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칼럼] 과학소설에서 미래의 나를 읽어라 [중앙일보] 관련핫이슈[오피니언] 과학 칼럼스물한 살 약관의 나이에 미 해군 전투조종사로 한국전에 참전, 78회의 임무 출격으로 금성무공훈장을 받은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북한군 대공포에 피격돼 비상 탈출하는 경험도 했다. 나중에 미 항공우주국 우주비행사 요원으로 발탁돼 착실하게 경력을 쌓은 그는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뎠다. “한 인간으로서는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 전체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는 명언을 남긴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다.

그는 본격적인 우주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이 벅찼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랬다. 다들 21세기가 되면 최첨단의 우주시대가 열릴 줄 알았다. 달로 신혼여행을 가고 로봇이 모든 일을 알아서 해주고, 하늘에는 자가용이 줄지어 날아다니게 될 거라고. 그런데 인간이 달에 간 지 40주년이 되는 지금, 현실은 어떤가? 외형상 20세기의 풍경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PC와 인터넷, 휴대전화뿐인 것 같다. 우주시대보다는 정보화시대를 택한 셈이다. 72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아무도 달에 가지 않았으니.

인류가 영영 우주시대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등 새로운 열강들이 야심 찬 우주 개발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 거기에는 한국도 빠지지 않는다. 20세기의 우주 개발은 엄밀히 말해 미국과 옛 소련의 체제 경쟁이었다. 경제논리로는 답이 안 나오는 일들을 엄청난 자본을 퍼부어 성사시켰다. ‘장밋빛 21세기 미래상’도 사실은 그 부산물이었다.

여기 또 다른 젊은이의 얘기가 있다. 미국의 달 탐험 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던 60년대, 뉴욕의 한 십대 소년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읽었다. 우주로 퍼져 나간 미래 인류의 역사를 장대하게 서술한 대하 과학소설이다. 이 작품에는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사회의 모든 변수를 빠짐없이 계량화해 다가올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가상의 사회과학이다. 소년은 심리역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분야임을 알고는 차선책으로 경제학을 택했다. 그는 경제학도로서 꾸준히 매진, 예일대 조교수로 있던 78년에는 『파운데이션』의 내용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할 우주무역에 관한 이론을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우주에서 광속으로 물자가 수송될 때 운송비는 얼마로 책정해야 할 것인가를 다룬 논문이다. 그가 바로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다.

암스트롱과 크루그먼은 둘 다 자랑스러운 삶을 산 사람이지만 꿈의 좌절을 겪은 쪽은 아무래도 암스트롱일 것 같다. 69년의 그는 자신의 미래상을 ‘달 기지 대장’으로 그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21세기 미래사회가 과학기술로 빚은 낙원이 될 거라는 예측은 진작부터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조지 오웰의 『1984』가 훨씬 더 예리한 통찰을 보여줬다. 결론적으로 미래사회 예측은 과학기술의 발전만을 고려하지 말고 그 환경을 누릴 인간과 사회의 심리라는 더 근본적인 요소를 고찰해야 하는 것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충격』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학생들에게 역사는 가르치면서 왜 미래학 과목은 없는가? 로마의 사회제도나 봉건시대 장원을 탐구하듯이 왜 미래의 가능성과 개연성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과목은 없는가?…과학소설은 문학이 아니라 일종의 미래사회학이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부딪치게 될 정치·사회·심리·윤리적 문제의 정글 속을 상상력을 발휘해 탐험해 보도록 이끌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소설은 ‘미래의 나’를 위해 읽혀야만 한다.”

한국에서 과학소설은 아직도 허무맹랑한 공상으로 취급받고 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큰 그림으로 그려보겠다면 과학소설만큼 풍부하게 영감과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상상의 시나리오가 화려한 스펙트럼으로 펼쳐진 것이 과학소설이기 때문이다.


박상준 오멜라스 대표

◆약력:한양대 지구해양과학과 졸업. ‘판타스틱’ 편집위원. 서울 SF아카이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