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클린턴 장관이 한국에서 '훔쳐간' 것
일반인의 호감 사는 외교 훗날 큰 외교 자산 될 것
강인선 기획취재부 차장대우 insu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강인선 기획취재부 차장대우
지난주 한·미 외교장관 회담 때 우리 쪽 배석자들은 유명환 장관을 비롯해 남자 일색이었다. 미국 쪽에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대사가 여성이었다. 외교부 장관이 과감하게 후배 여성 외교관을 한 명쯤 배석시킬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신경하기는 청와대와 총리실도 마찬가지여서 늘 '대한민국 남성 대표단'이 나왔다.

클린턴은 청와대·총리실·외교부를 한 바퀴 돈 후 이화여대로 달려갔다. 2000명이 넘는 학생들 앞에 서자 클린턴에게선 생기가 돌았다. 클린턴은 "단지 도덕적으로 옳기 때문이 아니라 안보와 번영을 강화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과 소외된 사람들이 사회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연설 후 클린턴은 20대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는 "내가 국무장관이 아니라 인생 상담 칼럼니스트가 된 것 같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딸 첼시를 낳았을 때) 아기가 울고 또 우는데 초보 엄마는 이유를 모르죠. 한밤중에 일어나서 아기를 어르다가 그랬어요. '얘, 너도 이번에 처음 아기가 돼보는 거고 나도 엄마가 처음 돼보는 거야. 그러니 우리 같이 잘해보자'."

학생들은 국무장관의 임무나 대선 도전 체험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직장 다니면 누구나 겪는 일상의 고민에 대해 물었다. 클린턴도 거창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중요할 뿐 나머지는 다 배경음악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매일 감사할 일을 찾으라는 '감사의 원칙'을 명심하고 살아간다"고 했다.

클린턴은 순식간에 '나도 여러분과 똑같은 고민을 한 끝에 오늘 여기까지 온 사람'임을 강조해 공감을 얻어냈다. 학생들은 열광했다. 북핵에 대한 연설로 시작했던 강연은 친밀한 분위기에서 끝났다. 새벽부터 클린턴의 하루 일정을 취재하다가 그 시점에서, '아, 이번 방한의 강조점은 청와대나 외교부가 아니라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클린턴이 "외교에서도 정치 감각은 중요하다"고 했던 건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광의(廣義)의 외교란 이런 것일지 모른다. 우방과 동맹국 국민의 호감을 사는 것이야말로 훗날 가장 큰 외교 자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관들은 의전을 목숨처럼 여기면서 밀실에 앉아 형식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외교라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국가의 장래를 좌우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땐 국민의 지지가 결정적 변수가 된다. 그때 외교는 정부 안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내 나라 국민의 지지는 물론이고 상대국 국민의 마음까지 살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클린턴은 이번 방한 때 바로 그 일을 하고 갔다. 서열 맞춰 악수하고 기념사진 찍어 기록을 남기는 전통적인 외교는 딱 필요한 만큼만 하고, 나머지 시간엔 대중의 마음을 얻는 데 열과 성을 다했다.

부시 행정부 때 미국은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들여 공보외교를 펼쳤지만 반미 감정을 잠재우진 못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자신의 인기와 대중정치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아시아 순방 '한 방'에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호감'이라는 값진 외교 자산을 번 것이다.

클린턴은 국무부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라"고 다그쳐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클린턴이 떠나고 난 후, 우리 외교부는 전통적인 틀을 깬 클린턴 외교의 실체를 분석해 보았을까? '여성용 행사'인 줄 알고 별 관심이 없었다면 지금이라도 클린턴이 '슬쩍 가져간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