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자를 수 없는 사람은 쓰지 말라” [중앙일보] 관련핫이슈취재일기 기사 리스트팔순을 바라보는 브루킹스연구소의 원로 연구원 스티븐 헤스는 50년 가까이 대통령 교체 시기의 정치사를 연구해 왔다. 그는 올해 ‘대통령 당선인을 위한 워크북’을 펴냈다. 1959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연설문 담당 비서를 시작으로 닉슨·포드·카터 대통령까지 백악관에서 지켜봤던 그의 경험이 책 속에 살아 있다.

이 원로 학자가 7일 오전(현지시간) 브루킹스연구소 세미나장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에게 몇 가지 훈수를 뒀다. 핵심은 ‘사람을 잘 써라’다. 헤스는 백악관 주요 보직 여덟 자리 중 일곱 자리를 자신의 출신 지역인 조지아주 친구들로 채운 카터 전 대통령을 실패 사례로 들었다. 의회를 중심으로 한 워싱턴 정치를 아는 사람이 없어 고립무원을 자초했다는 비판이었다.

반면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선거 공신들의 능력을 면밀히 판단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혜안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헤스는 오바마에게 “이거야말로 사심 없는 충고”라며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는 “설사 빌 클린턴이 탐탁지 않게 생각하더라도, 중요한 공공정책을 책임지는 자리에는 자를 수 없는 사람을 써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조언했다.

클린턴은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부인 힐러리를 헬스케어(국민건강보험) 개혁의 책임자로 지명했다. 당시 로이드 벤슨 재무장관은 이에 반대했다고 한다.

“힐러리가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할 경우 냉정하게 자를 수 있겠느냐. 사적인 인연에 얽매여 정책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중요한 자리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클린턴은 힐러리 임명을 강행했다. 힐러리는 헬스케어 개혁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마지막까지 건재했다.

헤스가 어떤 상황을 예측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힐러리만큼이나 똑똑한 퍼스트 레이디 미셸을 겨냥한 것일 수 있다. 선거가 끝난 지 이틀 만에 오바마의 시카고 사단이 속속 백악관에 입성하는 모습을 꿰뚫어 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충고가 비단 미국과 오바마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닐 거라는 점이다. 집권 초기부터 최근까지 사람 임명과 경질 문제로 조용한 날이 없는 동양 한 나라의 대통령에게도 필요한 충고가 아닐까 싶다. “자를 수 없는 사람은 쓰지 말라.”


김정욱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