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 자기 몫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 사람들로 정권을 꾸미고 경쟁자들에게 권력이 새어나가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나 권력은 그렇게 고정된 것이 아니다. 지도자는 자신의 지도력으로 권력을 창출한다. 지도자의 권력은 자신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의 수와 지지도에 비례한다. 히틀러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누린 엄청난 권력은 바로 그런 지도력에서 나왔다.

역설적으로,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 지도자에게서 권력의 한 부분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그 권력을 써서 지도자의 뜻을 이룬다. 아울러 자신들이 받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지도자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애쓰게 된다. 권력을 나누어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잃을 것이 아예 없으니, 지도자에게 매일 까닭이 없다.

이 점에서 버락 오바마는 감탄스럽다. 정적 힐러리 클린턴에게 파격적으로 권력을 위양함으로써, 그는 강력한 국무장관을 만들어 냈고, 그녀를 통해서 온 세계에 자신의 권력을 투사한다. 권력은 그렇게 창출되는 것이다.

반면에,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현 정권이 서둘러 마련한 법안들은 벌써 여러 달째 국회에 묶였다. 다수 여당은 소수 야당에 붙잡혀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대통령의 노여움을 살까 걱정하는 여당 의원들도 없다. 이보다 더 초라한 권력이 어디 있는가?

권력을 얻기가 워낙 어려우므로, 지도자들은 권력 자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권력은 궁극적으로 통치를 위한 수단이다. 권력 자체에 눈길이 매이면, 돈 자체에 매혹되어 투자하지 못하는 수전노의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권력을 나눔으로써, 지도자는 권력을 한껏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 권력을 써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점점 위협적 모습을 지녀가는 경제 위기에 대처해야 할 이 대통령으로선 특히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