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임동욱(충주대 행정학부 교수 )

겸손과 절제가 있어야 했다
지난 대선 이명박 대통령은 530만 표의 격차를 보이면서 당선됐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됐다는 자신감과 이의 변질인 자만심이 대통령을 지배했다. 나라가 난장판이 돼버렸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진단은 바로 여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대선표차라는 숫자만 과신한 나머지 통계가 지니고 있는 이중성을 간과한 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이 제대로 되려면 역대 최저수준인 투표율을 감안해 대통령에 대한 적극적 지지자는 국민 10명 중 3명뿐이라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했다. 숫자의 한계를 인식하고 통계의 이중성을 받아들여야 했다
초로 만들어진 날개를 달고 있는 이카루스는 오만과 무절제 때문에 결국 태양열에 녹아 추락하고 만다. 정권을 되찾아왔다는 보수찬가를 소리 높여 부르기보다는 겸손과 절제로 국민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여러 사정을 두루 헤아리고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겸손과 절제야말로 최고 수준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덕목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겸손과 절제로 자신과 대통령팀을 무장하는데 실패했다.
겸손과 절제를 상실한 상징은 하나 둘이 아니다. 인수위 시절의 ‘고소영’과 ‘영어몰입 교육’ 파문, 2월의 ‘강부자 내각’ 논란, 3월의 ‘친박공천 배제’, 4월 이후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사태 등 국민의 마음이 떠나게 만드는 일들이 매달 터져 나왔다. 국민의 1/3만이 자신을 적극적으로 선택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신의 도덕심을 채울 수 있는 인사들을 고르게 등용했어야 했다. 게다가 온갖 악재 때문에 성난 국민들은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수출을 제외하곤 물가와 유가 등 모든 경제지표는 빨간 불이 켜졌다. 물론 이와 같은 초기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가 대통령 탓만은 아니다. 그러나 뿔난 국민에게는 경제가 갑자기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으니 이 또한 대통령 탓이 돼버렸다. 경제만은 제대로 살려놓겠다고 장담을 하더니 전봇대만 뽑았다는 냉소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역사에 해법이 있다
현실이 고단할 때 이를 바르게 진단하고 해법을 구하는 하나의 방법은 역사에서 그 길을 찾는 것이다. 이는 인간정신의 중심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오늘을 되새기게 만드는 수많은 지혜가 있는데 동서양의 사례 중에서 하나씩 들라면 공자와 링컨을 말하고 싶다.  
공자의 주유천하 13년에 동참하지 못하여 죄스러워하다가 공자 사후 6년 동안 수묘(守墓)한 제자가 자공이다. ‘공자는 자공과 함께 부활했다’는 평을 듣는 자공이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공자는 ‘足食·足兵·民信이 정치의 요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공자는 족식·족병·민신 중에서 하나를 버리라고 하면 가장 먼저 군사를 버려야 하며(去兵), 두 번째로 경제를 버려야(去食)한다고 했다. 국민의 마음만 있으면 때로는 굶어도 때로는 전란에 휩싸여도 나라는 지켜낼 수 있으나 마음을 잃었을 때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2500여년의 세월을 격하여 경제와 안보, 그리고 국민의 신뢰가 정치의 핵심과업이라는 이 말은 지금도 지당하기만 하다. 공자의 말에 따를 경우 현실은 나라의 근간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가시적인 경제지표는 물론이고 경제하려는 의지(the will to economize)조차 없어지고 있고 가장 중요한 국민의 마음을 잃고 있으니 이대로는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눈빛만 봐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과 대통령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 서로가 소통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없다. 겸손하고 절제하면서 서로가 처한 현실에서 각기 할 일을 묵묵히 하면 되기 때문이다. 신뢰는 소통보다 분명 상위수준이지만 양자는 서로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현재의 문제는 국민의 신뢰가 깨지고 마음이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소통한다고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나라의 근간이 제대로 서고 수렁에서 나올 수 있다.  
광우병 소고기 수입 사태는 내각과 청와대 참모의 합작품이다. 내각구성과 친박배제 등 소고기 수입 이전에 국민의 마음을 떠나게 만든 파문을 대할 때마다 ‘역사는 위인들의 전기’라는 토마스 카알라일의 말이 생각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 하나라고 추앙받는 미국의 16대 대통령 애브라함 링컨 때문이다.
링컨은 넓은 세계관과 도덕심으로 무장했다. 겸손과 도덕심이 있기에 반데르아의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 전단지에 “나에게 표를 던져주시면 고맙고...나를 찍어주지 않아도 고마운 마음이야 변함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었다. 넓은 세계관이 있었기에 평생의 정적 더글라스와 가진 상원 토론회에서 “절반은 노예제도를 용납하고 절반은 반대하는 미국은 그런 상태로 오래갈 수 없다”는 당시 연방의 핵심을 찌르는 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링컨은 연방을 지키고 헌법을 사수하는 것이 대통령의 사명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당대회에서 자신보다 더 많은 표를 받은 슈어드를 국무장관을 시키고 자신을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긴팔원숭이’라며 힐난했던 애드윈 스탠턴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할 수 있었다.
우리네 지도자들은 양치기 소년의 속성이 있다. 겸손과 절제에 기초한 도덕심과 넓은 세계관을 지닌 지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거짓말을 잘 해야 하고 상황에 따라 말을 교묘하게 바꾸는 것이 지도자의 덕목인 것처럼 알고 있는 듯하다. 더 나아가 자기만 아는 사람을 쓰려고 하고 자신의 테두리에 들어와 있는 사람끼리 나누고 가른다. 자신을 부정하거나 의견을 달리하는 인사들도 받아들이면서 인재를 고르게  등용한 탕평책이라는 선조들의 귀한 유훈이 사라진지 참으로 오래되었다.
        
그리고 시대를 읽어야 한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개발시대의 경제발전 전략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 꼭 지적해야 할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에 따른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얼굴과 얼굴이 만나고 서신과 전화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만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세상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이 지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전화를 넘어서 ID와 ID를 통한 온라인상의 의사소통이 기술진보에 따라 날이 갈수록 발전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e-mail에 파일을 첨부하고 채팅만 할 줄 알아도 최신이더니 메신저를 통해 얼굴을 보면서 무료로 전화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홈페이지만 구축해도 정보화의 기수라며 뽐낼 수 있던 것이 엊그제인데 블로그를 지나 사용자 제작 콘텐츠인 UCC가 각광을 받고 있다. 본능적·즉시적·참여적·충동적인 행위유발 환경을 지니고 있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실명세계와 가상세계가 공존하는 것은 물론 일인다역의 다중 인간형의 출현이 일반적이다.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과는 차별되고 단절된 속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고 있으며 이것이 지배적인 가치가 되고 있는 시대와 세상을 알아야 한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정신은 웹 2.0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참여와 공유, 그리고 개방이다. 이 정신에 투철해지면 자연스럽게 힘(power)과 공(merit), 그리고 정보(information)를 나누어줄 줄 아는 리더십의 실천도 가능해진다. 이의 구현을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 수렁에 빠진 대통령을 보면서 얻게 되는 귀한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