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기회를 찾는 나라들] [5] 두뇌전쟁―'브레인웨어 공작소' 미(美) MIT
IT·BT·NT의 융합…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키운다
점진적인 하드웨어와 달리 브레인웨어는 한방에 '해결'
7개科 800명 모여 인공지능 주제로 융합된 지식 창출
"나보다 우리가 똑똑하다"… 초우량 인재들 팀워크 빛나
케임브리지(미국)=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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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준비하는 위기 탈출의 승부처는 '두뇌 전쟁'이다. 금융의 타격, 제조업의 붕괴, 달러 패권의 약화, 중국의 추격…. 한꺼번에 몰려오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미국은 뛰어난 두뇌의 힘으로 일거에 돌파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저 머리 똑똑한 전통적인 수재(秀才)가 아니다. 미국이 목표로 하는 21세기형 두뇌 전사는 '브레인웨어(brainware)'다. IT(정보기술)·BT(생명기술)·NT(나노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흡수해, 혼자 힘으로 새로운 산업 하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융합형 두뇌'를 길러내자는 것이다.

◆IT+BT+NT→브레인웨어

매사추세츠주 MIT(매사추세츠공대)는 미국의 대표적인 융합형 두뇌 양성소다. 뇌·인지과학과(科)의 다니엘 딜크스(Dilks) 박사는 연구실을 찾은 기자에게 자신의 연구가 얼마나 획기적인지 설명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는 지난해 뇌졸중이 오면 뇌세포가 그냥 '죽어 버린다'는 통설을 뒤집는 논문을 발표해 학계를 놀라게 했다.

딜크스 박사는 학부 때 통계학을 전공했다. 소비자 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친 뒤, 존스홉킨스대에서 뇌(腦)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통계학·경영학·심리학·인지과학 등을 종횡무진 섭렵한 그의 목표는 치매 정복이다.

전통적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은 발전이 '점진적'이다. 하지만 딜크스와 같은 MIT의 브레인웨어들이 만들어내는 기술은 한번 도약하면 '혁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반도체 기술은 매년 조금씩 쌓아가는 것이지만, 브레인웨어 기술은 하룻밤 사이에 세상을 바꾼다. 제약회사 화이자가 단백질 구조를 수퍼컴퓨터로 분석(IT)하고, 원자 단위로 화학성분을 조작(NT)해 만든 신약(BT) 비아그라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M&A하는 학과(學科)들

은발의 토모소 포지오(Poggio) 교수는 분홍색 바지에 하늘색 조끼를 받쳐 입은 멋진 노교수였다. 그는 명함 두 장을 내밀었는데, 한 장은 컴퓨터과학·인공지능 랩(CSAIL) 소속, 또 한 장은 '뇌 연구를 위한 MIT 맥거번 연구소' 소속으로 돼 있었다.

그가 소속된 CSAIL은 5년 전 출범한 거대한 공동연구 조직이다. 전기공학·컴퓨터과학·수학·항공우주비행학·뇌인지과학·기계공학과 지질·대기·지구과학 등 '전통적'인 이름의 7개 과(科) 교수·연구원·학생 800명이 모여 인공지능 연구를 위한 CSAIL을 만들었다.

CSAIL 소속 교수와 연구원은 '스타타센터(Stata Center)'로 이름 붙여진 7층짜리 건물을 함께 쓴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쉽게 접하고, 매일 만나 토론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포지오 교수는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해결책을 함께 찾는 다학제(多學際·multi-disciplinary) 연구"라고 말했다. 단일 기술, 단일 학문으로는 한계에 달했기 때문에 지식을 융합해 전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조해내야 한다는 얘기다.

CSAIL 식의 '학과 M&A(인수합병)'는 MIT 구성원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1986년 뇌·인지과학(BCS)과는 뇌과학·심리학·생물학 등의 연구진(현재 교수 47명, 연구원 180명)을 끌어모아 단일 과를 만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복잡한 인간의 뇌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과학자에게 두 가지 큰 숙제가 있는데,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죠."

신체 중 얼굴만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뇌의 특정 부위를 발견해 낸 낸시 칸위셔(Kanwisher) 교수는 뇌과학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뇌의 비밀을 밝혀내면 뇌 관련 질환 정복의 길이 열리게 되고, 이에 따른 부가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할 거라고 그는 전망했다.


▲ 전세계 영재들의 대화광장 MIT의 스타타센터 건물은 뒤틀리고 잘라 붙인 듯한 파격적인 외양으로 유명하다. 이 건물 안에 7개 학과(學科)가 한데 모여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융합 지식을 창출해내고 있다. /케임브리지=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의과대 없지만 암센터 곧 완공

2년 전 MIT에는 집단지성센터(CCI·Center for Collective Intelligence)가 만들어졌다. 교수 35명이 가상공간으로 엮어 있는 형태다. 전공은 묻지 않는다.

로봇 공학의 일인자라는 로드니 브룩스(Brooks·전기공학과), '컨버전스 컬처'를 쓴 헨리 젠킨스(Jenkins·인문학부), '노동의 미래'를 쓴 토마스 말론(Malone·경영대학원) 등 각 분야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참여하고 있다. 각 분야 고수들만 모인 셈인데, 그들의 모토는 역설적으로 '나보다 우리가 똑똑하다(We are smarter than me)'이다.

CCI 멤버인 MIT 미디어랩 소속 패티 메이즈(Maes) 교수는 "많은 사람의 작은 노력의 합이, 적은 수의 사람들의 커다란 노력보다 효과적"이라는 지론을 설명하는 40분여의 대화 중 흰색 애플 노트북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책이나 사람 이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구글(google.com)이나 위키피디아(wikipedia.org)를 검색해 보여줬다.

CCI 구성원들이 고민하는 과제는 노령화·에너지·기후변화 등 전(全) 지구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다. 메이즈 교수는 MIT가 융합 두뇌혁명에 앞서가는 이유를 "학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이론보다 기술 발전을 어떻게 실제 적용할 것인지에 무게를 두는 MIT의 학풍(學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우량 인재들의 협력을 위한 MIT의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2010년 말에는 '통합 암센터'가 완공될 예정이다. 암센터가 만들어진다는데, 정작 MIT에는 의과대학이 없다.

의대 없는 대학에서 누가 암 연구를 한다고 1억달러를 들여 9층짜리 암센터를 지으려 할까. 센터 책임자인 타일러 잭스(Jacks·생명공학과) 교수는 "특정 분야의 학문만 암을 정복할 해결책(solution)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센터가 완공되면 생명공학과 나노공학 분야 엔지니어, 관련 과학자 등 25개 분야 연구원들이 공동연구를 시작할 계획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인 MIT에 융합형 두뇌혁명을 위한 또 하나의 기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브레인웨어 (brainware·융합형 두뇌)

IT·BT·NT 등 첨단 기술을 두루 흡수한 '융합형 두뇌'. 고급 인재의 중요성을 컴퓨터의 핵심부품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빗대 만든 신조어다. 전통적인 기술군(群)과 달리 브레인웨어가 만든 기술은 폭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해 낸다.

유럽·호주·홍콩도 21세기형 '레오나르도 다빈치' 육성
입력 : 2009.01.06 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