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집권 8년] 지나친 '원칙 고집'이 실패 불렀다
<2> 편가르기와 非타협의 리더십
카우보이 기질 인기 끌었지만 단순함 지나쳐
9·11이후 이분법적 사고 심해져 전쟁 치달아
이용수 기자 hejsue@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원세일 기자 niet@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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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아침 조지 W 부시(Bush) 미 대통령은 플로리다 세라소타의 에마 E 부커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다정한 얼굴로 '내 애완 거위'란 동화를 학생들에게 읽어주고 있었다. 이때 한 남자가 교실로 들어오더니 그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담임 교사 샌드라 대니얼스(Daniels)는 후에 "그 사람이 나간 뒤로 대통령의 태도가 확 변했어요. 대통령은 몸만 남아있고 정신은 교실을 나가버린 것 같았어요"라고 회상했다. 귓속말을 한 사람은 앤드루 카드(Card) 백악관 비서실장이었고, 그 내용은 "두 번째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를 타격했다"는 것이었다. 이날 이후 부시 대통령의 세계관과 리더십은 '9·11 악몽'의 포로가 된다.

◆부시의 단독 질주=부시는 앨 고어(Gore) 민주당 대통령 후보와의 대선 후보 토론 당시만 해도 클린턴 정부가 코소보와 소말리아에서 '모험주의적' 개입 외교를 펼쳤다며 "미국은 겸손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인물이다.



하지만 9·11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테러 사흘 후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의 역사적 책임은 테러를 응징하고 악의 세계를 제거하는 것임이 분명해졌다"며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같은 달 20일 의회 연설에선 "세계 모든 나라는 우리 편에 설 건지, 테러범들의 편에 설 건지 택하라"는 협박성 발언도 했다.

행정부 내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의 입김이 세지면서 부시 집권기는 점점 증오와 파괴, 의심으로 점철돼 갔다. 그 해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시작했고, 이듬해 1월 11일부턴 외국에서 생포한 테러 용의자들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하기 시작했다. 같은 달 29일 부시는 국정연설에서 이라크·이란·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라크전은 그 해 3월 19일 시작됐다.

◆파국으로 끝난 편가르기 리더십=9·11에 충격을 받은 미국인들은 부시의 단호함에 일순 매료됐다. 테러와의 전쟁 직후인 2001년 10월 국민들은 부시에게 90%가 넘는 지지율을 보냈고 2004년 대선에선 부시를 재선시켰다.

하지만 분열과 증오의 리더십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부시는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처에 실패하며 지지율이 추락하기 시작했고, 영장 없는 도청 프로그램이 폭로돼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극에 달한 종파 분쟁으로 수렁에 빠진 이라크전은 그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낙인 찍은 결정타였다.

◆위기는 신앙·성격·지역성의 산물=부시 리더십의 몰락은 9·11을 계기로 촉발됐지만 그 이면에선 그의 신앙·성격·지역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상을 선과 사탄의 대결 구도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는 그의 과도한 신앙심 탓이라는 해석이 많다. 9·11 이후 부시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해 미국은 십자군 전쟁에 나서야 한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종교전쟁에 빗대기도 했다.

비실용적이고 원칙에 '올인'하는 성격도 문제로 꼽힌다. 결단은 빠르고 확고하게 내리며 한번 결정된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부시의 원칙. 복잡한 문제의 경우 실수를 인정하고 진로도 변경할 줄 알아야 하는데, 부시는 그걸 용납 못했다고 미 정치·시사잡지 뉴 리퍼블릭은 13일 분석했다.

그가 카우보이 기질로 유명한 텍사스 출신인 점도 몰락의 요소였다. 부시는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죽여서든 살려서든(dead or alive) 잡고 말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표현은 서부 개척시대 범죄자 지명수배 전단에 쓰이던 것으로, 부시의 카우보이 기질이 투영된 결과다. BBC방송은 "카우보이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바라본다. 이게 부시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