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 로봇에서 안드로이드 거쳐 감성 갖는 단계로영화로 본 로봇의 진화권석천 기자 sckwon@joongang.co.kr | 제83호 | 20081012 입력  

영화를 보면 로봇의 진화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간이 로봇에 걸어온 기대와 희망, 두려움, 그리고 당대의 과학 기술이 스크린에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로봇이 영화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27년 프리츠 랑 감독의 무성 흑백 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미래의 거대 도시 메트로폴리스에선 자본가들이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반면 노동자들은 지하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 세력을 교란시키기 위해 그들의 지도자 마리아를 납치한 뒤 마리아와 같은 모습의 로봇을 만들어 폭동을 유도한다. 그러나 이 로봇은 자신들이 속았음을 알게 된 노동자들에 의해 화형을 당하고 만다.로봇 마리아의 수난과 달리 1956년 ‘금지된 세계(Forbidden Planet)’에 나온 직립 보행형 로봇 ‘로비’는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어떤 물질이든지 합성해내고, 188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놀라운 기능에 특히 어린이들이 열광했다.

사람이 들어가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드럼통 몸매와 둥그런 양철판 다리로 디자인된 것이 일반인들에겐 오히려 친숙하게 여겨졌다.
77년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Star Wars)’에선 600만 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통역용 로봇 ‘C-3PO’와 정보 처리용 로봇 ‘R2D2’가 콤비로 등장했다. 두 로봇은 영화의 재미를 더하는 역할을 했지만, ‘똑똑한 서비스 기계’ 수준을 넘지 못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없었다.

  

로봇의 존재를 대중의 뇌리에 보다 깊숙이 각인시킨 것이 84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였다. 미래에서 온 살상용 로봇 터미네이터(아널드 슈워제너거 분)는 무섭도록 집요한 추격전을 벌인다. 외모와 말, 행동까지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안드로이드(Android·인간형 로봇)로 꼽힌다. 91년 상영된 ‘터미네이터 2’에서는 액체금속 로봇 ‘T-1000’이 인간을 뒤쫓는다. 하지만 이들 모두 명령을 철저하게 이행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1999년)’의 ‘앤드루’와 ‘A.I.’(2001년)의 ‘데이빗’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의 감성과 인지능력을 지닌 로봇이 출현한 것이다. 조립 과정의 실수로 지능과 호기심을 갖게 된 앤드루(로빈 윌리엄스 분)는 인간을 사랑하고, 결국은 스스로 죽음을 택해 인간으로서의 삶을 완성한다. 소년 로봇인 데이빗의 경우 입양 후 버려진 뒤 피노키오 동화를 떠올리며 잃어버린 엄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먼 여행길을 떠난다.

2004년 ‘아이, 로봇(I, Robot)’의 주제는 전설적인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의 3원칙’이다.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 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 된다”는 제1법칙으로 시작되는 이 3원칙을 과연 로봇의 자유의지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1982년)’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는 이러한 로봇 캐릭터의 진화 과정을 뛰어넘는 문제작이란 점에서 맥락을 달리한다. 이 영화에서 인간 사회에 맞서는 레플리컨트(Replicant·복제인간)들은 안드로이드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자신을 처단하기 위해 추적하던 경찰관을 살려주고, 인간과의 사랑에 눈물 흘린다.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경계는 과연 어디인가. 로봇 개발의 부작용은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 영화를 통해 우리는 일종의 ‘선행 학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