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엔 휴대단말기가 몸속으로 들어온다”‘한예종 예술·과학 심포지엄’서 제시된 사이버시대 인간상이종찬 기자 jong@joongang.co.kr | 제83호 | 20081012 입력 인공지능과 휴먼로봇 기술이 궁극적으로 발달해 뇌를 비롯한 인간의 육체를 모두 대체할 수 있게 된다면 최후에 남을 인간의 진정한 본질은 무엇일까? 지난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는 미디어아트·인공지능·로보틱스·가상현실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이 모여 기술발전이 가져올 각 분야의 미래상과 그에 따른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예술과 과학의 통섭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isAT)’이다. 4일간(8~11일)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기술발달이 제기할 예술과 인문학의 중대한 도전과 극복 방안을 확인했다.  제프리 쇼 호주 인터랙티브 시네마 연구소 교수가 ‘새로운 미디어의 신비한 결합’이라는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활동한 초창기 미디어 아티스트다. 세계적인 문화기술연구소인 독일 ZKM시각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했다.  

양현승 KAIST 교수
“매트릭스 같은 사회신경망이 인간 공간 곳곳에 배치될 것”

대회 공동 조직위원장인 양현승 KAIST 교수는 10일 심포지엄에서 정보통신 혁명으로 비롯된 인간 삶의 변화상을 제시했다. 양 교수는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환경에 센서가 부착되어 그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이해하고 반응하게 될 것”이라며 “마치 사람의 뇌세포와 같은 신경망이 공간에 뿌리내려 공간 자체가 지능화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몸에 부착되고 있는 휴대전화와 같은 장치를 예로 들면서 “계속 소형화되는 모바일 디바이스가 10년 후에는 몸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인간 외부에 만들어진 사회신경망이 신체 내부로 들어온 인공신경망과 통합되면 인간의 몸 자체는 마치 ‘매트릭스’와 같은 거대한 신경망에 완전히 포섭되게 되는 것이다.

공간의 지능화는 바로 이번 isAT의 주제인 물리적 공간과 사이버 공간의 만남을 뜻하기도 한다. 즉,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대별되던 두 공간이 만나 유비쿼터스적 ‘제3의 공간’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제3의 공간은 지능화된 공간에 출현한 새로운 사회상이나 인간이 갖게 될 새로운 잠재력을 뜻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이론 거두’ 로이 애스콧
“아바타·세컨드 라이프 통해 인간은 여러 자아 갖게 된다”

“안녕하세요, 린 허시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9일 한예종 극장에서 미국 뉴욕 코넬대에 있는 린 허시먼 교수가 스크린을 통해 인사를 했다. 유명한 뉴미디어 아티스트 린 허시먼은 이날 발표를 위해 특별한 준비를 했다. ‘세컨드 라이프’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 낸 자신의 아바타가 가상현실 속에서 강연을 진행한 것이다.

로이 애스콧 영국 플리머스대 교수가 ‘예술과 아포리아’라는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미디어아트 이론의 세계적인 거장이다. 과학기술에 미학을 도입시킨 ‘테크노에틱 미학’의 창시자. 동명(同名)의 저서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  

허시먼이 만들어 낸 가상공간은 과거 자신이 방문한 적이 있는 아일랜드의 한 호텔. 건물 안에는 자신의 전시물과 퍼포먼스 영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아바타를 통해 가상현실로 들어간 허시먼에게서 호텔 내에 설치된 작품들의 설명을 들었다. 허시먼은 “가상현실을 통해 나의 작품들을 디지털 형식의 아카이브로 전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상현실과 아바타는 인간의 경험과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가상현실 속의 경험은 진짜 경험인가. 아바타는 진짜 나인가. 장자의 호접지몽이 다시 재현된 것 같다.

로이 애스콧은 기조연설을 통해 가상현실에 대해 낙관적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세컨드 라이프와 같이 새로운 정체성과 변화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며 “가상현실을 통해 인간은 동시에 여러 의식을 가지게 되는 의식의 혁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
“관람객은 사이버 영화관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장면만 골라봐”

하지만 세계적 미디어아트 작가인 제프리 쇼는 또 다른 기조연설에서 “기술지상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어떻게 예술과 기술에 개입시켜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다소 다른 시각을 내놓았다. 그는 과학기술을 응용해 개발한 다양한 파노라마 기법을 접목한 예술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에서 관람객은 원형 전시장을 360도 돌면서 작가가 텔레비전에서 캡처한 2만8000여 개의 비디오 클립을 스스로 선택해 보기도 했다. 영화 장면이 사이버공간에 펼쳐져 있고 관람객은 자신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서 해당 장면을 볼 수 있는 미래의 시네마도 보여 줬다.

미디어 아티스트 최우람은 차가운 금속에 생명을 불어넣은 대형 기계 생물체 조각들을 선보였다. 전기와 모터·고철을 재료로 기계생명체의 출현을 예고한 작품을 통해 그는 통제 불가능한 과학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예술이 과학기술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했다.
 
심광현 한예종 교수
“유비쿼터스 기술을 통해 과학·예술 상호작용 촉진”

예술과 과학기술 간의 통섭은 바로 이 심포지엄의 핵심이다. 9일 한예종 국악단이 미국 현지에 있는 스탠퍼드대 랩탑 오케스트라와 네트워크 협연을 한 것 역시 예술과 과학의 통섭을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 공동조직위원장인 심광현 한예종 교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기술의 ‘상용화’는 물리공간과 가상공간을 연결한 제3 공간을 출현시킴으로써 과학과 예술, 두 문화 사이의 실제적 상호작용을 다각적으로 촉진하고 있다”며 “예술과 과학의 통섭은 이미 세계적 화두”라고 말했다. 4일간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유럽과 미국·일본 등 전 세계에서 온 참석자들은 실시간 무선 통역기의 도움으로 언어를 초월해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